어벤져스 엔드게임 (Avengers Endgame), 루소 형제가 10년 MCU 서사를 마무리한 타임 헤이스트 설계의 비밀

모든 것을 잃은 5년 뒤 쥐 한 마리가 연 희망의 문

어벤져스 엔드게임은 2008년 아이언맨부터 이어진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10여 년의 이야기를 매듭짓는 영화입니다. 앞선 인피니티 워에서 타노스가 우주 생명의 절반을 지워 버렸기 때문에 이 영화는 어떻게든 그 결과를 되돌려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미 벌어진 일을 되돌리는 방법으로 시간여행은 가장 위험한 선택이기도 했습니다. 잘못 쓰면 논리가 무너지고 관객이 이야기에 실망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핑거 스냅 23일 뒤 캡틴 마블의 도움으로 우주에서 살아 돌아온 토니와 네뷸라가 지구에서 동료들과 재회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어벤져스는 타노스가 숨어 있는 행성을 찾아내 그를 제압하지만 그는 이미 인피니티 스톤을 원자 단위로 파괴한 뒤였습니다. 분노를 참지 못한 토르가 타노스의 목을 베지만 아무것도 바뀌지 않습니다. 그리고 영화는 5년 뒤로 건너뜁니다.

세상은 여전히 무너져 있었고 스티브는 상실을 겪은 사람들의 모임을 이끌고 있었으며 나타샤는 홀로 본부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때 샌프란시스코의 창고에서 쥐 한 마리가 우연히 장치를 건드려 양자 영역에 갇혀 있던 스콧 랭이 돌아옵니다. 그는 자신에게는 5시간이었지만 바깥은 5년이 흘렀다고 말하며 양자 영역을 이용한 시간여행을 제안합니다. 처음에는 황당한 이야기였지만 이 우연이 마지막 희망이 됩니다.

루소 형제는 이 위험한 소재를 오히려 팬들을 위한 선물로 바꿨습니다. 인피니티 스톤을 모으려고 과거로 가면 지난 10년 동안 관객이 봐 왔던 명장면을 다시 찾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간여행이 단순한 해결책이 아니라 지난 시리즈를 돌아보는 여행이 되도록 설계한 셈입니다. 그래서 이 영화의 타임 헤이스트는 퍼즐이면서 동시에 작별 인사입니다.

과거를 바꿔도 현재는 그대로라는 독특한 규칙

스콧의 제안을 들고 토니를 찾아간 동료들은 냉담한 반응만 얻었습니다. 그는 페퍼와 결혼해 딸 모건을 얻고 조용한 집에서 새 삶을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날 밤 설거지를 하던 토니는 피터와 함께 찍은 사진 속 수료증이 뒤집혀 있는 것을 보고 실마리를 얻습니다. 프라이데이에게 시뮬레이션을 시켜 보니 불가능해 보이던 시간여행이 성립한다는 것이 확인됩니다. 페퍼의 격려를 받은 토니는 결국 장치를 완성해 스티브에게 건넵니다.

이 영화의 시간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규칙은 과거로 가서 무언가를 바꿔도 원래의 미래는 바뀌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작중에서 로즈와 스콧이 백 투 더 퓨처 같은 영화를 예로 들며 타노스가 아기일 때 죽이면 되지 않느냐고 하자 브루스는 시간은 그런 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설명합니다. 자신이 과거로 돌아가면 그것이 곧 자신의 새로운 미래가 될 뿐이라는 것입니다.

닥터 스트레인지의 스승인 에인션트 원도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인피니티 스톤 하나가 사라지면 시간의 흐름이 갈라져 새로운 현실이 생기고 그 현실은 어둠의 세력을 막을 무기 없이 무너지게 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어벤져스는 스톤을 쓴 뒤 반드시 같은 시간과 장소에 돌려놓겠다고 약속합니다.

이 규칙은 영화에 두 가지 효과를 줍니다. 첫째로 지나간 사건을 없던 일로 만드는 손쉬운 해결을 막아서 희생과 상실을 진지하게 다루게 합니다. 둘째로 스톤을 되돌려 놓는다는 새로운 목표를 만들어 결말까지 이야기를 끌고 가는 힘이 됩니다. 이 규칙에는 뒤에서 살펴볼 허점도 있지만 적어도 영화 안에서는 일관되게 작동합니다.

여섯 개의 스톤을 세 팀이 다섯 시점에서 훔치는 작전

준비를 마친 어벤져스는 스톤이 있던 위치를 추적한 뒤 팀을 나눠 각자 잘 아는 시점으로 갑니다. 2012년 뉴욕 전투에는 스티브와 토니와 스콧이 테서랙트와 치타우리 셉터를 노리고 브루스가 타임 스톤을 찾아갑니다. 2013년 아스가르드에는 토르와 로켓이 에테르를 가지러 갑니다. 2014년 모라그에는 로즈와 네뷸라가 오브를 노리고 보르미르에는 클린트와 나타샤가 소울 스톤을 찾아갑니다.

이 설계가 영리한 이유는 각 임무가 서로 다른 장르의 짧은 영화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뉴욕에서는 첩보 코미디가 벌어지고 스티브가 엘리베이터에서 히드라 만세를 속삭이는 장면은 지난 시리즈를 아는 관객에게 큰 웃음을 줍니다. 아스가르드에서는 어머니와 아들의 애틋한 재회가 그려지고 모라그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명랑함을 빌려오며 보르미르에서는 가장 무거운 희생이 치러집니다. 하나의 작전 안에 웃음과 눈물과 긴장을 모두 담아 러닝타임이 3시간이 넘는 영화가 지루하지 않게 만든 것입니다.

또 하나 눈여겨볼 점은 한 번 실패한 작전이 준 반전입니다. 뉴욕에서 테서랙트를 놓친 스티브와 토니는 다시 1970년 뉴저지의 쉴드 기지로 가서 만회를 시도합니다. 덕분에 토니가 젊은 아버지 하워드 스타크와 마주치는 장면과 스티브가 페기 카터를 유리창 너머로 바라보는 장면이 생겨났습니다. 실패가 오히려 가장 감동적인 순간을 낳은 셈입니다.

엄마를 만난 토르 그리고 네뷸라가 만든 균열

아스가르드에 도착한 토르는 정신적으로 무너져 있었습니다. 마침 그날이 어머니 프리가가 세상을 떠나는 날이었고 토르는 어머니를 마주치자 엄마라고 부르며 눈물을 쏟습니다. 프리가는 자신을 얼간이라고 자책하는 아들에게 너는 실패자일 뿐이고 이제야 다른 이들과 같아진 것이라고 위로합니다. 그 사이 로켓이 에테르를 빼내 오고 토르는 돌아가기 직전 묠니르를 불러들이며 자신이 아직 자격이 있다는 것을 확인합니다.

모라그에서는 뜻밖의 사건이 벌어집니다. 로즈가 오브를 들고 먼저 현재로 복귀하지만 네뷸라의 몸에 이상이 생깁니다. 과거의 네뷸라와 현재의 네뷸라가 서로 연결되어 버리는 사고였고 이 작은 균열이 이야기의 뒷부분을 뒤흔들게 됩니다.

이 부분이 이야기 설계의 핵심입니다. 어벤져스의 성공적인 작전이 이어지는 동안에도 작은 오류 하나가 다음 막을 여는 방아쇠로 조용히 심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관객은 스톤이 하나씩 모이는 것을 보며 안도하지만 화면 한구석에서는 이미 재앙이 준비되고 있습니다.

희생으로 완성된 두 개의 결말

여기서부터는 영화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직 영화를 보지 않으셨다면 이 부분은 건너뛰시기 바랍니다.

보르미르에서 소울 스톤을 얻으려면 사랑하는 사람을 희생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클린트와 나타샤는 서로 자신이 뛰어내리겠다며 다툽니다. 결국 나타샤가 클린트의 손을 놓고 추락하며 스톤은 클린트의 손에 쥐어집니다. 이 사건이 이후 모든 승리에 무게를 실어 주는 장치가 됩니다. 스톤을 모으는 데 성공한 순간에도 어벤져스는 기뻐할 수만은 없습니다.

앞서 말한 네뷸라의 사고로 2014년의 타노스는 미래에 벌어질 일을 모두 알게 되었고 과거의 네뷸라는 현재의 네뷸라로 변장해 현재로 잠입합니다. 그 뒤 브루스가 나노 건틀릿을 끼고 핑거 스냅을 하여 사라졌던 생명들이 돌아옵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과거의 네뷸라가 열어 둔 양자 터널로 2014년의 타노스 군대가 현재로 쳐들어오고 어벤져스 본부가 무너집니다. 스티브는 묠니르를 들어 올려 관객을 놀라게 하고 이후 샘이 무전으로 왼쪽이라고 알리자 포털이 열리며 되살아난 히어로들이 한꺼번에 모입니다.

전투 끝에 타노스가 건틀릿을 손에 넣으려던 순간 토니가 스톤을 빼앗아 자신의 건틀릿에 옮깁니다. 그리고 나는 아이언맨이다라고 말한 뒤 핑거 스냅으로 타노스와 그의 군대를 소멸시킵니다. 그러나 스톤의 힘은 토니의 몸이 감당할 수 없었고 토니는 페퍼가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둡니다. 타노스가 자신의 대의를 위해 스냅을 했다면 토니는 남을 위해 스냅을 했다는 점이 다릅니다.

이후 스티브는 모든 스톤과 묠니르를 원래 시간에 돌려놓으러 떠납니다. 그런데 약속한 시간에 돌아오지 않고 벤치에 앉은 노인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그는 평생 이루지 못했던 페기 카터와의 삶을 선택했고 자신의 방패를 샘에게 넘겨줍니다. 스티브가 어떻게 그 삶을 살았는지에 대해서는 제작진 사이에서도 설명이 엇갈립니다. 각본가들은 새로운 분기 현실에서 살다가 돌아온 것이라고 했고 루소 형제는 원래 시간선 안에서 조용히 살았다고 밝혀 왔습니다. 즉 이 부분은 하나의 정답이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크리스 에반스 마크 러팔로의 연기는 어땠을까요

이 영화가 시간여행이라는 복잡한 소재를 다루면서도 무너지지 않은 것은 배우들의 연기 덕분이기도 합니다. 먼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토니 스타크로서 시리즈의 처음과 끝을 책임졌습니다. 5년 뒤 딸 모건과 함께 안정된 삶을 살면서도 시간여행의 가능성 앞에서 흔들리는 표정이 인상적입니다. 아버지 하워드를 만나는 장면에서 감정을 눌러 담은 채 고맙다고 말하는 모습은 이 영화에서 가장 조용하고 깊은 연기였습니다.

크리스 에반스는 스티브 로저스의 고지식함과 유머를 함께 보여 줍니다. 과거의 자신과 싸운 뒤 아메리카의 엉덩이라는 농담을 되받아치는 장면에서는 웃음을 주고 페기를 바라보는 장면에서는 오랜 그리움을 조용히 담아냅니다. 묠니르를 든 순간의 자신감과 마지막에 방패를 넘기는 담담함이 한 인물 안에 자연스럽게 공존합니다.

마크 러팔로는 헐크의 몸에 브루스의 지성이 합쳐진 프로페서 헐크라는 새로운 모습으로 시리즈 최대의 변화를 보여 줍니다. 아이들과 사진을 찍어 주는 여유와 에인션트 원 앞에서 진지하게 설득하는 모습을 오가며 유머와 아픔을 동시에 다룹니다. 스냅을 하고 팔이 망가진 뒤에도 쓰러지는 그의 모습은 그동안 헐크를 짐으로 여겼던 인물이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였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세 배우 모두 오랜 세월 한 인물을 연기해 온 경험이 화면에 그대로 배어 나옵니다.

완벽한 피날레지만 허점도 분명한 영화입니다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10년 이상 쌓인 이야기를 하나의 감정으로 모아 낸 점입니다. 시간여행 작전으로 옛 작품을 되짚고 마지막 전투에서 모든 캐릭터를 한자리에 모으며 핵심 인물들에게 각자의 결말을 안겼습니다. 특히 웃음과 슬픔을 오가는 완급 조절이 훌륭해서 181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을 견디게 해 줍니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분명히 있습니다. 첫째로 시간여행 규칙에 논리적 허점이 남아 있습니다. 2014년의 타노스가 현재로 넘어와 사라지면 원래 그 시간선은 어떻게 되는지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고 양자 터널이 필요한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의 기준도 일관되지 않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둘째로 스티브의 결말 해석이 제작진 사이에서도 갈릴 만큼 설명이 열려 있어서 관객마다 받아들이는 방식이 달라집니다. 셋째로 이 영화는 앞선 작품을 많이 봐야 감동이 커지는 구조라서 처음 접하는 관객에게는 진입 장벽이 높습니다. 넷째로 3시간이 넘는 러닝타임 중 초중반은 준비 과정에 시간을 많이 쓰기 때문에 액션을 기대한 관객에게는 다소 느리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래도 오랜 시리즈를 끝까지 따라온 팬이라면 이 영화가 주는 감동은 충분히 특별합니다. 단순한 액션 영화가 아니라 10년의 여정에 대한 인사이기 때문입니다. 아직 보지 못하셨다면 앞선 작품들을 복습한 뒤 감상하시길 권합니다. 시간여행 규칙의 허점 정도는 눈감고 볼 수 있을 만큼 마지막 30분의 힘이 큰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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