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미러 헨리호, 비극을 소비하는 우리들의 섬뜩한 자화상 (Black Mirror Loch Henry)


잊힌 비극으로 다큐를 찍으려는 젊은이들

우리가 만약 끔찍한 범죄가 벌어졌던 현장에 서 있다면 어떤 감정을 느낄까요. 그곳에서 스러져간 희생자들을 추모할까요 아니면 흥미로운 표정으로 카메라 셔터를 누를까요. 최근 몇 년간 '실화 범죄' 다큐멘터리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인기 있는 장르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타인의 끔찍한 비극을 안전한 소파에 앉아 팝콘을 먹으며 소비합니다. 넷플릭스 블랙미러 시즌6의 두 번째 에피소드 '헨리호' (Loch Henry)는 바로 이 지점을 파고듭니다. 이 작품은 우리의 호기심과 관음증이 어떻게 타인의 고통을 상품으로 전락시키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진실의 무게가 얼마나 쉽게 무시되는지 냉정하게 보여줍니다. 스코틀랜드의 아름답지만 쇠락한 마을 헨리호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 이야기는 첨단 기술이 아닌 바로 지금 우리의 미디어 소비 행태를 겨누고 있어 더욱 섬뜩한 공포를 선사합니다. 오늘은 비극을 팔아 성공을 사려는 이들의 이야기 블랙미러 헨리호 속으로 깊이 들어가 보겠습니다.

조용한 마을 헨리호를 잠식한 끔찍한 과거

주인공 데이비스는 런던에서 영화를 공부하는 학생입니다. 그는 자신의 여자친구이자 유능한 동료인 피아와 함께 스코틀랜드의 외딴 고향 헨리호로 향합니다. 그들의 당초 계획은 '희귀종 알 도둑'에 대한 다큐멘터리였습니다. 자연의 신비와 그 이면의 어두운 욕망을 다루는 흥미로운 주제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데이비스가 오랜만에 마주한 고향 헨리호는 그의 기억 속에 남아있던 활기차고 아름다운 관광지가 아니었습니다. 마을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 유령 도시처럼 쇠락해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호수와 그림 같은 풍경은 여전했지만 그곳을 찾는 관광객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데이비스의 오랜 친구 스튜어트가 가업을 이어받아 운영하는 술집 '헨리호 인' 역시 손님 없이 텅 비어 있었습니다. 스튜어트는 이 모든 침체의 원인이 1990년대에 벌어진 끔찍한 연쇄 살인 사건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이언 어데어라는 이름의 괴짜 농부가 외지에서 온 관광객 여러 명을 자신의 집 지하실로 납치했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상상할 수 없는 끔찍한 고문과 학대를 자행하고 그들을 무참히 살해했습니다. 이 엽기적인 사건은 영국 전역을 충격에 빠뜨렸고 헨리호는 순식간에 '살인의 마을' '고문 농장'이라는 끔찍한 오명으로 뒤덮였습니다. 데이비스에게도 이 사건은 단순한 마을의 비극이 아닌 지울 수 없는 가족의 트라우마입니다. 그의 아버지 케네스는 당시 이 사건을 수사하던 지역 경찰이었습니다. 그는 범인 이언 어데어와 총격전을 벌이다 어깨에 총을 맞았고 이후 병원에서 패혈증 감염으로 사망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케네스를 범인을 잡으려다 목숨을 잃은 영웅으로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데이비스는 이 고통스러운 기억이 가득한 고향에서 하루빨리 떠나고 싶어 합니다.

진실 추적 다큐멘터리 제작의 시작

피아는 이 지루하고 쇠락한 시골 마을에서 완전히 새로운 기회를 발견합니다. 그녀는 희귀종 알 이야기 따위보다 헨리호의 끔찍한 연쇄 살인 사건이 훨씬 더 매력적이고 자극적인 다큐멘터리 소재라고 확신합니다. 그녀는 데이비스에게 "요즘은 실화 범죄물이 대세야"라고 말하며 이 주제로 방향을 틀자고 강력하게 제안합니다. 이 다큐가 성공하기만 하면 넷플릭스나 스트리미(Streamberry) 같은 거대 플랫폼에 작품을 팔 수 있을 것이라며 야망을 드러냅니다. 데이비스는 아버지의 비극적인 죽음이 얽힌 이 사건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것에 깊은 거부감을 느낍니다. 하지만 친구 스튜어트는 피아의 의견에 적극 동조합니다. 그는 이 다큐멘터리가 헨리호에 다시 관광객을 불러 모을 유일한 희망이라고 믿습니다. 그는 "비극도 훌륭한 관광 자원이 될 수 있다"며 데이비스를 압박합니다. 결국 데이비스는 여자친구의 야망과 친구의 절박함 그리고 자신도 모를 호기심에 굴복하여 다큐멘터리 제작을 승낙합니다. 그들은 '헨리호의 진실'이라는 가제로 촬영을 시작합니다. 첫 인터뷰 대상자는 스튜어트의 아버지 리처드였습니다. 그는 마치 준비라도 한 듯 그날의 공포를 과장된 몸짓으로 생생하게 증언합니다. 그는 이언 어데어가 얼마나 끔찍한 악마였는지 자극적인 표현을 섞어 이야기합니다. 이후 그들은 더 자극적인 그림을 원했습니다. 피아의 주도로 세 사람은 한밤중에 살인마 이언 어데어의 버려진 농가에 몰래 잠입합니다. 그곳은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완벽하게 봉인되어 있었습니다. 삐걱거리는 문을 열고 들어간 지하실에서 그들은 희생자들을 묶었던 낡은 사슬과 끔찍한 고문 도구들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수십 개의 비디오테이프 더미도 찾아냅니다. 피아와 스튜어트는 이 '엄청난 발견'에 흥분하며 자신들의 성공을 예감합니다. 하지만 데이비스는 아버지의 유품인 경찰 제복을 꺼내 입고 카메라 앞에서 억지로 연기를 하면서도 깊은 죄책감과 불편함을 느낍니다.

(스포일러 경고) 베르주라크 테이프 속 충격적인 진실

(이 부분은 블랙미러 헨리호의 가장 충격적인 결말과 반전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스포일러를 원하지 않으시면 다음 소제목으로 넘어가 주십시오) 다큐멘터리 제작은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습니다. 그들은 런던의 제작사로부터 긍정적인 답변까지 받습니다. 하지만 촬영 도중 스튜어트의 아버지가 술에 취해 운전하다가 작은 사고를 냅니다. 데이비스는 사고를 당한 스튜어트와 함께 병원으로 가고 피아만 혼자 데이비스의 집에 남게 됩니다. 데이비스의 어머니 재닛은 아들이 고향에 머무는 것을 극도로 불안해하면서도 피아에게는 친절하게 대합니다. 피아는 다큐멘터리에 사용할 헨리호의 옛날 풍경 자료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재닛이 소중하게 간직해 온 옛날 드라마 '베르주라크' 비디오테이프들을 발견합니다. 재닛은 이 드라마의 광팬이었습니다. 피아는 이 테이프들에 혹시 드라마 외에 다른 영상이 녹화되어 있을까 싶어 디지털 변환 작업을 시작합니다. 드라마가 한참 재생되던 화면은 갑자기 지지직거리며 다른 영상으로 바뀝니다. 화면이 바뀌자 피아는 숨이 멎을 듯한 공포에 휩싸입니다. 그 영상은 바로 이언 어데어의 집 지하실에서 찍힌 것이었습니다. 누군가 희생자들을 고문하고 살해하는 장면을 직접 촬영한 스너프 필름이었습니다. 영상 속에는 범인 이언 어데어뿐만 아니라 두 명의 공범이 더 있었습니다. 그들은 웃고 떠들며 이 끔찍한 범죄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그 공범의 정체는 바로 데이비스의 부모님 케네스와 재닛이었습니다. 데이비스의 아버지 케네스는 영웅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이 모든 범죄의 주동자이자 살인마였습니다. 그가 이언 어데어에게 총을 맞은 것이 아니라 범행이 발각될 위기에 처하자 공범 이언 어데어를 총으로 쏘고 자신도 자살했던 것입니다. 모든 진실을 알게 된 피아는 이 증거를 가지고 집을 탈출하려 합니다. 그때 병원에서 돌아온 재닛이 피아와 마주칩니다. 재닛은 피아가 보고 있던 화면과 그녀의 표정을 보고 모든 것을 알았음을 직감합니다. 피아는 필사적으로 도망치다 그만 강물에 빠져 익사하고 맙니다. 재닛은 그 모습을 차갑게 지켜봅니다. 다음 날 데이비스는 집에 돌아와 충격적인 광경을 목격합니다. 어머니 재닛은 모든 증거 테이프와 살인 도구들 가면 등을 식탁 위에 가지런히 정리해 두었습니다. 그리고 "너의 영화를 위해. 사랑하는 엄마가"라는 쪽지를 남긴 채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새뮤얼 블렌킨과 모니카 돌란의 압도적인 연기

블랙미러 헨리호의 서늘한 공포와 묵직한 여운은 전적으로 배우들의 공이 컸습니다. 주인공 '데이비스' 역을 맡은 새뮤얼 블렌킨은 이 비극의 중심에서 관객의 감정을 이끄는 복잡한 인물을 훌륭하게 소화했습니다. 그는 과거의 트라우마를 애써 외면하려는 유약한 모습부터 다큐멘터리의 성공 가능성에 조금씩 흥미를 느끼는 모습 그리고 모든 진실을 알고 난 뒤 완전히 무너져 내리는 공허한 모습까지 극적인 감정의 변화를 섬세하게 표현했습니다. 특히 마지막 시상식 장면에서 영혼 없이 앉아 상을 받는 그의 텅 빈 표정은 이 작품의 비극적인 주제를 압축해서 보여줍니다. 그가 얻은 성공이 얼마나 무의미한지 관객은 그의 얼굴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에피소드에서 가장 압도적인 연기를 보여준 배우는 어머니 '재닛' 역의 모니카 돌란입니다. 그녀는 초반에 그저 아들을 끔찍이 아끼고 과거의 상처에 갇혀 사는 평범하고 연약한 어머니처럼 보입니다. 그녀의 조용하고 다정한 말투는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모든 행동에는 서늘한 비밀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그녀가 피아에게 은근한 압력을 가하는 장면이나 모든 진실이 밝혀진 뒤 스스로 죽음을 준비하는 차분하고 냉정한 모습은 관객에게 엄청난 충격과 소름을 선사합니다. 모니카 돌란은 그저 자상한 이웃처럼 보이는 얼굴 뒤에 얼마나 끔찍한 악마성이 숨어있을 수 있는지 완벽하게 증명했습니다.

헨리호가 우리에게 던지는 불편한 질문

블랙미러 헨리호는 시즌6 에피소드 중에서도 가장 현실적이고 뼈아픈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미래의 가상현실이나 첨단 복제 기술 대신 '실화 범죄 다큐멘터리'라는 현재진행형 미디어 현상을 정면으로 겨누고 있습니다.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은 시청자 역시 이 비극의 공범으로 만든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피아처럼 더 자극적인 진실을 원하고 스튜어트처럼 비극이 상품화되는 것을 즐기고 있지는 않은지 되묻게 만듭니다. 우리는 매일 밤 넷플릭스를 켜고 가장 끔찍한 살인 사건을 다룬 다큐를 '흥미롭게' 시청합니다. 헨리호는 바로 그런 우리들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입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헨리호는 '살인마 투어' 상품이 대성공을 거둔 유명 관광지가 되고 스튜어트는 부자가 됩니다. 데이비스는 권위 있는 BAFTA 상을 받지만 그의 영혼은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비극은 완벽하게 소비되었고 아무도 진정으로 행복해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아쉬운 점은 피아의 죽음이 다소 허무하게 그려진다는 것입니다. 그녀는 진실을 밝히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쉽게 이야기에서 퇴장하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또한 데이비스가 부모의 끔찍한 비밀을 받아들이고 그 고통을 어떻게 영화로 완성시켰는지 그 과정이 생략된 채 곧바로 성공한 다큐 감독으로 등장하는 점도 감정선을 따라가기에는 다소 급작스럽습니다. 그럼에도 헨리호는 우리가 타인의 고통을 어떻게 '좋아요'와 '조회수'로 소비하는지 그 섬뜩한 민낯을 가장 정확하게 고발한 블랙미러의 수작임이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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