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We Are All Trying Here), 박해영 작가가 그려낸 무가치함과의 사투


박해영 작가가 다시 한번 완성한 위로의 드라마

나의 아저씨와 나의 해방일지로 깊은 위로를 건네온 박해영 작가가 신작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번 작품은 지난 4월 18일부터 5월 24일까지 JTBC 토일 드라마로 방송된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입니다. 제목부터 상당히 직설적이라 공개 전부터 우울한 드라마가 아니냐는 걱정 섞인 반응도 있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특유의 진한 색채와 사실적인 현실 묘사 속에 다독임이 있는 웰메이드 드라마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연출은 차영훈 감독이 맡았고 구교환 고윤정 오정세 강말금 박해준 배종옥 한선화 등 탄탄한 배우들이 대거 힘을 보탰습니다. 방영 기간 동안 넷플릭스 대한민국 톱 10 시리즈 부문에서 여러 주 연속 상위권을 지켰고 공개 첫 주에는 1위까지 오르며 화제성을 증명했습니다. 이는 박해영 작가라는 이름값과 더불어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력이 시청자들의 신뢰를 얻어낸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박해영 작가의 전작들을 돌이켜보면 나의 아저씨는 삶의 무게에 짓눌린 중년 남성과 상처 입은 청년이 서로를 통해 회복해가는 과정을 그렸고 나의 해방일지는 답답한 일상 속에서 자신을 해방시키고 싶어 하는 삼남매의 이야기를 다뤘습니다. 이번 작품 역시 그 연장선에서 인간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겪는 무가치함이라는 감정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위로를 전한다는 점에서 작가의 세계관이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영화계를 배경으로 인간 내면의 무가치함과 벌이는 싸움을 다룬다는 소개만 보면 다소 무겁게 느껴질 수 있지만 실제로는 블랙코미디와 슬라이스 오브 라이프 멜로가 절묘하게 섞여 있어 웃음과 먹먹함을 동시에 안겨주는 작품입니다. 실제로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책을 읽는 것 같고 보면서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게 되는 자아성찰의 드라마라는 후기가 다수 이어졌습니다. 방송 3회 무렵부터 이미 배우들의 연기와 대사의 힘을 언급하며 인생을 돌아보게 만드는 작품이라는 입소문이 퍼졌고 이는 입소문만으로 화제성을 끌어올린 대표적인 사례로 꼽힙니다. 특히 자극적인 사건 전개나 화려한 반전 없이도 시청자를 붙잡아 두었다는 점에서 잔잔한 드라마가 살아남기 힘들다는 요즘 방송가의 통념을 뒤집었다는 평가도 함께 나옵니다. 오늘은 이 드라마가 왜 이렇게 많은 이들의 마음을 건드렸는지 이야기와 배우들의 연기를 중심으로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잘난 친구들 사이에서 홀로 뒤처진 남자의 이야기

이야기의 중심에는 구교환이 연기하는 황동만이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그는 어릴 적부터 함께 자란 여덟 명의 친구들 모임인 이른바 8인회의 멤버이지만 20년째 영화감독으로 데뷔하지 못한 채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반면 같은 모임의 박경세는 이미 감독으로 자리를 잡았고 그의 아내인 고혜진은 영화사 고박필름의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잘난 친구들 사이에서 혼자만 안 풀리는 인생을 견디다 보니 동만의 마음속에는 시기와 질투 그리고 자기 자신을 향한 무가치함이 짙게 쌓여갑니다. 옛날엔 다 같이 아무것도 아니었던 친구들이 시간이 흐르며 서로 다른 위치에 서게 되었다는 설정 자체가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현실적인 갈등의 축이라 많은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인생의 바닥을 친 순간 그는 우연히 최필름 소속 기획 프로듀서인 변은아를 만나게 됩니다. 고윤정이 연기하는 은아 역시 겉으로는 능력 있는 정규직 직원처럼 보이지만 속으로는 자신만의 아픈 과거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인물입니다. 은아는 아버지의 재혼 이후 이름까지 바꾸고 새할머니와 단둘이 살아온 복잡한 가정사를 지니고 있는데 이러한 배경이 그녀가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불안의 근원으로 작용합니다. 두 사람은 서로의 부족함과 불안을 알아보며 조금씩 가까워지고 그 과정에서 동만은 무너졌던 자존감을 조금씩 회복해 나갑니다. 극 중에는 동만의 형이자 용접공으로 일하는 황진만 그리고 국민배우로 등장하는 오정희와 그녀의 딸이자 경세의 영화에 여주인공으로 출연하는 장미란까지 다양한 인물들이 얽히면서 각자가 짊어진 무가치함의 무게를 보여줍니다. 회사 안에서도 사무 보조 출신인 은아가 정규직이 되고 뛰어난 능력을 보이는 것을 은근히 시기하는 동료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그녀를 편하게 의지하는 동료도 있어 조직 안에서 벌어지는 미묘한 감정선까지 세밀하게 그려냅니다. 은아를 둘러싼 인물 중에는 최필름의 실질적인 대표인 최동현도 있는데 그는 은아의 과거를 조사하며 그녀가 감추고 싶어했던 가정사를 알게 되고 이를 오정희에게 조심스럽게 전달하는 역할을 맡습니다. 이 과정에서 동현이 은아를 향해 품는 복잡한 감정 역시 극에 또 다른 긴장감을 더하는 요소로 작용합니다. 회오리바람을 함께 바라보며 즐거워하는 동만과 은아의 모습을 차 안에서 지켜보는 동현의 표정 하나만으로도 이 드라마가 감정을 얼마나 섬세하게 쌓아 올리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직접적인 대사보다 시선과 침묵으로 관계의 균열과 애정을 동시에 드러내는 이런 연출은 극 전체에 걸쳐 반복되며 작품의 결을 만들어냅니다. 결국 이 드라마는 화려한 성공담이 아니라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느껴지는 순간에도 스스로의 가치를 다시 발견해가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구교환 고윤정 오정세가 그려낸 인생의 밑바닥

이 드라마의 무게중심을 잡아주는 것은 단연 배우들의 힘입니다. 구교환은 황동만이라는 인물을 통해 오랜 시간 쌓여온 열등감과 분노 그리고 그 안에 숨겨진 여림을 동시에 표현해냅니다. 대사 하나하나에 실린 감정의 폭이 상당히 넓은데 시기와 질투로 폭발하는 장면에서는 관객이 불편함을 느낄 정도로 날것의 감정을 밀어붙이면서도 그 안에 있는 상처받은 인간의 모습을 놓치지 않습니다. 다만 초반부 캐릭터가 지나치게 비호감으로 다가온다는 반응도 있었는데 이는 오히려 배우가 그만큼 인물의 결핍을 솔직하게 표현해냈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시청자들 사이에서도 연기력 자체는 인정하면서도 캐릭터에 정을 붙이기까지 시간이 걸렸다는 평가가 다수 나왔을 정도로 구교환은 호불호가 갈리는 지점까지 감수하며 인물에 몰입했습니다. 고윤정은 변은아 역을 통해 겉으로는 단단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자신이 얌전하고 만만한 사람으로 취급받는 것에 지쳐 있는 인물의 복잡한 내면을 섬세하게 그려냅니다. 얌전한 것이 약한 것은 아니라는 그녀의 대사가 유독 힘 있게 다가오는 것도 이러한 연기의 결 덕분입니다. 특히 무례한 상대 앞에서 흔들림 없이 할 말을 하는 장면에서는 단단하면서도 상처받기 쉬운 인물의 이중적인 면모를 동시에 보여주는 섬세함이 돋보입니다. 오정세는 박경세라는 성공한 감독을 연기하면서도 그 성공 이면에 자리한 불안과 부부 관계의 균열을 능청스러우면서도 씁쓸하게 표현해내며 극에 또 다른 층위를 더합니다. 세 배우가 만들어내는 앙상블은 성공과 실패라는 이분법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인간 군상의 다양한 얼굴을 입체적으로 완성해냅니다. 여기에 강말금이 연기하는 고혜진과 배종옥이 연기하는 오정희까지 더해지면서 극은 단순히 젊은 세대의 이야기에 머무르지 않고 세대를 아우르는 폭넓은 공감대를 만들어냅니다. 특히 배종옥은 국민배우라는 화려한 타이틀 뒤에 숨겨진 인물의 고독과 딸을 향한 복잡한 마음을 노련하게 소화하며 극의 안정감을 더해줍니다. 강말금 역시 성공한 영화사 대표라는 위치와 흔들리는 결혼 생활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물을 담담하면서도 설득력 있게 그려내며 조연진의 완성도를 한층 끌어올립니다.



스포일러 주의 동만과 은아가 도착한 결말

이제부터는 결말을 구체적으로 다루려고 합니다. 아직 보지 않은 분이라면 이 부분은 건너뛰시는 것을 권합니다. 극이 진행될수록 동만은 사람들의 무시에 결국 폭발해 최필름 대표를 찾아가 앞으로 어마어마해질 거라며 자신의 분노를 쏟아내는 장면을 지나 서서히 자신의 가치를 다시 깨닫는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이 장면은 단순한 분노 표출이 아니라 오랫동안 억눌러 왔던 열등감이 처음으로 밖으로 터져 나오는 순간이라는 점에서 동만이라는 인물의 전환점으로 작용합니다. 형 황진만이 동만에게 건네는 이거 했네 저거 했네 하며 이리저리 애쓰지 말고 그냥 가만히 있어도 괜찮다는 취지의 대사는 극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로 작용합니다. 이 대사는 단지 동만만을 향한 위로가 아니라 드라마를 보는 모든 시청자에게 전하는 말처럼 다가온다는 점에서 방영 이후에도 오래 회자되었습니다. 결국 이 드라마가 전하고자 한 것은 그럴듯한 성공이 아니라 불안하지 않은 상태 즉 안온함에 이르는 일이었다는 사실이 마지막 회에 이르러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은아 역시 정신과 상담을 받는 과정에서 불편한 감정을 억누르기보다 글로 써내려가며 자신을 마주하는 법을 배우는데 이는 동만의 변화와 나란히 놓이며 두 사람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같은 목적지에 도달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상담 장면에서 의사가 건네는 조언은 실제 심리상담에서도 쓰일 법한 현실적인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어 시청자들이 자신의 감정을 정리하는 데에도 참고할 만하다는 반응까지 나왔습니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동만의 목소리를 빌려 함께해줘서 진심으로 고맙다는 그리고 앞으로 더욱 열심히 만들겠다는 인사가 전해지는데 이는 극 중 인물의 대사이자 동시에 시청자를 향한 제작진의 인사로도 읽히는 열두 편의 세레나데 같은 마무리입니다. 화려한 반전이나 극적인 사건보다는 존재 자체로 가치가 있다는 잔잔한 메시지로 막을 내리는 결말입니다.

직접 보고 느낀 장점과 아쉬운 점

전체적으로 이 드라마는 박해영 작가 특유의 문장력과 사실적인 인물 묘사가 다시 한번 빛을 발한 작품입니다. 나의 아저씨와 나의 해방일지를 관통했던 위로의 정서가 이번에도 자연스럽게 이어지면서 대사 하나하나를 곱씹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시청자들이 극 중 대사를 캡처해 공유하고 자신의 삶에 대입해보는 반응이 유독 많았다는 점도 이 작품의 문장이 지닌 힘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특히 얌전한 것이 약한 것이 아니라는 대사나 그냥 가만히 있어도 괜찮다는 형의 위로처럼 짧지만 힘 있는 문장들이 방영 내내 각종 커뮤니티에서 회자되었습니다. 다만 아쉬운 지점도 분명합니다. 초반 1화와 2화에서 황동만이라는 캐릭터가 지나치게 비호감으로 그려지다 보니 몰입까지 시간이 걸린다는 반응이 있었고 이 캐릭터에 정을 붙이지 못한 채 이탈한 시청자도 있었습니다. 또한 인물의 내면을 설명하는 대사가 많다 보니 사람에 따라 다소 설교조로 느껴질 수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결말 역시 극적인 카타르시스보다는 잔잔한 여운을 택했기 때문에 화끈한 반전을 기대했던 시청자에게는 다소 밋밋하게 다가올 수 있습니다. 실제로 방영 종료 이후 결말이 다소 아쉽다는 반응과 오히려 이런 담백한 마무리가 작품 전체의 메시지와 가장 잘 어울린다는 반응이 나란히 나오기도 했습니다. 이 두 가지 상반된 반응이 공존한다는 사실 자체가 이 드라마가 단순한 오락물을 넘어 시청자 각자의 삶에 질문을 던진 작품이었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공과 실패로 사람을 재단하는 세상 속에서 존재 자체의 가치를 이야기하는 이 드라마의 메시지는 많은 이들의 마음에 오래 남을 만한 진심이 담겨 있습니다. 화려하지 않지만 담백하게 위로를 건네는 드라마를 찾는다면 충분히 볼 가치가 있는 작품이라고 정리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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