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받은 영혼이 선택한 차가운 음식 그리고 복수의 시작을 알리는 서막
김은숙 작가의 작품 더 글로리 (The Glory) 전체를 관통하는 수많은 명장면이 존재하지만 많은 시청자들의 뇌리에 가장 깊이 박힌 잔상은 바로 주인공 문동은이 텅 빈 방 안이나 차가운 편의점 의자에 홀로 앉아 무표정한 얼굴로 김밥 한 줄을 씹어 삼키는 모습일 것입니다. 이 드라마는 단순한 학교 폭력 피해자의 권선징악 스토리를 넘어서 한 인간의 영혼이 어떻게 완벽하게 파괴되고 또 어떤 방식으로 그 파편들을 모아 서늘하게 재조립해 나가는지를 낱낱이 보여주는 처절한 생존의 기록입니다. 상처받은 영혼이 자신의 삶을 연명하기 위해 선택한 가장 차가운 음식인 김밥은 극 중에서 그녀의 삶을 지탱하는 유일한 연료이자 거대한 복수의 시작을 알리는 묵직한 서막으로 작용합니다. 더 글로리 문동은이 먹던 김밥 한 줄에 담긴 작가가 치밀하게 설계한 복수의 영양학적 비밀은 단순히 주인공의 가난이나 시간적인 부족함을 표현하기 위해 투입된 흔하고 얄팍한 장치가 절대 아닙니다. 평생 로맨틱 코미디를 집필해 온 김은숙 작가는 처음으로 시도하는 이 어둡고 무거운 장르물에서 펄펄 끓어오르는 복수심을 얼음장처럼 차갑게 식혀서 이성적으로 실행해야만 하는 주인공의 황량한 내면을 완벽하게 시각화하기 위해 따뜻한 국물이나 갓 지은 밥 대신 밥알이 굳어버린 차가운 김밥을 선택했습니다.
뜨거운 불판 위에서 고기를 구워 먹으며 크게 웃고 고급 레스토랑에서 화려한 만찬을 즐기며 샴페인을 터뜨리는 가해자들의 뜨겁고 탐욕스러운 식탁과 철저하게 대비되는 이 퍽퍽하고 차가운 김밥은 오직 생존과 복수만을 위해 최소한의 영양소만을 섭취하려는 그녀의 굳은 결의를 상징적으로 대변합니다. 탄수화물과 단백질 그리고 약간의 채소가 빈틈없이 한 줄로 압축된 김밥은 영양학적으로는 인간의 생명을 유지하기에 충분하지만 미각적인 쾌락이나 식사 자리가 주는 인간적인 온기는 철저히 거세된 형태의 음식입니다. 우리 일상에서 가장 흔하고 친숙하게 접할 수 있는 이 평범한 음식이 어떻게 한 사람의 피 맺힌 복수극을 십수 년간 이끌어가는 치밀하고도 완벽한 원동력이 되었는지 그녀의 고단한 발자취를 따라가며 그 속에 숨겨진 씁쓸하고도 강렬한 이야기의 실체를 아주 깊이 있게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빛을 잃어버린 소녀의 끔찍한 과거와 영혼까지 부서져 버린 체육관의 기억
드라마의 뼈대가 되는 전체 스토리는 문동은이라는 한 평범하고 꿈 많던 소녀의 영혼이 무참히 짓밟히고 찢겨나가는 참혹한 고등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며 시작됩니다. 박연진을 절대적인 권력의 필두로 하여 전재준 이사라 최혜정 손명오 등으로 구성된 가해자 무리는 아무런 죄의식이나 특별한 이유조차 없이 오직 자신들의 넘치는 권력과 일상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사회적 약자인 문동은을 잔혹한 폭력의 끔찍한 희생양으로 삼았습니다. 학교의 체육관은 본래 학생들의 건강한 에너지가 넘치고 웃음소리가 피어나야 할 청춘의 공간이지만 힘없는 동은에게 그곳은 살이 타들어 가는 고데기의 뜨거운 열기와 빠져나갈 곳 없는 끔찍한 비명이 매일같이 울려 퍼지는 살아있는 지옥 그 자체였습니다. 가해자들은 죄책감이나 동정심이라는 인간적인 감정 자체를 뇌에서 완전히 지워버린 끔찍한 악마들처럼 동은의 연약한 온몸에 지울 수 없는 화상을 입히고 그녀가 가진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바닥까지 산산조각 내버렸습니다. 폭력 그 자체보다 더욱 절망적이고 동은을 벼랑 끝으로 몰아세운 것은 이 끔찍한 폭력의 현장 앞에서 동은을 마땅히 보호해 주어야 할 어른들의 철저한 방관과 비열한 배신이었습니다.
학교의 명예와 진실을 덮기에 급급했던 담임 교사는 교무실에서 오히려 피해자인 동은의 뺨을 수차례 때리며 무자비하게 폭행했고 유일한 혈육이자 보호자여야 할 친엄마조차 가해자 부모가 쥐여준 합의금 몇 푼에 눈이 멀어 딸의 처참한 인생을 팔아넘기고 짐을 싸서 야반도주를 해버렸습니다. 세상 그 어느 곳에도 그녀의 편이 되어주거나 따뜻한 손을 내밀어 주는 어른은 단 한 명도 없었고 뼛속까지 파고드는 차가운 눈이 펑펑 내리던 캄캄한 밤에 동은은 끓어오르는 상처를 안고 스스로 목숨을 끊기 위해 버려진 폐건물 옥상으로 위태롭게 올라갑니다. 하지만 살을 에는 듯한 상처의 지독한 고통 속에서 그녀는 허무한 죽음 대신 핏빛 복수를 선택하게 됩니다. 왜 아무 잘못 없는 피해자만 죽어야 하는가에 대한 근원적이고 처절한 분노가 그녀의 차갑게 식어버린 심장에 다시 거대한 불을 지폈고 그날 이후 그녀의 삶의 유일한 목적과 이유는 오직 박연진을 비롯한 가해자들의 완벽한 파멸 단 하나로 좁혀지게 됩니다. 영혼까지 부서져 버린 그 체육관의 지옥 같은 기억은 동은이 평생의 시간을 걸고 준비할 거대한 복수극의 차갑고 단단한 초석이 되었고 그녀는 자신의 빛나는 청춘과 평범한 미래를 모두 담보로 잡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아주 길고 외로운 싸움의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김밥 한 줄로 버티며 치밀하게 엮어가는 거대한 복수의 거미줄과 영양학적 상징
죽음의 턱밑에서 극적으로 돌아온 문동은은 열악한 방직 공장 노동자로 밤낮없이 일하며 쏟아지는 졸음과 싸우는 피나는 노력 끝에 검정고시를 우수한 성적으로 통과하고 교육대학에 진학하여 마침내 초등학교 교사의 꿈을 이루어 냅니다. 십수 년이 넘는 이 기나긴 고통과 인내의 준비 과정에서 동은의 식사는 번듯한 한 끼가 아니라 대부분 차갑게 굳어버린 김밥이나 편의점 삼각김밥으로만 채워집니다. 더 글로리 문동은이 먹던 김밥 한 줄에 담긴 작가가 치밀하게 설계한 복수의 영양학적 비밀은 바로 이 기나긴 인내의 지점에서 이야기의 무게감을 더하며 가장 선명하게 빛을 발하게 됩니다. 김은숙 작가는 인터뷰를 통해 동은이 모락모락 김이 나는 따뜻한 밥을 챙겨 먹고 포만감을 느끼는 것은 그녀가 품고 있는 서늘한 복수에 대한 결기를 자칫 흐리게 만들 수 있다고 굳게 생각하여 오직 죽지 않고 생존하기 위한 기능적인 연료로서 차가운 김밥을 작품의 핵심 설정으로 부여했다고 밝혔습니다. 영양학적인 측면에서 분석해 보면 김밥은 쌀밥이라는 탄수화물 에너지원과 계란이나 햄이 제공하는 단백질 그리고 시금치 당근 단무지 등 각종 채소가 듬뿍 제공하는 비타민과 무기질이 한 줄 안에 완벽하게 조화롭게 들어간 뛰어난 완전식품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동은이 쫓기듯 섭취하는 이 완벽한 영양소의 김밥에는 맛있는 음식을 음미하는 요리의 즐거움이나 사랑하는 누군가와 마주 앉아 식사하며 나누는 인간적인 온기가 처음부터 철저하게 배제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오직 과로로 쓰러지지 않고 계획한 복수를 완벽하게 완성하기 위해 스스로 모든 인간적인 감정을 철저히 통제하고 미각이 주는 쾌락을 마비시키며 스스로를 기계처럼 다루어 영양소만을 혈관으로 주입하는 지독한 자기 형벌적 행위인 것입니다. 고단하고 숨 막히는 삶의 쳇바퀴 속에서 그녀는 남편의 지독한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멍든 피해자 강현남을 우연히 만나 복수라는 하나의 뚜렷한 공통 목표로 뭉쳐 누구보다 끈끈하고 은밀한 연대를 형성하게 됩니다. 또한 대형 병원장의 귀한 아들이자 겉으로는 해맑아 보이지만 내면에는 살인마에게 아버지를 잃은 깊고 지독한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성형외과 의사 주여정을 만나 기꺼이 당신만의 춤추는 망나니가 되어 칼춤을 추겠다는 그의 맹목적이고 충성스러운 조력을 얻게 됩니다. 동은은 박연진이 세상에서 가장 끔찍하게 사랑하고 아끼는 딸 하예솔과 완벽한 재력을 갖춘 남편 하도영 그리고 대중의 사랑을 받는 화려한 기상캐스터라는 직업적 명성을 하나씩 순서대로 뺏어오기 위해 치밀하게 바둑을 배우고 마침내 연진의 딸이 재학 중인 사립 초등학교의 담임 교사로 당당하게 부임하며 서서히 벗어날 수 없는 거대한 복수의 거미줄을 완성해 나갑니다. 일상의 감정을 철저히 배제하고 차가운 김밥 한 줄로 연명하며 벽돌을 쌓듯 정교하게 쌓아 올린 이 소름 끼치도록 치밀한 계획은 방심하고 있던 가해자들의 숨통을 향해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다가가고 있었습니다.
가해자들의 일상에 스며들어 그들의 숨통을 서서히 조여가는 핏빛 복수극의 실체
침묵하던 문동은이 가해자들의 평온한 일상 한가운데에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면서 드라마는 시청자들마저 숨을 쉬기 힘들 정도로 팽팽하고 숨 막히는 긴장감의 연속으로 빠져들게 됩니다. 동은은 연진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 예솔이의 담임 선생님으로 학교에 등장하여 연진에게 자신이 겪었던 과거의 끔찍했던 공포와 압박감을 고스란히 이자까지 쳐서 되돌려주기 시작합니다. 여기서 돋보이는 동은의 복수 방식은 단순히 칼을 휘두르거나 물리적인 폭력을 가하는 1차원적이고 흔한 형태가 결코 아닙니다. 그것은 가해자들 스스로가 돈과 권력으로 화려하게 구축해 놓은 모래성 같은 삶을 그들 내부의 균열을 통해 스스로 무너뜨리게 만드는 고도의 심리전이자 예술적인 파괴 공작에 가깝습니다. 평생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명확하게 계급을 나누어 겉으로만 가식적인 우정을 유지하던 가해자 무리의 취약한 연결 고리를 정확하게 파고들어 그들 사이에 의심과 불신 그리고 지독한 배신의 씨앗을 깊숙이 심어놓습니다. 뇌가 완전히 망가져 마약에 찌든 예술가 이사라에게는 마약을 제때 공급받지 못할 수 있다는 극도의 불안감을 조성하여 스스로 폭주하게 만들고 돈과 권력에 미치도록 굶주려 있는 스튜어디스 최혜정의 비대한 허영심을 영리하게 자극하여 무리의 비밀을 누설하게 만듭니다.
또한 학창 시절부터 무리에서 항상 개처럼 부림을 당하며 무시당하던 손명오의 밑바닥 열등감을 이용하여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고 잔인하게 물어뜯게 만듭니다. 특히 동은이 기원에서 연진의 남편 하도영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하여 바둑이라는 고상한 매개체로 그의 강렬한 호기심을 끌어내고 결국 도영이 아내 연진의 화려한 껍데기 속에 숨겨진 추악한 폭력의 과거를 직접 마주하게 만드는 묘사는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도 사람의 영혼을 깊숙이 베어버릴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압도적이고 숨 막히는 서사였습니다. 덫에 걸린 줄도 모르던 가해자들은 동은이 치밀하게 쳐놓은 촘촘한 거미줄에 걸려들어 오직 자신들의 알량한 비밀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십수 년의 우정을 버리고 서로를 속이고 협박하며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추악하고 밑바닥의 본성을 가감 없이 화면 가득 드러냅니다. 남의 뼈저린 고통을 짓밟고 일어서서 평생을 찬란하게 빛나는 백야 속에서 군림하며 살 줄 알았던 그들은 동은이 몰고 온 서늘하고 거대한 먹구름 아래에서 서서히 목이 조여오고 숨이 막혀가는 끔찍한 공포를 생생하게 경험하게 됩니다. 동은은 자신의 손에 직접 더러운 피를 묻히지 않고도 오직 그들이 가진 맹목적인 탐욕과 이기심을 영리하게 이용하여 스스로 파멸의 길로 제 발로 걸어 들어가도록 만드는 완벽하고도 핏빛 어린 복수극의 실체를 거침없이 완성해 나갑니다.
스포일러 주의 악인들이 맞이한 처참한 최후와 마침내 완성된 영광 없는 복수의 결말
지금부터 서술할 내용에는 더 글로리 드라마의 치명적인 결말과 핵심 스토리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므로 아직 작품의 마지막까지 감상하지 않으신 분들은 읽기에 각별히 유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문동은이 십수 년간 치밀하게 설계한 거대한 지옥도 안에서 마침내 악인들은 그들이 평생 타인에게 지어온 죄의 끔찍한 무게만큼이나 참혹하고 돌이킬 수 없는 최후를 차례대로 맞이하게 됩니다. 러시아로 도망쳐 부자가 되려던 손명오는 피팅룸에서 박연진이 휘두른 술병에 맞아 쓰러진 후 과거의 또 다른 피해자였던 김경란의 마지막 일격에 의해 참혹하고 쓸쓸하게 살해당합니다. 교회에서 숨겨둔 마약 투약 영상이 대중에게 낱낱이 공개되며 수많은 신도들 앞에서 철저히 망가진 이사라는 극도의 분노와 마약 금단 증상에 취해 자신이 숨겨둔 흉기로 최혜정의 목을 무자비하게 찔러 그녀의 가장 큰 무기였던 목소리를 영원히 회복 불가능하게 빼앗아 버립니다. 평생을 남을 깔보고 폭력을 행사하며 안하무인으로 살았던 전재준은 목소리를 잃고 분노한 혜정이 안약에 섞어둔 독극물로 인해 두 눈의 시력을 완전히 잃게 되고 맹인 상태로 공사장을 헤매다 하도영에 의해 깊은 시멘트 반죽 속으로 처참하게 추락하여 누구도 모르는 끔찍한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모든 학폭을 기획했던 주동자이자 절대 악인 박연진은 살인죄와 학폭의 증거들이 만천하에 드러나면서 그토록 집착했던 완벽한 남편 도영에게 이혼당하고 하나뿐인 딸 예솔이마저 잃게 되며 심지어 자신을 평생 돈으로 보호해주던 친엄마에게조차 철저하고 냉정하게 버림받습니다. 그녀는 결국 세상과 완벽하게 단절된 차가운 교도소 독방에 갇혀 죄수들의 조롱거리가 된 채로 평생을 비참한 고통 속에서 썩어가게 됩니다. 자신의 목숨을 건 모든 복수를 완벽하게 끝마친 동은은 더 이상 삶을 이어갈 목적을 잃어버리고 폐건물 옥상에서 허무하게 몸을 던지려 하지만 그 순간 주여정 어머니가 나타나 자신의 아들을 지옥에서 꺼내달라는 간절하고 눈물 어린 부탁을 하게 되고 동은은 옥상에서 내려와 죽음 대신 새로운 삶을 선택하게 됩니다. 자신의 핏빛 복수는 완전히 끝났지만 이제는 끔찍한 사이코패스 살인마에게 사랑하는 아버지를 잃고 지옥 같은 환영 속에서 고통받으며 살고 있는 여정의 복수를 돕기 위해 그녀는 기꺼이 그의 완벽한 칼잡이 망나니가 되기로 결심합니다. 차갑고 시렸던 겨울이 서서히 지나가고 아름다운 봄날에 동은과 여정이 함께 굳은 표정으로 지옥문 같은 교도소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마지막 장면은 그녀의 삶이 더 이상 과거의 끔찍한 상처에만 갇혀 있지 않고 누군가를 향한 숭고한 구원과 새로운 연대로 나아갔음을 묵직하게 보여줍니다. 비록 이 처절한 복수의 끝에 찬란한 영광이나 따뜻한 위로는 없었을지라도 스스로 잃어버렸던 인간의 존엄성을 당당하게 되찾고 사랑하는 이와 함께 새로운 삶을 향해 걸어 나아가는 그녀의 마지막 발걸음은 시청자들에게 묘한 안도감과 깊고 묵직한 여운을 남기며 처절했던 복수극의 진정한 결말을 아름답고도 서늘하게 완성해 냅니다.
송혜교 임지연 이도현 배우들이 입체적으로 완성해 낸 선과 악의 소름 끼치는 얼굴들
더 글로리라는 작품이 국내를 넘어 전 세계적인 신드롬을 일으키며 엄청난 흥행을 거둘 수 있었던 배경에는 치밀하고 완벽한 대본의 완성도뿐만 아니라 활자 속에 갇혀 있던 캐릭터의 숨결을 완벽하게 현실로 불어넣은 주연 배우들의 미친 연기력이 가장 든든하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먼저 주인공 문동은 역을 맡은 송혜교 배우는 그동안 십수 년간 대중에게 널리 익숙했던 아름답고 화려한 로맨스 퀸의 고정된 이미지를 완전히 벗어던지고 상처로 가득한 건조하고 메마른 얼굴로 돌아와 평단과 대중의 압도적이고 열광적인 찬사를 받았습니다. 그녀는 화장기가 전혀 없는 창백하고 지친 얼굴과 삶의 생기를 완전히 잃어버린 공허하고 텅 빈 눈빛 그리고 분노와 슬픔 등 감정의 진폭을 억지로 짓누른 듯한 서늘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영혼이 바스러진 피해자의 내면을 시청자가 소름이 돋을 정도로 정확하고 처절하게 묘사해 냈습니다. 특히 가해자들의 체육관에 찾아가 기괴한 미소를 지으며 환호하고 박수를 치는 장면은 그녀가 보여준 연기 변신의 정점을 찍은 완벽한 순간이었습니다.
반대편에서 абсолю적인 악의 축인 박연진을 연기한 임지연 배우는 타인의 처절한 고통에 눈곱만큼도 공감하지 못하는 순수한 절대 악의 모습을 놀라운 감정 표현력으로 소화해 내며 자신의 필모그래피에 남을 최고의 인생 캐릭터를 새롭게 경신했습니다. 안면 근육을 기괴하고 얄밉게 일그러뜨리며 상대를 조롱하는 비열한 표정이나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을 때 핏대를 세우며 악에 받쳐 쏟아내는 광기 어린 대사 처리는 브라운관 너머 시청자들의 분노를 극한으로 끌어올리는 데 완벽하게 일조했습니다. 감옥에 갇혀 억지로 날씨 예보를 하며 울부짖는 그녀의 마지막 연기는 악인의 비참한 몰락을 너무나도 생생하게 보여주었습니다. 또한 주여정 역을 맡은 이도현 배우 역시 겉으로는 다정하게 미소 짓는 따뜻한 온실 속 화초 같지만 내면 깊은 곳에는 아버지를 처참하게 잃은 끔찍한 트라우마와 범인을 향한 서늘한 살의를 품고 있는 입체적인 인물의 복잡다단한 심리를 무척 섬세하고 절제된 연기로 풀어냈습니다. 동은을 향한 무조건적인 순수한 애정과 살인마를 환상 속에서 수차례 찌르며 분노하는 서늘한 눈빛 사이를 자유자재로 오가는 그의 위태로운 감정선은 자칫 무겁고 우울해질 수 있는 극의 흐름에 독특한 텐션과 긴장감을 훌륭하게 부여했습니다. 이 세 명의 주연 배우가 매 순간 뿜어내는 압도적이고 치열한 에너지가 스크린 속에서 격렬하게 충돌하면서 극단적인 선과 악의 피 튀기는 대립은 더욱 강력한 설득력을 얻었고 시청자들을 한 번 보면 빠져나올 수 없는 이야기의 깊은 심연으로 끌어들이는 가장 강력한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짜릿한 카타르시스 이면에 남겨진 작위적인 설정과 현실적인 씁쓸함이 교차하는 감상
더 글로리는 학교 폭력이라는 무겁고 외면하고 싶은 사회적 이슈를 대중적인 장르물의 스크린 위에 성공적으로 올려놓고 현실에서 불가능해 보이던 가해자들을 가장 처절한 방식으로 응징함으로써 대중들이 오랜 시간 목말라하고 열망하던 엄청나고 짜릿한 카타르시스를 확실하게 선사한 훌륭한 명작임에는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히고 냉정하고 객관적인 비평가의 시선으로 작품을 다시 돌아보면 드라마가 가진 현실적인 한계와 다소 작위적으로 느껴지는 설정들이 곳곳에서 눈에 띄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야기 구조에서 느껴지는 가장 큰 단점은 후반부 가해자들의 급격한 몰락 과정이 주인공 문동은의 천재적이고 치밀한 지략에 의해 무너졌다기보다는 악인들 스스로가 가진 지나친 우둔함과 충동적이고 일차원적인 감정 폭발에 너무 기대어 자멸했다는 점입니다.
전반부에서 그토록 철두철미하고 견고하게 자신들만의 화려한 세계를 방어했던 똑똑한 악인들이 동은이 던진 아주 단순하고 작은 미끼에 너무나도 쉽게 넘어가 십수 년의 우정을 버리고 서로를 찌르고 배신하는 모습은 초반에 치밀하게 쌓아 올렸던 팽팽하고 숨 막히던 심리전의 긴장감을 다소 헐겁고 시시하게 만드는 아쉬운 요인이 되었습니다. 또한 감정이 메마른 동은과 상처를 안고 있는 여정 사이의 로맨스 코드는 작가 특유의 은유적이고 시적인 대사들이 쉴 새 없이 더해지면서 얼음처럼 차갑고 건조하게 흘러가야 할 피 튀기는 복수극의 전반적인 분위기와 다소 이질적으로 충돌하며 이야기의 몰입을 방해한다는 현실적인 비판을 피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위대한 작품이 대중의 가슴속에 남긴 가장 묵직하고 가슴 아픈 감상은 드라마의 통쾌함 뒤에 찾아오는 현실의 지독한 씁쓸함입니다.
텔레비전 속의 문동은은 초인적인 인내심과 어마어마한 노력 그리고 막대한 재력을 가진 우연한 조력자들의 절대적인 도움을 받아 완벽한 사적 복수에 성공하지만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차가운 현실 속의 수많은 진짜 문동은들은 여전히 과거의 끔찍한 상처에 갇혀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 홀로 방 안에서 울며 고통받고 방치되어 있다는 뼈아픈 사실입니다. 악인들이 줄줄이 수갑을 차고 파멸하는 극적인 사이다 결말을 보며 손뼉을 치고 환호하면서도 시청자들의 마음 한구석이 서늘해지고 먹먹해지는 진짜 이유는 현실의 수많은 학교 폭력 가해자들은 여전히 뻔뻔하게 부와 기득권을 누리며 살아가고 피해자들에게 드라마 같은 영광이 주어지는 경우는 너무나도 기적에 가깝고 희박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흡입력 있는 오락성과 묵직한 사회적 고발 메시지를 동시에 완벽하게 잡아낸 엄청난 수작이지만 통쾌하고 짜릿한 핏빛 복수극 뒤에 남겨진 이 무겁고 슬픈 질문들은 우리 사회와 법 제도가 다 함께 연대하여 앞으로 반드시 풀어나가야 할 영원하고도 아픈 숙제로 남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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