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프(Hope) 나홍진 감독 10년 만의 복귀작이 던진 충격적인 결말과 진짜 관람 후기

 


나홍진 감독이 10년 만에 던진 승부수

추격자와 황해 그리고 곡성으로 한국 스릴러의 새로운 기준을 세웠던 나홍진 감독이 무려 십 년 만에 장편 영화로 돌아왔습니다. 이번 작품은 놀랍게도 SF 액션 스릴러라는 낯선 장르입니다. 제작비만 오백억 원이 넘게 투입된 국내 최대 규모의 프로젝트로 알려지면서 개봉 전부터 화제를 모았습니다. 게다가 올해 열린 제79회 칸 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되어 상영이 끝난 뒤 약 칠 분간 기립박수가 쏟아졌다는 소식까지 전해지면서 기대감은 한층 더 커졌습니다. 지난 7월 15일 국내에 정식 개봉한 뒤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며 그 화제성을 그대로 증명해냈습니다. 저 역시 개봉일 극장을 찾아 156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을 채우고 나왔는데 솔직히 말하면 보고 나서도 한참 동안 머릿속이 복잡했던 영화였습니다. 오늘은 그 감상을 최대한 담백하게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호포항이라는 이름조차 낯선 마을에서 벌어지는 사건

이야기는 비무장지대 인근에 자리한 가상의 어촌마을 호포항에서 시작됩니다. 시대적 배경은 정확히 명시되지 않지만 대략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 초쯤으로 짐작할 수 있게 연출되어 있습니다. 어느 날 인근 야산에서 큰 산불이 일어나면서 지원 인력들이 진화 작업에 투입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을 전체의 통신마저 완전히 끊겨버립니다. 남은 것은 노인들뿐인 작은 출장소 마을과 그곳을 지키던 인물들뿐입니다. 황정민이 연기한 고범석과 정호연이 연기한 임성애는 노인들만 남은 마을을 지키기 위해 사투를 벌이고 산으로 향했던 청년들과 조인성이 연기한 고성기는 오히려 정체불명의 존재에게 쫓기는 처지가 됩니다. 초반부에는 괴물이라는 표현만 등장할 뿐 외계인이라는 단어조차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관객 입장에서는 이 존재의 정체를 짐작조차 하지 못한 채 극도의 긴장감 속에서 이야기를 따라가게 됩니다. 특히 초반 60분가량 이어지는 오프닝 시퀀스는 홍경표 촬영감독 특유의 황량하고 스산한 화면으로 채워져 있어 몰입도가 상당히 높습니다. 중반부를 지나면서부터는 SF적 요소가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하고 인간과 미지의 존재 사이의 충돌이 전면에 나서게 됩니다. 무지에서 비롯된 작은 오해가 점점 걷잡을 수 없는 비극으로 번지는 과정이 이 영화의 가장 큰 줄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황정민 조인성 정호연 세 배우가 만들어낸 긴장감

이 영화를 이야기할 때 배우들의 연기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먼저 황정민은 고범석이라는 인물을 통해 위기 속에서도 마을 사람들을 지키려는 책임감 있는 어른의 모습을 무게감 있게 그려냅니다. 소리를 지르거나 격정적인 감정을 폭발시키는 장면보다 침묵과 눈빛으로 압박감을 전달하는 순간들이 특히 인상적입니다. 조인성은 고성기 역할을 맡아 극 중 가장 급격한 감정 변화를 겪는 인물을 연기하는데 초반의 다소 여유로운 태도에서 후반부의 절박함으로 넘어가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설득력을 갖습니다. 정호연은 오징어 게임 이후 국내 상업 영화에서 처음으로 비중 있는 역할을 맡았는데 임성애라는 인물을 통해 강단 있으면서도 인간적인 면모를 동시에 보여줍니다. 세 배우의 합이 특히 빛나는 장면은 마을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함께 움직이는 후반부 시퀀스인데 각자의 두려움과 책임감이 뒤섞인 표정 연기만으로도 상황의 절박함이 충분히 전달됩니다. 다만 외국 배우들이 연기한 외계 생명체 캐릭터들의 존재감이 상대적으로 약하게 느껴지는 부분은 아쉬운 지점으로 남습니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니 결말이 궁금하지 않다면 여기서 멈춰주세요

이제부터는 영화의 결말을 구체적으로 다루려고 합니다. 아직 관람 전이라면 이 부분은 건너뛰고 나중에 다시 찾아주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영화 후반부에서 밝혀지는 사건의 진짜 원인은 다소 충격적입니다. 한 청년이 산속에서 새끼 외계 생명체를 실수로 죽인 뒤 그 사실을 숨기려고 냉동창고에 감춰둔 것이 모든 비극의 시작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즉 마을을 덮친 재앙은 거대한 악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한 개인의 두려움과 은폐에서 시작된 인과응보였던 셈입니다. 결말부에서는 거대한 비행 물체가 등장해 산 전체를 통째로 날려버리는 압도적인 스케일의 장면이 펼쳐집니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는 인간들과 닮은 듯 다른 외계 생명체들이 서로 의미심장한 대화를 나누며 새로운 다짐을 하는 모습으로 영화가 마무리됩니다. 반면 인간들은 자신들이 겪은 일의 전모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볼 뿐입니다. 이 장면은 관객에게 묘한 죄책감과 찝찝함을 동시에 안겨주는데 나홍진 감독 특유의 블랙 코미디 요소가 살짝 섞여 있어 웃음과 불편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독특한 엔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짧은 엔딩 크레딧 이후에는 쿠키 영상도 준비되어 있으니 끝까지 자리를 지키는 것을 추천합니다.

직접 보고 느낀 장점과 솔직한 아쉬움

전체적으로 이 영화는 호불호가 상당히 크게 갈릴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우선 장점을 이야기하자면 초반 60분의 몰입감과 긴장과 이완을 반복하며 서서히 쌓아 올리는 액션 연출은 나홍진 감독만이 보여줄 수 있는 확실한 강점입니다. 배우들의 연기 역시 각자의 몫을 충분히 해내면서 극의 무게중심을 잘 잡아줍니다. 다만 아쉬운 점도 분명합니다. 개봉 전부터 우려가 있었던 시각 특수효과는 실제로 보니 배경과 생명체가 다소 따로 노는 듯한 이질감이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특히 텅 빈 고속도로에서 벌어지는 추격 장면에서는 그래픽 티가 다소 도드라져 몰입을 방해하기도 합니다. 또한 후반부로 갈수록 장르가 급격히 전환되면서 초반의 스릴러적 긴장감을 기대했던 관객이라면 다소 당혹스러울 수 있는 전개입니다. 156분이라는 러닝타임 역시 체감상 짧지 않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영화에서 쉽게 시도하지 않는 소재와 스케일에 도전했다는 점 그리고 끝까지 예측을 벗어나는 전개를 밀어붙였다는 점만큼은 확실히 인정할 만합니다. 청소년 관람 시에는 신체 훼손 장면 등 다소 잔인한 묘사가 있는 만큼 참고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결국 이 영화는 완벽한 웰메이드보다는 호불호가 갈리더라도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싶어 하는 감독의 도전이 고스란히 담긴 작품이라고 정리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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