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믿고 있는 진실이 과연 온전한 진실일까요. 때로는 눈앞에 보이는 사실보다 감춰진 이면이 더 잔혹하고 두려울 때가 있습니다. 2025년 9월 개봉한 영화 살인자 리포트는 벼랑 끝에 몰린 한 기자와 자신이 연쇄살인범이라 주장하는 의문의 남자가 벌이는 치열한 심리전을 다룬 작품입니다. 제한된 공간에서 오직 대화만으로 서스펜스를 쌓아가는 이 영화는 진실을 쫓는 자의 집요함과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수단을 정당화하려는 자의 논리가 팽팽하게 맞서며 보는 이의 숨통을 조여옵니다. 주연을 맡은 조여정 배우의 처절한 연기 변신과 더 글로리 이후 더욱 깊어진 정성일 배우의 서늘한 카리스마가 만나 폭발적인 시너지를 일으킵니다. 단순히 범인을 찾는 스릴러가 아니라 피해자의 고통과 사회적 정의에 대해 묵직한 물음을 던지는 이 영화는 극장에서 느낄 수 있는 압도적인 몰입감을 선사합니다. 밀실이라는 한정된 공간이 주는 답답함이 오히려 캐릭터들의 심리를 더욱 날카롭게 파고드는 장치가 되어 관객을 그들의 대화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만듭니다. 지금부터 살인자 리포트가 들려주는 충격적인 진실의 기록을 함께 펼쳐보겠습니다.
특종을 노리는 위기의 기자 백선주와 살인마의 은밀한 제안
한때는 잘나가는 사회부 기자였지만 현재는 데스크의 압박과 가정불화로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은 백선주가 있습니다. 그녀는 거대 기업 일신그룹의 비리를 파헤치려다 내부 제보자가 의문의 뺑소니 사고로 사망하고 결정적인 증거마저 사라지면서 궁지에 몰리게 됩니다. 설상가상으로 하나뿐인 딸 예린이마저 학교폭력 피해를 입고 마음의 문을 닫아버려 선주는 공과 사 모든 면에서 벼랑 끝에 서 있습니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그녀에게 어느 날 낯선 번호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옵니다. 수화기 너머의 남자는 자신을 11명을 살해한 연쇄살인범이라고 소개하며 단독 인터뷰를 제안합니다. 장난전화로 치부하기엔 남자가 털어놓는 정보들이 너무나 구체적이고 경찰조차 파악하지 못한 미제 사건의 디테일을 담고 있었습니다. 특종에 목마른 선주는 이것이 자신의 인생을 역전시킬 마지막 기회라 직감하고 남자가 지정한 호텔 스위트룸으로 향합니다. 그곳에는 정신과 의사라는 번듯한 직업을 가진 이영훈이 기다리고 있었고 그는 인터뷰를 시작하는 조건으로 기묘한 제안을 건넵니다.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새로운 살인을 멈추겠지만 만약 선주가 인터뷰를 중단하거나 방을 나간다면 12번째 희생자가 발생할 것이라는 섬뜩한 경고였습니다.
치료라는 명분으로 자행된 살인 그리고 드러나는 충격적 동기
호텔 방이라는 밀폐된 공간에서 선주와 영훈의 숨 막히는 대화가 시작됩니다. 영훈은 자신이 저지른 살인들이 단순한 쾌락을 위한 것이 아니라 환자들을 위한 치료의 일환이었다고 주장합니다. 정신과 의사인 그는 범죄 피해 트라우마로 고통받는 환자들을 상담하며 법이 제대로 처벌하지 못한 가해자들 때문에 피해자가 평생 고통 속에 살아가는 현실에 분노했습니다. 영훈은 환자들의 고통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가해자들을 직접 처단하는 방식을 택했고 이를 치료라고 명명하며 자신의 살인을 정당화합니다. 선주는 기자의 윤리와 정의감으로 영훈의 논리에 반박하려 하지만 그가 들려주는 피해자들의 사연과 법망을 피해 간 가해자들의 악랄함을 들으며 혼란에 빠집니다. 영훈은 선주에게 당신이라면 내 환자들을 어떻게 구원할 수 있겠느냐고 되묻으며 그녀의 도덕적 딜레마를 자극합니다. 인터뷰가 깊어질수록 영훈은 선주 개인의 아픔까지 꿰뚫어 보며 그녀를 심리적으로 압박해오고 선주는 이 인터뷰가 단순한 취재가 아니라 자신을 겨냥한 거대한 덫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입니다. 영훈은 선주의 딸 예린의 이야기를 꺼내며 선주가 외면하고 싶었던 진실을 마주하게 만듭니다.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던 진짜 악마와 마주하다
인터뷰가 절정으로 치닫자 영훈은 선주가 그토록 찾아헤매던 일신그룹 비리 사건의 사라진 증거에 대해 언급합니다. 그리고 충격적이게도 선주의 딸 예린을 괴롭히고 입을 다물게 만든 범인이 선주가 가장 신뢰하던 후배 기자이자 조력자인 한상우였다는 사실을 폭로합니다. 상우는 도박 빚에 시달리다 일신그룹의 사주를 받고 선주의 취재 수첩을 훔쳤으며 이 과정에서 우연히 마주친 예린을 협박하고 폭행했던 것입니다. 영훈은 상우가 지금 이 호텔 어딘가에서 선주를 감시하고 있으며 인터뷰가 끝나면 선주마저 처리할 계획을 꾸미고 있다고 경고합니다. 선주는 믿을 수 없는 현실에 오열하지만 영훈이 내민 증거들은 모든 것이 사실임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영훈은 선주에게 마지막 선택을 강요합니다. 법의 심판을 기다리며 상우가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줄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방식대로 상우를 처단하여 딸의 복수를 완성할 것인지 결정하라는 것입니다. 선주는 기자의 신념과 엄마로서의 분노 사이에서 갈등하고 영훈은 그런 선주에게 총 한 자루를 건네며 심판의 방아쇠를 당길 것을 종용합니다. 호텔 밖에서는 경찰 사이렌 소리가 들려오고 선주와 영훈 그리고 숨어서 상황을 지켜보던 상우의 운명은 예측할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닫습니다.
한계까지 밀어붙이는 조여정의 압도적인 감정 연기
백선주 역을 맡은 조여정 배우는 이 영화에서 그야말로 신들린 연기를 보여줍니다. 초반부에는 특종에 눈이 먼 냉철한 기자의 모습을 보여주다가 영훈과의 인터뷰가 진행될수록 혼란과 공포 그리고 모성애가 뒤섞인 복합적인 감정을 폭발시킵니다. 특히 자신의 딸을 해친 범인이 가장 믿었던 후배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무너져 내리는 장면은 보는 이들의 가슴을 후벼 팝니다. 대사 없이 떨리는 눈동자와 거친 호흡만으로 선주의 절망을 표현해내는 그녀의 내공은 감탄을 자아냅니다. 조여정은 좁은 호텔 방이라는 공간적 제약 속에서도 화면을 가득 채우는 에너지를 발산하며 관객이 잠시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듭니다. 그녀의 연기는 단순한 피해자의 비통함을 넘어 정의와 복수 사이에서 고뇌하는 인간의 나약함까지 섬세하게 그려내며 영화의 품격을 한 단계 높여주었습니다.
선과 악의 경계를 허무는 정성일의 서늘한 존재감
살인범 이영훈을 연기한 정성일 배우는 젠틀한 의사의 얼굴 뒤에 감춰진 광기를 소름 돋게 표현했습니다. 그는 기존의 연쇄살인범 캐릭터들이 보여주는 과장된 광기나 폭력성 대신 차분하고 논리적인 말투로 자신의 살인을 설명하며 더욱 섬뜩한 공포를 조성합니다.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끔찍한 살해 과정을 묘사하는 그의 모습은 악마가 있다면 저런 모습일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정성일은 영훈이라는 캐릭터가 가진 이중성을 완벽하게 소화해냈습니다. 환자를 생각하는 의사의 따뜻한 눈빛과 가해자를 처단할 때의 냉혹한 눈빛을 자유자재로 오가며 관객을 헷갈리게 만듭니다. 그가 보여주는 절제된 연기는 영훈이라는 인물에게 묘한 설득력을 부여하여 관객이 살인범의 논리에 빠져들게 만드는 위험한 매력을 발산합니다.
현실적인 시각으로 본 살인자 리포트의 명암
살인자 리포트는 한국 영화에서 보기 드문 밀실 스릴러라는 장르를 시도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합니다. 화려한 액션이나 추격전 없이 오직 대사와 배우들의 연기만으로 100분이 넘는 러닝타임을 끌고 가는 힘이 대단합니다. 사적 제재라는 시의성 있는 주제를 다루면서도 섣불리 정답을 내리지 않고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는 방식도 세련되었습니다. 하지만 공간의 제약이 주는 답답함을 해소할 만한 시각적 장치가 부족하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영화 중반부까지 이어지는 대화 장면이 다소 길게 느껴져 지루함을 유발할 수 있으며 사건의 반전 요소가 스릴러 장르를 많이 접한 관객에게는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범주 내에 있다는 점도 단점입니다. 특히 후반부 급격하게 몰아치는 전개는 초반의 촘촘했던 심리 묘사에 비해 다소 설득력이 떨어지는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우들의 연기 대결만으로도 이 영화는 충분히 볼 가치가 있습니다.
스포일러 주의 모든 것이 밝혀지는 충격적인 결말
선주는 결국 영훈이 건넨 총을 들고 숨어있던 상우를 찾아냅니다. 상우는 자신의 죄를 뉘우치기는커녕 오히려 선주를 조롱하며 뻔뻔한 태도를 보입니다. 분노에 찬 선주가 방아쇠를 당기려는 찰나 그녀는 딸 예린이 자신에게 했던 말을 떠올립니다. 엄마는 부끄러운 사람이 되지 말아 달라는 딸의 부탁이었습니다. 선주는 결국 총을 거두고 상우를 죽이는 대신 그가 자백하는 모든 내용을 녹음하여 세상에 폭로하기로 결심합니다. 이때 경찰 특공대가 호텔 방을 급습하고 영훈은 혼란을 틈타 사라집니다. 시간이 흐른 뒤 선주는 상우의 범죄와 일신그룹의 비리를 보도하여 기자로서 재기에 성공하고 딸과의 관계도 회복합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병원으로 돌아간 영훈이 새로운 아동학대 피해 아동을 상담하는 모습으로 이어집니다. 아이의 몸에 난 상처를 보며 서늘한 미소를 짓는 영훈의 표정과 함께 화면이 암전되며 영화는 끝납니다. 이는 영훈의 치료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암시하며 관객에게 섬뜩한 여운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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