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우리 집 현관으로 멸망이 들어왔다(Doom at Your Service) 시한부 인생과 멸망의 애틋한 계약 로맨스


만약 당신의 삶에 남은 시간이 단 100일뿐이라면 어떤 소원을 비시겠습니까.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행복한 시간 아니면 못다 이룬 꿈을 향한 마지막 불꽃. 여기 자신의 시한부 선고와 겹쳐진 온갖 불행 앞에 주저앉아 “세상 다 망해라”라고 외친 한 여자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절망 섞인 외침에 정말로 ‘멸망’ 그 자체가 찾아옵니다. tvN 드라마 ‘어느 날 우리 집 현관으로 멸망이 들어왔다’는 바로 이처럼 황당하고도 운명적인 만남에서 시작하는 판타지 로맨스입니다. 이 작품은 단순히 인간과 초월적 존재의 사랑 이야기를 넘어 삶과 죽음 운명과 선택의 갈림길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소중히 여겨야 할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깊이 있는 질문을 던집니다. 사라지는 것들의 소중함을 이야기하는 이 애틋하고도 아름다운 100일간의 기록 속으로 지금 들어가 보겠습니다.

“세상 다 망해라” 절망 끝에서 시작된 만남

웹소설 편집자로 평범하게 살아가던 탁동경(박보영 분)의 인생은 하루아침에 송두리째 무너집니다. 뇌종양으로 100일 시한부 선고를 받은 것도 모자라 남자친구는 유부남이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회사에서는 곤란한 상황에 처합니다. 최악의 하루를 보낸 그녀는 술에 취해 밤하늘을 보며 “세상 다 망해라! 멸망시켜줘!”라고 소리칩니다. 다음 날 아침 그녀의 눈앞에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집니다. ‘멸망(서인국 분)’이라는 이름을 가진 한 남자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와 그녀의 소원을 들어주겠다며 나타난 것입니다. 그는 신과 인간 사이에서 태어나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소멸을 관리하는 초월적인 존재였습니다. 그는 인간들의 온갖 부정적인 감정을 먹고살며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영원히 존재해야 하는 운명에 지쳐 있었습니다. 동경의 소원은 그에게 자신의 존재를 끝낼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습니다. 그렇게 자신의 죽음을 앞둔 인간과 자신의 소멸을 꿈꾸는 멸망의 기묘한 동거와 계약이 시작됩니다.

죽음과 사랑을 담보로 한 100일간의 계약

멸망은 동경에게 거부할 수 없는 계약을 제안합니다. 앞으로 100일 동안 고통 없이 살게 해주는 대신 100일이 되는 날 동경이 ‘세상의 멸망’을 진심으로 소원으로 빌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동경이 계약을 파기하면 그 순간 그녀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대신 죽게 됩니다. 누구도 사랑하지 않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한 동경은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두 사람은 위태로운 계약 관계를 이어갑니다. 멸망은 동경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그녀의 곁을 맴돌지만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두 사람 사이에는 예상치 못한 감정이 싹트기 시작합니다. 멸망은 동경의 따뜻함과 생에 대한 의지를 보며 자신이 그토록 경멸했던 인간을 이해하게 되고 처음으로 ‘살고 싶다’는 감정을 느낍니다. 동경 역시 차갑고 냉소적인 모습 뒤에 숨겨진 멸망의 슬픔과 고독을 보며 그에게 연민을 느끼고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사랑이 깊어질수록 계약의 조건은 더욱 잔인한 족쇄가 되어 그들을 옭아맵니다. 세상의 멸망을 빌어야 하는 여자와 그녀가 사랑하면 대신 죽어야 하는 남자의 사랑은 시작부터 비극을 예고하고 있었습니다.

운명적 서사를 완성한 박보영과 서인국

이 드라마의 판타지적인 설정을 시청자들이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은 두 주연 배우 박보영과 서인국의 공이 절대적이었습니다. 탁동경 역을 맡은 박보영은 ‘뽀블리’라는 애칭에 걸맞은 사랑스러움은 물론 시한부 환자의 절망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강인함을 동시에 보여주며 극의 중심을 단단히 잡았습니다. 특히 죽음의 공포와 사랑의 설렘이라는 극단적인 감정을 오가는 섬세한 연기는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하기에 충분했습니다. 멸망 역의 서인국은 인간미 없는 초월적 존재의 차가운 모습부터 사랑을 알게 되면서 점차 변해가는 과정까지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선보였습니다. 그는 냉소적인 눈빛 속에 슬픔과 연민을 담아내며 ‘나쁜 남자’처럼 보이지만 결국 사랑하는 이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애틋한 캐릭터를 완벽하게 구축했습니다. 두 배우가 만들어내는 애틋하고도 애절한 케미스트리는 자칫 비현실적으로만 느껴질 수 있는 이야기에 강한 설득력을 부여하며 시청자들이 두 사람의 운명적인 사랑을 끝까지 응원하게 만들었습니다.

사랑을 위해 기꺼이 멸망을 선택하다

스포일러를 원하지 않는 분들은 이 부분을 주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동경과 멸망은 피할 수 없는 운명 앞에서 고뇌합니다. 동경은 멸망을 살리기 위해 세상의 멸망을 빌어야 하고 멸망은 동경을 살리기 위해 자신이 사라져야 하는 딜레마에 빠집니다. 결국 멸망은 동경과 세상 모든 것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의 소멸을 선택합니다. 그는 동경의 운명에 개입한 대가로 신에게 모든 존재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는 형벌을 받고 동경의 병과 불행을 모두 끌어안은 채 완전히 소멸합니다. 모든 것이 끝난 듯 보였지만 동경은 그를 잊지 않고 계속해서 그리워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기적처럼 멸망이 다시 돌아옵니다. 신의 변덕이었는지 아니면 두 사람의 사랑이 만들어낸 기적이었는지 그는 더 이상 초월적인 존재가 아닌 ‘김사람’이라는 이름을 가진 평범한 인간으로 다시 태어난 것입니다. 동경의 병도 깨끗이 사라지고 두 사람은 마침내 모든 족쇄에서 벗어나 평범한 연인으로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며 드라마는 희망적인 결말을 맞이합니다.

삶의 의미를 묻는 판타지 로맨스의 성취와 한계

‘어느 날 우리 집 현관으로 멸망이 들어왔다’는 독특한 설정과 철학적인 메시지를 성공적으로 결합시킨 웰메이드 판타지 로맨스입니다. 이 드라마의 가장 큰 장점은 시한부라는 다소 상투적인 소재를 ‘멸망’이라는 초월적 존재와의 계약 관계와 엮어내어 신선한 긴장감과 재미를 만들어냈다는 점입니다. 또한 ‘사라지는 것들은 모두 아름답다’는 주제 의식을 바탕으로 삶의 유한성과 사랑의 소중함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담아내며 단순한 로맨스를 넘어선 감동과 여운을 선사합니다. 하지만 단점도 존재합니다. 멸망과 소녀신을 둘러싼 세계관이 다소 복잡하고 추상적이어서 일부 설정들이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고 넘어가는 부분이 있습니다. 또한 주연 커플의 서사에 비해 조연들의 이야기가 상대적으로 분량이 많고 다소 산만하게 느껴져 극의 몰입을 방해한다는 평가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아름다운 영상미와 주연 배우들의 호연 그리고 삶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대사들이 어우러져 많은 이들의 ‘인생 드라마’로 기억되기에 충분한 매력을 지닌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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