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미러 존은 끔찍해 (Black Mirror: Joan Is Awful), 스트림베리 이용약관 동의가 부른 최악의 사생활 침해

 


‘모두 동의’ 버튼을 누르기 전 당신은

우리는 새로운 앱을 설치하거나 서비스에 가입할 때마다 무수히 긴 이용약관과 마주합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빼곡한 글자들을 단 한 줄도 읽지 않은 채 스크롤을 내려 '동의합니다' 버튼을 누를 것입니다. 그것은 일상이 된 습관입니다. 하지만 만약 그 작은 동의 버튼 하나가 당신의 가장 사적인 순간 심지어 당신 자신을 통째로 회사에 넘겨주는 계약이라면 어떨까요. 당신의 오늘 하루가 정확히 오늘 밤 드라마로 방영된다면 감당할 수 있습니까. 블랙미러 시즌6의 첫 번째 에피소드 '존은 끔찍해 (Joan Is Awful)'는 바로 이 지독하게 현실적인 공포를 정면으로 다룹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가 무심코 클릭하는 동의 버튼 뒤에 숨겨진 거대 기술 기업의 오만함과 개인의 사생활이 어떻게 완벽하게 상품화될 수 있는지 충격적이면서도 유쾌한 풍자로 보여줍니다. '존은 끔찍해'는 단순한 드라마가 아니라 지금 당장 스마트폰을 든 우리 모두에게 보내는 경고장입니다.

내 인생이 드라마로 생중계되다

이야기는 평범한 여성 '존'의 하루를 따라가며 시작합니다. 그녀는 테크 회사에서 중간 관리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하루는 완벽하지 않습니다. 아침부터 어딘가 공허한 표정으로 약혼자 크리시와 아침을 먹고 출근해서는 부하 직원을 해고해야 하는 불편한 임무를 수행합니다. 그녀는 심리 상담사에게 자신의 약혼자가 얼마나 지루한지 험담을 하고 심지어 퇴근길에는 옛 연인 맥을 만나 잠시 키스를 나누며 흔들리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녀는 분명 도덕적으로 완벽하지 않은 결점 많은 보통 사람입니다. 그렇게 지친 하루를 마치고 존은 약혼자와 함께 저녁을 먹으며 글로벌 OTT 서비스인 '스트림베리'를 켭니다. 넷플릭스를 연상시키는 이 서비스의 메인 화면에 충격적인 콘텐츠가 떠 있습니다. 제목은 '존은 끔찍해 (Joan Is Awful)'. 썸네일 속 주인공은 놀랍게도 세계적인 스타 배우 '셀마 헤이엑'이지만 그녀는 존과 똑같은 머리 스타일과 옷을 입고 있습니다. 존은 호기심 반 불쾌함 반으로 드라마를 재생합니다. 그리고 그녀는 비명을 지릅니다. 드라마 속 셀마 헤이엑은 방금 전 존이 겪었던 하루를 정확하게 연기하고 있었습니다. 직원을 해고하는 장면 심리 상담사에게 약혼자를 험담하는 장면까지 모든 대사와 행동이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재현되었습니다. 존의 가장 사적이고 비밀스러운 순간들이 전 세계 수백만 명에게 생중계된 것입니다.

스트림베리의 무서운 비밀 이용약관

'존은 끔찍해'는 존의 인생이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속도를 냅니다. 다음 날 그녀의 모든 비밀을 알게 된 약혼자는 그녀를 떠나고 회사에서는 고객의 비밀을 누설했다는 이유로 그녀를 즉시 해고합니다. 존은 자신의 삶을 훔친 스트림베리를 고소하기 위해 변호사를 찾아갑니다. 하지만 변호사는 차가운 현실을 알려줍니다. 존은 스트림베리에 가입할 때 이용약관에 '동의'했습니다. 그 약관에는 스트림베리가 존의 모든 데이터를 수집하고 이를 기반으로 AI를 이용해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다는 내용이 명시되어 있었습니다. 심지어 존의 스마트폰 마이크와 카메라를 통해 그녀의 일상이 실시간으로 수집되고 있었습니다. 존은 소송에서 이길 방법이 없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스스로 판 무덤에 갇힌 것입니다. 이 에피소드는 우리가 얼마나 쉽게 우리의 권리를 포기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존은 분노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스트림베리는 매일 그녀의 끔찍한 하루를 드라마로 만들어 내보내고 세상 사람들은 그녀를 조롱하며 드라마에 열광합니다. 그녀는 하루아침에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최악의 여자가 되었습니다.

셀마 헤이엑 역시 피해자였다

존은 이 지옥에서 벗어나기 위해 극단적인 방법을 생각합니다. 자신을 연기하는 배우 셀마 헤이엑에게 충격을 주면 드라마 제작이 멈출 것이라 생각한 것입니다. 그녀는 치어리더 복장을 하고 일부러 많은 사람이 보는 레스토랑에서 설사약을 먹고 햄버거를 게걸스럽게 먹는 등 끔찍한 행동을 저지릅니다. 계획대로 다음 날 드라마에서는 셀마 헤이엑이 똑같은 짓을 연기해야 했습니다. 이제 셀마 헤이엑이 분노할 차례입니다. 셀마 헤이엑은 자신의 이미지에 끔찍한 타격을 입히는 이 드라마에 분노하며 변호사를 찾아갑니다. 하지만 그녀 역시 스트림베리와의 계약에서 자신의 '디지털 이미지 사용권'을 포괄적으로 넘겼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드라마 '존은 끔찍해'에 등장하는 셀마 헤이엑은 실제 셀마 헤이엑이 연기한 것이 아니라 스트림베리의 AI가 그녀의 디지털 이미지를 이용해 만들어낸 완벽한 CGI였습니다. 결국 셀마 헤이엑 역시 존과 마찬가지로 스트림베리의 거대한 시스템에 갇힌 피해자였습니다. 분노한 셀마 헤이엑은 존을 찾아오고 두 사람은 이 모든 것을 끝내기 위해 스트림베리 본사로 쳐들어가기로 결심합니다. 여기서 '존은 끔찍해'는 또 한 번의 충격적인 반전을 준비하며 시청자의 뒤통수를 칩니다.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무너뜨린 배우들

'블랙미러 존은 끔찍해'는 두 명의 핵심 배우 애니 머피와 셀마 헤이엑의 빛나는 연기 덕분에 완성되었습니다. 주인공 '소스 존'(원본 존)을 연기한 애니 머피는 우리가 공감할 수밖에 없는 평범한 직장인의 불안감과 위선 그리고 모든 것이 무너졌을 때의 절망과 분노를 완벽하게 표현했습니다. 그녀의 공허한 눈빛이 점차 분노와 결의로 바뀌어가는 과정은 시청자들이 그녀의 황당한 여정을 끝까지 응원하게 만듭니다. '레벨 1 존'(드라마 속 존)을 연기한 셀마 헤이엑은 이 작품의 신의 한 수였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실제 이미지를 기꺼이 망가뜨리며 이 코미디의 수위를 한껏 끌어올렸습니다. 그녀는 자신을 패러디하는 동시에 거대 기업에 분노하는 슈퍼스타의 모습을 과장되지만 설득력 있게 연기했습니다. 특히 애니 머피와 셀마 헤이엑 두 사람이 만나 벌이는 소동은 이 드라마의 백미입니다.

(스포일러 주의) 퀀텀 컴퓨터 그리고 진짜 '존'

여기서부터 '존은 끔찍해'의 모든 진실과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내용을 원치 않으시면 이 부분을 건너뛰어 주시기 바랍니다. 스트림베리 본사에 잠입한 존과 셀마 헤이엑은 마침내 이 모든 드라마가 만들어지는 곳에 도달합니다. 그곳에는 '퀀텀 컴퓨터' 즉 양자 컴퓨터가 있었습니다. 스트림베리의 CEO(마이클 세라)는 이 컴퓨터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설명합니다. 사실 우리가 지금까지 봐왔던 애니 머피가 연기한 '존' 역시 100% 현실이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소스 존'(원본 존)의 삶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레벨 1'의 가상 인물이었습니다. 그리고 셀마 헤이엑이 연기한 것은 '레벨 2'였습니다. 스트림베리는 퀀텀 컴퓨터를 이용해 원본 존의 삶을 무한히 복제하고 변주하며 수많은 맞춤형 콘텐츠를 생산하고 있었습니다. 셀마 헤이엑은 자신이 그저 디지털 복제본이라는 사실에 충격받지만 존(애니 머피)은 오히려 자신이 원본이 아님을 깨닫고 자유로워집니다. 그녀는 이 모든 시스템을 파괴하기로 결심합니다. 그녀는 퀀텀 컴퓨터를 도끼로 내리찍습니다. 그 순간 세상은 리셋됩니다. 화면이 바뀌고 진짜 '소스 존'(애니 머피가 아닌 다른 배우)이 등장합니다. 그녀는 평범한 커피숍에서 바리스타로 일하고 있습니다. 발목에는 전자발찌를 차고 있습니다. 퀀텀 컴퓨터를 파괴한 죄로 처벌을 받은 것입니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평화롭고 행복해 보입니다. 잠시 후 '소스 애니 머피'가 그녀를 찾아옵니다. 두 사람은 친구가 되었습니다. '존은 끔찍해'는 결국 가장 아날로그적인 방식으로 해방을 맞이합니다.

가장 유쾌한 방식으로 날린 가장 섬뜩한 경고

'블랙미러 존은 끔찍해'는 시즌6의 화려한 부활을 알린 완벽한 에피소드였습니다.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은 AI에 의한 창작물 대체 디지털 초상권 그리고 무심코 동의하는 이용약관 문제 등 지금 당장 우리가 고민해야 할 문제들을 가장 유쾌하고 통쾌한 블랙 코미디로 풀어냈다는 점입니다. 특히 넷플릭스가 스스로를 '스트림베리'로 패러디하며 자신들의 플랫폼을 비판하는 듯한 영리한 연출은 감탄을 자아냅니다. 물론 양자 컴퓨터라는 설정이 다소 만능 해결책처럼 사용된 감이 없지 않지만 이는 블랙미러 특유의 과장된 풍자를 위한 장치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존은 끔찍해'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삶이 콘텐츠가 되는 것에 정말로 '동의'한 것이 맞느냐고 말입니다. 오늘 밤 스트림베리를 켜기 전 우리가 눌렀던 동의 버튼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만드는 무서운 걸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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