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도시 (Sculptured City), 악마가 설계한 완벽한 세상에 균열을 내는 최후의 일격 7~12화 리뷰

 


숨 막히도록 치밀하게 설계된 도시에서 탈출하기 위해 발버둥 치던 한 남자의 처절한 복수극이 드디어 끝을 맺었습니다. 디즈니플러스를 통해 공개된 조각도시의 후반부인 7화부터 12화까지는 전반부에 쌓아올린 서사를 폭발시키며 시청자들을 혼돈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자신이 신이라 믿었던 설계자 요한과 인간이길 포기하고 복수의 칼날이 된 태중의 대결은 단순히 선과 악의 싸움을 넘어 인간의 존엄과 자유의지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매 회차마다 예측을 불허하는 반전과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영상미로 꽉 채워진 조각도시의 마지막 이야기를 깊이 있게 파헤쳐 보겠습니다.

가면 무도회의 밤이 지나고 시작된 진짜 전쟁과 드러나는 조력자들의 희생

지난 6화의 엔딩에서 시청자들의 심장을 쫄깃하게 만들었던 태중과 요한의 파티장 대면은 7화 시작과 동시에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태중은 요한의 목에 칼을 겨누지만 요한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오히려 태중을 비웃습니다. 파티장에 있던 경호원들이 태중을 포위하는 순간 태중은 미리 설치해 둔 연막탄을 터뜨리며 아수라장을 만듭니다. 이 과정에서 태중은 요한의 얼굴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며 그가 더 이상 손댈 수 없는 성역이 아님을 선포합니다. 요한은 자신의 완벽한 얼굴에 난 상처를 보며 처음으로 분노라는 감정을 드러내고 이는 그가 이성을 잃고 폭주하게 만드는 기폭제가 됩니다.

태중은 파티장을 빠져나와 조력자들과 함께 은신처로 피신하지만 요한의 반격은 즉각적이고 잔혹했습니다. 요한은 경찰과 언론을 움직여 태중을 희대의 테러리스트로 규정하고 대대적인 공개 수배를 내립니다. 도시 곳곳에 태중의 얼굴이 깔리고 태중을 돕던 조력자들의 신상까지 털리면서 숨통을 조여옵니다. 8화와 9화에서는 태중의 손발을 자르려는 요한과 시스템의 허점을 파고드는 태중의 두뇌 싸움이 치열하게 전개됩니다. 태중은 물리적인 공격보다는 요한이 구축해 놓은 '조각도시'의 시스템을 무너뜨리는 데 집중합니다. 요한이 고위층들의 약점을 잡아 그들을 조종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 태중은 해커 출신의 조력자와 함께 요한의 비밀 서버에 접속을 시도합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뼈아픈 희생이 따릅니다. 태중이 감옥에서부터 친형제처럼 의지했던 동료가 요한의 하수인들에게 발각되어 태중의 위치를 불지 않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합니다. 동료의 싸늘한 주검 앞에서 태중은 소리 없는 오열을 토해내고 그의 복수심은 차가운 이성이 아닌 뜨거운 분노로 다시 한번 타오릅니다. 이 사건은 태중에게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음을 각인시키며 그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요한을 파멸시키기로 결심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됩니다. 태중은 동료의 장례를 치를 새도 없이 요한의 자금줄인 불법 도박장과 마약 유통망을 동시다발적으로 타격하며 요한을 자극합니다. 완벽했던 요한의 도시에 균열이 가기 시작하고 설계도에 없던 변수들이 발생하자 요한은 점점 초조함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무너지는 설계도와 폭주하는 악마 그리고 눈물 속에 피어나는 연대

10화에 접어들며 드라마는 요한의 과거와 그가 왜 사람들의 인생을 조각하는 악마가 되었는지에 대한 서사를 풀어놓습니다. 어린 시절 학대와 방임 속에서 자란 요한에게 세상은 혼돈 그 자체였고 그는 통제되지 않는 세상을 혐오했습니다. 그가 만든 '조각도시'는 역설적으로 그가 가장 안전하다고 느끼는 완벽한 통제의 공간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태중이라는 존재가 그 통제를 벗어나 자신을 위협하자 요한은 자신이 쌓아올린 모든 것이 무너질 수 있다는 공포에 휩싸입니다. 도경수 배우는 이 구간에서 냉철한 소시오패스가 불안에 떨며 히스테릭하게 변해가는 과정을 섬세하게 표현해 냅니다.

요한은 태중을 잡기 위해 자신이 그토록 경멸하던 혼돈을 스스로 불러일으킵니다. 도시의 전력을 차단하고 통신망을 마비시켜 시민들을 공포에 떨게 한 뒤 그 원인을 태중에게 돌리는 가짜 뉴스를 퍼뜨립니다. 도시는 순식간에 폭동이 일어날 듯한 험악한 분위기로 변하고 시민들은 서로를 불신하며 감시하기 시작합니다. 요한은 이 혼란을 틈타 자신의 사병 조직을 풀어 태중을 사냥하려 합니다. 하지만 요한의 예상과 달리 태중은 고립되지 않았습니다. 태중에게 도움을 받았던 피해자들과 요한의 폭정에 염증을 느낀 내부 고발자들이 태중의 편에 서기 시작합니다. 작은 촛불들이 모여 거대한 횃불이 되듯 태중을 중심으로 형성된 연대는 요한의 거대 조직에 맞서 게릴라전을 펼칩니다.

특히 내부 고발자가 건넨 요한의 비밀 장부는 전세를 역전시키는 '스모킹 건'이 됩니다. 이 장부에는 정재계 유력 인사들의 치부와 요한의 범죄 사실이 낱낱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태중은 이를 방송국에 제보하는 대신 도심 한복판에 있는 대형 전광판을 해킹하여 모든 시민이 볼 수 있도록 생중계해 버립니다. 11화의 하이라이트인 이 장면은 그동안 억눌려왔던 시민들이 진실을 마주하고 분노를 터뜨리는 카타르시스를 선사합니다. 자신의 치부가 만천하에 드러나자 요한을 비호하던 권력자들은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요한은 자신의 성인 펜트하우스에 고립됩니다. 이제 남은 것은 태중과 요한 두 사람의 최후의 결판뿐입니다.

스포일러 주의! 조각난 도시의 폐허 위에서 마주한 두 남자의 비극적 결말

마지막 12화는 태중이 요한이 있는 펜트하우스로 진입하는 과정과 두 사람의 최후 대결을 롱테이크로 담아냅니다. 요한의 사병들을 뚫고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최상층에 도달한 태중은 텅 빈 홀에 홀로 앉아 있는 요한을 마주합니다. 요한은 모든 것을 잃었음에도 여전히 오만함을 잃지 않은 채 태중을 맞이합니다. "네가 이긴 것 같지? 넌 결국 내가 만든 판 위에서 춤춘 광대일 뿐이야"라며 독설을 퍼붓는 요한에게 태중은 더 이상 대꾸할 가치도 없다는 듯 주먹을 날립니다.

두 사람의 육탄전은 화려한 무술 합이 아닌 살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에 가깝습니다. 서로의 목을 조르고 주먹을 휘두르며 엉겨 붙은 두 남자의 모습은 마치 지옥도 속의 악귀들처럼 보입니다. 유리창이 깨지고 가구가 부서지는 굉음 속에서 태중은 마지막 힘을 짜내어 요한을 제압합니다. 태중이 요한의 목에 칼을 꽂으려는 찰나 요한은 기괴한 웃음을 터뜨리며 "나를 죽여야 비로소 내 조각이 완성되는 거야 살인자가 된 너를 환영한다"라고 속삭입니다. 이 말에 태중은 순간 멈칫하지만 곧 칼을 거두고 요한을 난간 밖으로 밀어버리는 대신 경찰에 넘기는 선택을 합니다. 죽음으로서 자신의 서사를 완성하려던 요한의 계획마저 부수어버린 것입니다.

경찰특공대가 들이닥치고 요한은 체포되어 끌려갑니다. 수갑을 찬 채 끌려가면서도 태중을 노려보는 요한의 눈빛은 끝까지 소름을 유발합니다. 시간이 흘러 계절이 바뀌고 감옥에 수감된 요한은 그곳에서도 다른 죄수들을 조종하려 하지만 태중이 심어놓은 조력자들에 의해 철저하게 고립되어 미쳐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반면 모든 혐의를 벗고 자유의 몸이 된 태중은 예전의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려 노력합니다. 하지만 드라마는 섣부른 해피엔딩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가족을 잃고 영혼이 파괴된 태중이 텅 빈 방에서 홀로 밥을 먹는 장면은 쓸쓸한 여운을 남깁니다. 창밖으로 보이는 도시의 풍경은 여전히 화려하지만 태중의 눈에는 더 이상 예전의 아름다운 도시로 보이지 않습니다. 그는 비틀거리지만 묵묵히 거리를 걸으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갑니다.

지창욱, 영혼이 타버린 남자의 공허함을 눈빛으로 말하다

후반부의 지창욱은 복수의 화신을 넘어 고통 그 자체가 된 듯한 연기를 보여줍니다. 전반부가 뜨거운 분노였다면 후반부는 차갑게 식어버린 재와 같은 공허함이 주를 이룹니다. 특히 동료의 죽음 앞에서도 소리 내어 울지 못하고 눈물만 뚝뚝 흘리는 절제된 감정 연기는 보는 이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습니다. 액션 씬에서도 화려함보다는 처절함을 강조하며 온몸이 무기인 짐승처럼 움직이는 모습은 감탄을 자아냈습니다.

가장 압권이었던 것은 마지막 회 요한과의 대치 장면이었습니다. 자신을 도발하는 요한을 바라보는 지창욱의 눈빛에는 증오와 연민 그리고 허무함이 복합적으로 담겨 있었습니다. 대사 없이 표정만으로 수만 가지 감정을 전달하는 그의 내공이 폭발한 순간이었습니다. 모든 복수가 끝난 후 텅 빈 눈동자로 허공을 응시하는 그의 마지막 표정은 '복수에 성공한 자에게 남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시청자들에게 던지며 긴 여운을 남겼습니다. 지창욱은 이번 작품을 통해 단순히 잘생긴 배우가 아닌 깊이 있는 연기파 배우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다졌습니다.

도경수, 한국 드라마 역사상 가장 우아하고 잔혹한 빌런의 탄생

도경수는 후반부로 갈수록 무너져가는 요한의 심리를 소름 끼치도록 완벽하게 연기했습니다. 자신의 완벽한 세계가 무너질 때마다 미세하게 떨리는 손끝이나 불안하게 흔들리는 동공 연기는 캐릭터의 입체감을 더했습니다. 소리를 지르거나 과격한 행동을 하지 않아도 나직한 목소리와 서늘한 미소만으로 화면을 장악하는 그의 카리스마는 대단했습니다.

특히 그가 보여준 악역 연기는 '이유 있는 악역'이 아닌 '순수 악'에 가까웠기에 더욱 공포스러웠습니다. 자신의 행동에 대해 어떠한 죄책감도 느끼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예술 행위로 정당화하는 모습은 시청자들의 분노를 유발함과 동시에 배우 도경수에 대한 찬사를 보내게 만들었습니다. 체포되는 순간까지도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태중을 조롱하는 모습에서는 광기 어린 에너지가 느껴졌습니다. 도경수는 맑은 얼굴 뒤에 숨겨진 광기를 끄집어내며 한국 드라마 역사에 남을 독보적인 빌런 캐릭터를 완성했습니다.

완벽에 가까운 서사와 연출, 하지만 너무나도 무거운 뒷맛

조각도시 7~12화는 용두사미라는 드라마들의 고질적인 문제를 비웃기라도 하듯 끝까지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했습니다. 치밀한 복선 회수와 개연성 있는 전개는 작가의 필력이 돋보이는 부분이었습니다. 특히 조명과 미술을 활용한 미장센은 영화를 방불케 했으며 어둠과 빛을 대비시켜 인물들의 심리를 시각적으로 표현한 연출력은 탁월했습니다. 액션 장면 또한 단순히 보여주기 식이 아닌 감정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져 몰입도를 높였습니다.

하지만 드라마가 남긴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시스템의 부조리와 개인의 무력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현실적인 씁쓸함을 안겨줍니다. 권선징악이라는 결말을 맺긴 했지만 그 과정에서 주인공이 치러야 했던 대가가 너무나도 혹독하여 시청자들에게 정서적인 피로감을 줄 수도 있습니다. 또한 후반부 일부 장면에서의 잔혹한 묘사는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부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웰메이드 복수극을 기다려온 장르물 팬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수작임이 분명합니다.

어둠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으려는 우리 모두를 위한 위로

조각도시는 한 남자의 복수극을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가 과연 안전한지 그리고 우리는 타인의 고통에 얼마나 무감각한지를 되묻습니다. 태중은 비록 모든 것을 잃고 상처투성이가 되었지만 끝내 괴물이 되지 않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켰습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그가 비틀거리며 내디딘 한 걸음은 절망 속에서도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묵직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드라마는 끝났지만 태중과 요한이 남긴 잔상은 오랫동안 우리 뇌리에서 잊히지 않을 것입니다. 누군가 설계한 삶이 아닌 온전한 나 자신의 의지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닫게 해 준 드라마 조각도시. 차가운 도시의 밤거리 어딘가에서 치열하게 오늘을 살아가는 당신에게 이 드라마를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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