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토피아 (Newtopia), 좀비 떼가 창궐한 서울에서 마주한 가장 찌질하고도 위대한 사랑

 


어느덧 좀비라는 소재는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장르가 되었습니다. 킹덤이 보여준 K-좀비의 역동성과 지금 우리 학교는이 보여준 하이틴의 절박함을 넘어 이제는 무엇을 보여줄 수 있을까 의문이 들던 찰나 쿠팡플레이가 야심 차게 내놓은 오리지널 시리즈 뉴토피아가 그 해답을 들고 찾아왔습니다. 지난주 전 회차가 공개되며 서버가 마비될 정도의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낸 이 작품은 영화 기생충으로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한 한진원 작가와 파수꾼의 윤성현 감독이 의기투합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기대를 모았습니다. 박정민과 지수라는 신선한 조합이 그려내는 이 처절한 생존기는 단순히 살기 위해 도망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세상의 종말 앞에서도 기어코 사랑을 하고야 마는 그리고 서로를 구하기 위해 지옥으로 뛰어드는 청춘들의 서사시입니다. 핏빛으로 물든 서울의 거리에서 피어난 가장 낭만적이고도 찌질한 그들의 이야기를 지금 시작합니다.

이별을 통보한 군인과 그를 잡으러 가는 곰신에게 닥친 재앙

이야기는 서울의 한 방공부대 망루에서 시작됩니다. 스물여덟 늦은 나이에 입대한 이재윤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자격지심으로 똘똘 뭉친 인물입니다. 그는 군 생활의 답답함과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압박감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여자친구 강영주에게 문자로 이별을 통보합니다. 제대를 앞두고 꽃신을 신을 날만 기다리던 영주에게는 그야말로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습니다. 영주는 재윤의 비겁한 이별 통보를 도저히 납득할 수 없어 그를 직접 만나 따지기 위해 면회를 가기로 결심합니다. 이것이 바로 지옥이 펼쳐지기 직전 두 사람의 마지막 평화였습니다.

재윤이 복무 중인 부대에서 원인 불명의 바이러스가 퍼지기 시작한 것은 순식간이었습니다. 점호 시간 병사 하나가 발작을 일으키며 동료의 목을 물어뜯었고 평화롭던 내무반은 삽시간에 아비규환으로 변합니다. 재윤은 특유의 겁 많고 소심한 성격 탓에 동료들이 물려 뜯기는 현장을 피해 간신히 몸을 숨깁니다. 하지만 그가 숨어든 곳은 고립된 탄약고였고 밖에는 이미 이성을 잃고 피에 굶주린 감염자들 즉 좀비들이 득실대고 있었습니다. 전화는 불통이고 구조 요청을 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재윤은 오직 생존 본능 하나로 무기를 챙겨 밖으로 나설 준비를 합니다. 그가 살아야 할 이유는 단 하나 자신이 홧김에 차버린 영주에게 사과라도 하고 죽어야겠다는 뒤늦은 후회 때문이었습니다.

한편 서울 도심 한복판에 있던 영주 역시 끔찍한 상황을 마주합니다. 재윤을 만나러 가기 위해 탔던 지하철 안에서 감염자가 발생하고 열차 안은 탈출구 없는 지옥으로 변합니다. 갓 입사한 사회 초년생으로 매일 상사에게 치이며 살던 평범한 직장인 영주는 극한의 상황에서 내면에 잠재되어 있던 엄청난 전투력을 발휘하기 시작합니다. 힐을 벗어던지고 맨발로 뛰며 눈앞에 닥친 좀비들을 주변의 집기로 제압해 나갑니다. 그녀의 목표는 단 하나 살아서 그 멍청한 전 남자친구 이재윤의 멱살을 잡는 것입니다. 그렇게 각기 다른 장소에서 고립된 두 남녀는 서로를 향해 험난한 여정을 시작합니다.

찌질했던 남자가 영웅이 되고 평범했던 여자가 전사가 되다

드라마의 중반부는 재윤과 영주가 각자의 위치에서 겪는 생존 액션과 성장을 다룹니다. 재윤은 부대를 탈출하는 과정에서 자신보다 더 겁이 많은 후임병을 챙기게 됩니다. 평소라면 귀찮아서 피했겠지만 극한의 상황이 되자 재윤은 묘한 책임감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좀비 떼가 몰려오는 식당 칸에서 후임병을 구하기 위해 미끼를 자처하거나 좁은 환풍구를 통해 탈출로를 확보하는 재윤의 모습은 우리가 알던 찌질한 군바리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점점 진짜 군인이자 리더로 성장해 나갑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도 "아니 내가 왜 이러고 있냐고"라며 투덜거리는 박정민 특유의 대사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도 웃음을 유발하는 포인트가 됩니다.

영주의 여정은 더욱 험난합니다. 도심은 이미 마비되었고 군 병력조차 통제할 수 없는 무정부 상태가 되었습니다. 영주는 생존자 무리에 합류하게 되지만 인간의 이기심은 좀비보다 더 무서운 적이었습니다. 식량을 독차지하려는 자들과 약자를 미끼로 쓰려는 자들 사이에서 영주는 강단 있는 태도로 맞섭니다. 공대 출신이라는 설정을 살려 주변의 기계 장치들을 조작해 위기를 모면하거나 부러진 대걸레 자루를 창처럼 개조해 좀비의 머리를 정확히 가격하는 그녀의 모습은 카타르시스를 선사합니다. 영주는 재윤에게 의지하던 곰신이 아니라 스스로의 힘으로 길을 개척하는 '뉴토피아'의 전사로 거듭납니다.

두 사람이 서로의 생사를 확인하는 수단은 끊길 듯 말 듯 연결되는 간헐적인 통신망뿐입니다. 재윤은 무전기를 통해 영주에게 "내가 갈게 제발 살아만 있어줘"라고 외치고 영주는 "오기만 해봐 죽여버릴 거야"라고 응수하면서도 눈물을 흘립니다. 이 애절하면서도 코믹한 로맨스는 뉴토피아만이 가진 독특한 색깔입니다. 재윤은 영주가 있는 곳으로 가기 위해 장갑차를 탈취하는 무모한 짓을 저지르고 영주는 재윤을 만나기 위해 좀비들이 우글거리는 한강 다리를 건너는 선택을 합니다. 서로를 향한 그들의 집념은 바이러스보다 더 강력한 동력이 되어 그들을 움직이게 만듭니다.

스포일러 주의! 남산 타워에서의 재회와 새로운 세상의 시작

드라마의 후반부 재윤과 영주는 서울의 랜드마크이자 연인들의 성지인 남산 타워에서 극적으로 조우합니다. 하지만 감격스러운 재회의 순간도 잠시 그들을 쫓아온 변종 좀비 무리가 타워를 포위합니다. 이 변종 좀비들은 기존의 감염자들과 달리 지능을 가지고 무리를 지어 사냥하는 특성을 보여 충격을 줍니다. 재윤과 영주는 타워의 지형지물을 이용해 최후의 항전을 벌입니다. 재윤은 자신이 가진 모든 탄약을 쏟아붓고 영주는 타워의 조명 시설을 이용해 좀비들의 시야를 교란시킵니다.

절체절명의 순간 재윤은 영주를 살리기 위해 자신이 미끼가 되어 타워 밖으로 뛰어내리려 합니다. 하지만 영주가 재윤의 손을 낚아채며 "혼자 멋있는 척하지 마 같이 죽더라도 같이 살아"라고 소리칩니다. 두 사람은 서로의 등을 맞대고 끝까지 싸웁니다. 결국 아침 해가 떠오르고 자외선에 약한 변종 좀비들이 타워의 그늘로 숨어들면서 긴 싸움은 끝이 납니다. 피투성이가 된 채 서로를 마주 본 두 사람은 말없이 꽉 껴안습니다. 재윤은 "헤어지자고 해서 미안해"라고 사과하고 영주는 "다시 고백해 그럼 받아줄게"라며 미소 짓습니다.

결말은 좀비가 완전히 사라진 해피엔딩은 아닙니다. 서울은 여전히 폐허이고 바이러스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생존자들은 안전지대를 구축하고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가기 시작합니다. 재윤과 영주는 그 새로운 세상 '뉴토피아'의 일원이 되어 좀비 소탕 작전에 나서는 파트너로 살아갑니다. 마지막 장면 군복을 입은 재윤과 개조된 무기를 든 영주가 나란히 서서 폐허가 된 도시를 바라보며 "오늘 저녁은 뭐 먹지?"라고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는 모습은 묘한 안정감을 줍니다. 세상이 망해도 삶은 계속되고 사랑도 계속된다는 메시지를 남기며 드라마는 막을 내립니다.

박정민, 현실감 200%의 연기로 완성한 찌질함의 미학

이재윤 역을 맡은 박정민 배우는 이번 작품에서 물 만난 고기처럼 날아다닙니다. 그는 자칫하면 비호감으로 보일 수 있는 '이별 통보남' 캐릭터를 미워할 수 없는 매력적인 인물로 바꿔놓았습니다. 겁에 질려 덜덜 떨면서도 영주를 생각하며 용기를 내는 그의 표정 변화는 시청자들의 마음을 쥐락펴락했습니다. 특히 좀비와 마주쳤을 때 멋있게 싸우기보다는 넘어지고 구르며 개싸움을 벌이는 현실적인 액션 연기는 극의 몰입도를 극대화했습니다.

박정민은 영웅이 되고 싶지 않았지만 영웅이 되어버린 소시민의 얼굴을 완벽하게 표현했습니다. 특유의 딕션과 생활 연기는 좀비물이라는 판타지 장르에 현실감을 불어넣는 닻 역할을 했습니다. 후반부 영주를 바라보는 애틋한 눈빛 연기에서는 멜로 장인으로서의 면모도 유감없이 발휘했습니다. 찌질함 속에 숨겨진 진정성을 끄집어내는 능력은 역시 박정민이라는 찬사를 보내기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지수, 아이돌의 이미지를 벗고 피 땀 눈물로 쓴 성장기

강영주 역의 지수는 배우로서 한 단계 도약했음을 확실히 증명했습니다. 하얀 피부에 피칠갑을 하고 헝클어진 머리로 서울 거리를 질주하는 그녀의 모습에서는 이전의 화려한 아이돌 이미지를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지수는 좀비의 머리를 내리치고 격렬한 몸싸움을 벌이는 고강도 액션을 대역 없이 소화해 내며 캐릭터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보여주었습니다.

무엇보다 감정 연기에서의 성장이 돋보였습니다. 남자친구에게 배신당한 분노부터 생존에 대한 공포 그리고 재윤을 향한 그리움까지 복합적인 감정을 섬세하게 그려냈습니다. 재윤과 재회하는 장면에서 보여준 눈물 연기는 보는 이들의 눈시울까지 붉히게 만들 만큼 호소력이 짙었습니다. 지수는 강영주라는 캐릭터를 통해 단순히 보호받는 여주인공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운명을 개척하는 강인한 여성상을 매력적으로 완성해 냈습니다.

신선한 코미디와 좀비물의 결합 그러나 다소 아쉬운 CG

뉴토피아의 가장 큰 장점은 한진원 작가 특유의 말맛이 살아있는 대사와 유머 코드입니다. 좀비가 창궐한 심각한 상황에서도 피식 웃음이 터지게 만드는 블랙 코미디 요소들은 기존의 무겁기만 했던 좀비물들과는 확실한 차별점을 둡니다. 군대라는 폐쇄적인 공간과 서울이라는 개방적인 공간을 오가며 보여주는 다양한 인간 군상의 모습 또한 흥미로웠습니다. 윤성현 감독의 감각적인 연출은 긴박감 넘치는 추격전을 더욱 스타일리시하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존재합니다. 일부 장면에서 사용된 CG가 다소 어색하여 몰입을 방해하는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특히 대규모 좀비 떼가 등장하는 씬이나 변종 좀비의 움직임에서 기술적인 완성도가 조금 떨어져 보였습니다. 또한 중반부 재윤과 영주가 만나기까지의 과정이 다소 길게 늘어지면서 전개가 루즈해지는 구간이 있었다는 점도 지적하고 싶습니다. 두 사람의 개별 에피소드를 조금 더 압축하고 만남을 앞당겼다면 긴장감을 더 팽팽하게 유지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뉴토피아는 사랑이라는 가장 흔한 주제를 좀비 아포칼립스라는 장르와 영리하게 결합한 수작입니다. 세상이 무너져도 나를 찾아올 단 한 사람이 있다는 믿음 그 낭만적인 위로가 필요한 분들에게 이 드라마를 강력하게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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