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인 퍼즐 (Nine Puzzles), 조각난 기억의 미로 속에서 마주한 서늘한 진실의 얼굴

 

창문 틈으로 스며드는 바람이 제법 날카로워진 12월의 겨울밤입니다. 따뜻한 이불 속에서 긴장감 넘치는 스릴러 한 편이 생각나는 계절이기도 합니다. 디즈니플러스가 올 하반기 최고의 기대작으로 내놓은 드라마 나인 퍼즐이 드디어 베일을 벗고 우리 곁을 찾아왔습니다. 영화 수리남과 공작으로 치밀한 서스펜스의 정수를 보여주었던 윤종빈 감독의 첫 드라마 연출작이자 독보적인 분위기를 가진 배우 김다미와 손석구의 만남으로 제작 단계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았던 작품입니다. 살인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이자 용의자인 프로파일러와 그녀를 끝없이 의심하는 형사가 함께 사건을 파헤친다는 독특한 설정은 1화부터 시청자들의 멱살을 잡고 끌고 갑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가 무너지는 혼돈 속에서 펼쳐지는 두 남녀의 위험한 게임 나인 퍼즐의 이야기를 깊이 있게 나누어보려 합니다.

10년 전의 비극과 살인 현장에서 퍼즐을 맞추는 기이한 프로파일러

드라마는 칠흑 같은 어둠이 내려앉은 10년 전의 어느 밤 끔찍한 비극이 벌어졌던 한 가정집에서 시작됩니다. 당시 열다섯 살이었던 이나(김다미)는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삼촌이 무참히 살해당하는 현장을 목격한 유일한 생존자였습니다. 범인은 잡히지 않았고 세상은 어린 소녀의 진술을 믿어주기보다 그녀를 비운의 피해자로 혹은 감춰진 비밀을 간직한 미스터리한 아이로 바라보았습니다. 그날의 충격으로 기억의 일부가 파편처럼 부서진 이나는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는 대신 스스로 그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길을 선택합니다. 10년이 흐른 현재 이나는 서울경찰청 과학수사대 범죄분석팀의 최연소 경위이자 천재적인 프로파일러가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나를 바라보는 동료들의 시선은 곱지 않습니다. 그녀는 사건 현장에서 시체와 대화를 나누는 듯 혼잣말을 하거나 피해자의 유류품을 마치 장난감처럼 다루는 기이한 행동을 일삼기 때문입니다. 특히 그녀는 현장에 흩어진 단서들을 머릿속에서 퍼즐 조각처럼 시각화하여 범인의 동선을 재구성하는 독특한 능력을 지녔습니다. 어느 날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기괴한 방식의 연쇄 살인 사건이 발생합니다. 피해자들의 신체 일부에는 마치 누군가 의도적으로 남긴 듯한 퍼즐 조각 모양의 상처가 새겨져 있었고 현장에 남겨진 메시지는 10년 전 이나가 겪었던 삼촌의 죽음을 연상케 합니다.

이나는 직감적으로 이 사건이 단순한 살인이 아니라 자신을 향해 보내는 범인의 초대장임을 깨닫습니다. 범인은 이나만이 풀 수 있는 난해한 문제들을 시신 곳곳에 숨겨두었고 이나는 이 잔혹한 게임에 기꺼이 응하기로 합니다. 그녀는 피해자의 목구멍에서 발견된 작은 큐브 조각을 보며 희미하게 웃음 짓습니다. 그것은 10년 전 삼촌이 그녀에게 마지막으로 선물했던 퍼즐의 잃어버린 조각과 정확히 일치했기 때문입니다. 이나는 자신이 쫓는 범인이 과거의 악몽과 연결되어 있음을 확신하고 수사에 착수하지만 상황은 그녀에게 불리하게 돌아갑니다. 모든 정황 증거와 범인의 동선이 교묘하게 이나를 가리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짐승 같은 형사 한샘의 등장과 시작된 위험한 공조

사건의 담당 형사로 배정된 김한샘(손석구)은 경찰청 내에서 '불도저'로 통하는 인물입니다. 한번 물면 절대 놓지 않는 집요함과 동물적인 감각으로 범인을 잡아들이는 그는 원칙이나 절차보다는 자신의 직감을 더 신뢰하는 스타일입니다. 한샘은 첫 수사 회의에서부터 이나를 범인으로 의심합니다. 피해자가 사망 추정 시각 직전에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이 이나였으며 현장에서 발견된 미세 증거물들이 그녀의 알리바이를 위협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한샘의 본능이 이나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위험한 냄새를 감지했습니다. 그는 이나가 프로파일러라는 가면을 쓰고 살인 본능을 숨기고 있는 사이코패스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상부에서는 두 사람에게 공조 수사를 지시합니다. 범인이 남긴 기묘한 퍼즐과 암호들을 해독할 수 있는 사람은 이나뿐이었고 위험한 현장에서 몸으로 부딪히며 범인을 추격할 수 있는 사람은 한샘뿐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는 두 사람의 불편한 동거가 시작됩니다. 한샘은 수사 내내 이나를 감시하며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의심의 눈초리로 쫓습니다. 이나가 무심코 내뱉는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를 분석하며 그녀의 가면을 벗기려 합니다. 반면 이나는 한샘의 의심을 즐기기라도 하듯 도발적인 태도로 그를 자극합니다. "형사님은 저를 잡고 싶은 건가요 아니면 범인을 잡고 싶은 건가요"라며 묻는 이나의 질문에 한샘은 말문이 막히기도 합니다.

두 사람은 사건 현장을 누비며 끊임없이 충돌합니다. 한샘은 이나의 비상식적인 수사 방식에 분노하고 이나는 한샘의 단순무식한 접근 방식을 비웃습니다. 그러나 수사가 진행될수록 두 사람은 서로가 가진 결핍과 능력을 인정하게 됩니다. 폐허가 된 놀이공원에서의 추격전에서 이나가 범인의 심리를 예측하여 한샘의 목숨을 구하고 한샘이 위기에 처한 이나를 온몸으로 막아내며 다치는 사건을 계기로 두 사람 사이에는 미묘한 신뢰가 싹트기 시작합니다. 한샘은 이나가 10년 전 사건의 충격으로 인해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 큰 고통을 억누르기 위해 스스로를 가두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나 역시 겉으로는 거칠어 보이지만 누구보다 피해자의 아픔에 공감하는 한샘의 진심을 보게 됩니다.

연쇄 살인마가 보내온 초대장과 서서히 맞춰지는 아홉 개의 조각

범인은 보란 듯이 살인을 이어가며 '나인 퍼즐'이라는 메시지를 남깁니다. 총 아홉 명의 피해자 그리고 아홉 개의 퍼즐 조각. 이것이 완성되면 10년 전 사건의 진실과 범인의 정체가 드러난다는 예고였습니다. 수사가 거듭될수록 드러나는 진실은 충격적이었습니다. 피해자들은 모두 10년 전 이나의 삼촌 사건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인물들이었습니다. 사건을 은폐했던 담당 형사 거짓 증언을 했던 이웃 그리고 당시 사건을 자극적으로 보도했던 기자까지 범인은 과거의 죄인들을 하나씩 처단하며 이나를 심판의 자리로 초대하고 있었습니다.

이야기의 중반부는 긴장감이 극에 달합니다. 범인은 이나의 잃어버린 기억을 자극하는 장소들을 살인 현장으로 선택합니다. 이나는 현장에 갈 때마다 잊고 있었던 과거의 파편들을 떠올리며 괴로워합니다. 그녀의 기억 속에서 삼촌은 다정한 보호자가 아니라 그녀를 학대하고 통제하려 했던 이중적인 인물로 그려지기도 하고 반대로 이나가 삼촌을 향해 살의를 품었던 순간들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이나는 자신이 진짜 범인일지도 모른다는 혼란에 빠집니다. "내가 잊고 있는 기억 속에 내가 살인마라는 증거가 있다면 어떡하지"라는 이나의 공포는 시청자들에게도 전이되어 숨 막히는 서스펜스를 선사합니다.

한샘은 흔들리는 이나를 붙잡아주는 유일한 버팀목이 됩니다. 그는 이나를 의심했던 과거를 뒤로하고 그녀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발로 뜁니다. 한샘은 범인이 이나를 조종하여 스스로 파멸하게 만들려는 '가스라이팅'을 하고 있다고 확신합니다. 그는 범인이 남긴 퍼즐의 패턴을 분석하여 다음 타깃을 예측하고 이나와 함께 함정을 팝니다. 빗속에서 벌어지는 범인과의 추격전과 컨테이너 박스 미로 속에서의 사투는 윤종빈 감독 특유의 타격감 넘치는 액션 연출이 돋보이는 명장면입니다. 마침내 여덟 번째 퍼즐 조각이 맞춰지고 두 사람은 마지막 아홉 번째 조각이 가리키는 곳 바로 이나가 어린 시절 살았던 옛집으로 향합니다.

스포일러 주의! 완성된 퍼즐 그림 속에 숨겨진 잔혹한 진실과 결말

마지막 9화와 10화는 반전의 연속입니다. 이나의 옛집 지하실에서 마주한 범인의 정체는 놀랍게도 이나의 어린 시절 상담을 담당했던 정신과 의사이자 현재 경찰청 자문 위원으로 활동하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소시오패스 성향을 보였던 어린 이나에게 매료되어 그녀를 완벽한 살인 병기로 키우고 싶어 했습니다. 10년 전 삼촌을 죽인 것도 이나를 학대하는 삼촌으로부터 그녀를 '해방'시키기 위한 그만의 왜곡된 구원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나가 사건의 충격으로 기억을 닫아버리고 평범한 경찰이 되려 하자 그녀의 살인 본능을 다시 깨우기 위해 이번 연쇄 살인을 기획한 것이었습니다.

범인은 이나에게 마지막 아홉 번째 퍼즐 조각인 총을 건네며 자신을 쏘라고 종용합니다. 그래야만 네 안의 완벽한 괴물이 완성된다고 속삭입니다. 이나는 혼란 속에서 총구를 겨누지만 옆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한샘의 눈빛을 보고 정신을 차립니다. 한샘은 "너는 괴물이 아니야 그냥 상처받은 사람일 뿐이야"라고 외치며 이나를 현실로 불러옵니다. 이나는 결국 총을 거두고 범인에게 수갑을 채우며 "나는 당신이 만든 퍼즐이 아니라 내가 선택한 삶을 살 거야"라고 선언합니다. 범인은 자신의 걸작이 실패했다는 사실에 절망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하지만 이나와 한샘에 의해 제지당하고 법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모든 사건이 종결되고 계절은 다시 봄으로 바뀝니다. 이나는 혐의를 벗고 경찰로 복귀하지만 더 이상 과거의 그림자에 갇혀 있지 않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책상 위에 놓인 퍼즐을 쓰레기통에 버리며 트라우마와의 이별을 고합니다. 한샘과는 여전히 티격태격하지만 그 눈빛에는 서로에 대한 깊은 신뢰와 애정이 담겨 있습니다. 마지막 장면 두 사람이 새로운 사건 현장으로 함께 출동하며 "이번엔 누가 먼저 범인 잡나 내기할까요"라고 농담을 주고받는 모습은 묵직했던 드라마의 톤을 밝게 환기시키며 열린 결말을 맺습니다. 두 사람의 공조가 앞으로도 계속될 것임을 암시하며 시즌 2에 대한 기대감을 남깁니다.

김다미, 신비로움과 광기를 오가는 대체 불가한 존재감

주인공 이나 역을 맡은 김다미 배우는 이 드라마의 정체성 그 자체입니다. 영화 마녀에서 보여주었던 순수함과 광기가 공존하는 마스크는 나인 퍼즐에서 더욱 깊고 성숙해졌습니다. 그녀는 감정이 거세된 듯한 무표정한 얼굴로 사건 현장을 누비다가도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가는 공포와 슬픔을 눈빛 하나로 표현해 냅니다. 특히 범인과의 심리전에서 보여주는 서늘한 미소는 보는 이들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 만큼 강렬했습니다.

김다미는 대사가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화면을 장악하는 흡입력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녀의 독특한 딕션과 나른한 목소리 톤은 천재 프로파일러라는 캐릭터에 묘한 설득력을 부여했습니다. 또한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로 인해 고통스러워하는 내면 연기부터 범인을 제압하는 액션 연기까지 폭넓은 스펙트럼을 소화해 냈습니다. 김다미가 아니었다면 이나라는 복합적인 캐릭터가 이토록 매력적으로 그려질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그녀의 연기는 완벽했습니다.

손석구, 거칠지만 섹시한 형사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다

한샘 역의 손석구 배우는 그야말로 물 만난 물고기였습니다. 범죄도시 2의 강해상이 보여준 무자비함과 나의 해방일지의 구씨가 보여준 멜로 감성이 절묘하게 조화된 캐릭터였습니다. 헝클어진 머리에 수염이 덥수룩한 얼굴 그리고 헐렁한 점퍼를 걸친 그의 비주얼은 영락없는 '꼴통 형사'였지만 수사할 때 빛나는 날카로운 눈빛은 섹시함 그 자체였습니다.

손석구는 자칫 전형적일 수 있는 열혈 형사 캐릭터에 자신만의 리듬감을 불어넣었습니다. 특유의 느릿하면서도 툭툭 던지는 말투와 현실적인 생활 연기는 긴장감 넘치는 극의 분위기를 이완시키는 역할을 했습니다. 특히 김다미 배우와의 케미스트리가 돋보였습니다. 의심에서 시작해 신뢰로 변해가는 감정선을 과하지 않고 담백하게 그려내며 로맨스 없이도 설레는 텐션을 만들어냈습니다. 몸을 사리지 않는 액션 씬 또한 시원시원한 타격감을 선사하며 드라마의 볼거리를 풍성하게 만들었습니다.

압도적인 몰입감과 다소 복잡한 퍼즐 사이의 평가

나인 퍼즐은 웰메이드 스릴러의 조건을 고루 갖춘 수작입니다. 윤종빈 감독의 연출은 영화를 보는 듯한 묵직한 미장센과 긴박한 리듬감을 드라마에 성공적으로 이식했습니다. 조명과 그림자를 활용하여 인물의 이중성을 표현한 시각적 연출은 탁월했으며 매 회차마다 던져지는 떡밥과 반전은 시청자들을 추리 게임에 동참하게 만들었습니다. 뻔한 권선징악이나 신파로 흐르지 않고 인간 심연의 어두움을 끝까지 파고든 뚝심 있는 전개 또한 호평받을 만합니다.

하지만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지점도 분명 존재합니다. 사건의 단서가 되는 퍼즐과 암호들이 다소 복잡하고 난해하여 시청자들이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습니다. 이나가 머릿속으로 추리하는 과정이 시각 효과로 표현되기는 했지만 설명이 부족하여 개연성이 떨어진다는 느낌을 줄 때도 있었습니다. 또한 드라마 전반에 깔려 있는 어둡고 잔혹한 분위기와 높은 수위의 범죄 묘사는 일부 시청자들에게 피로감을 줄 수 있습니다. 중반부 이나의 기억 찾기 과정이 다소 반복적으로 그려지며 속도감이 떨어진다는 점도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인 퍼즐은 올해 디즈니플러스가 내놓은 가장 매혹적인 작품임에 틀림없습니다. 김다미와 손석구라는 두 괴물 배우의 연기 차력쇼를 보는 것만으로도 시간은 순식간에 삭제됩니다. 단순한 킬링 타임용 콘텐츠를 넘어 진실의 무게와 트라우마의 극복에 대해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이 드라마를 강력하게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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