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그리셀다(Griselda) 마이애미를 피로 물들인 대모의 흥망성쇠

세 남자의 아내이자 네 아이의 어머니. 그리고 1970년대 마이애미를 공포로 지배했던 무자비한 마약 카르텔의 여왕. 이 모순적인 수식어들은 모두 한 사람 ‘그리셀다 블랑코’를 가리킵니다. 넷플릭스 시리즈 그리셀다는 바로 이 전설적인 마약 대모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그린 범죄 드라마입니다. 콜롬비아의 빈민가에서 태어나 남성 중심의 폭력적인 마약 세계에서 정점에 올랐다가 가장 비참한 모습으로 추락한 그녀의 삶은 그 어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습니다. 드라마는 ‘모던 패밀리’의 유쾌한 이미지를 벗어던진 소피아 베르가라의 압도적인 연기 변신을 통해 그리셀다라는 인물이 가진 복합적인 면모를 입체적으로 조명합니다. 그녀는 단순한 악녀가 아니었습니다. 아들들을 지키기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던 어머니였고 남성들의 무시와 배신 속에서 자신의 힘을 증명해야 했던 여성이었으며 권력이라는 마약에 취해 스스로를 파멸시킨 비극적인 인물이었습니다. 지금부터 피와 코카인으로 얼룩진 그녀의 뜨겁고도 잔혹했던 삶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아들들과 함께 빈손으로 시작한 마이애미 정복기

이야기는 1978년 그리셀다가 상처 입은 몸으로 세 아들을 데리고 콜롬비아 메데인에서 마이애미로 도망쳐 오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마약 딜러였던 두 번째 남편의 폭력을 피해 도망친 그녀의 수중에는 가진 것이 거의 없었지만 재킷 안에 숨겨온 1kg의 최고급 코카인이 그녀의 유일한 무기이자 희망이었습니다. 그녀는 친구의 집에 몸을 의탁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 하지만 마이애미의 마약 시장은 이미 남성 카르텔들이 굳건히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누구도 여성인 그리셀다를 진지한 사업 파트너로 대우해주지 않았고 그녀의 야망을 비웃었습니다. 하지만 그리셀다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판을 흔들기 시작합니다. 상류층 백인 여성들을 공략하여 새로운 유통망을 만들고 경쟁 조직의 공격에는 몇 배로 되갚아주는 잔혹함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그녀의 대담함과 뛰어난 사업 수완은 점차 마이애미의 마약상들 사이에서 무시할 수 없는 힘을 갖게 됩니다. 특히 자신을 배신한 남성을 대낮에 총으로 쏴 죽이는 잔인함을 보이면서 ‘대모(The Godmother)’라는 악명을 얻게 되고 그녀의 이름은 곧 공포의 동의어가 됩니다.

권력의 정점에서 시작된 균열과 불신

마이애미의 코카인 시장을 장악한 그리셀다는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부와 권력을 손에 넣습니다. 그녀는 호화로운 저택에서 파티를 열고 아들들에게 모든 것을 해줄 수 있는 막강한 어머니가 됩니다. 그녀의 곁에는 충성스러운 부하들이 있었고 그녀의 명령 한마디에 마이애미의 밤은 피로 물들었습니다. 하지만 권력의 정점은 동시에 내리막의 시작이었습니다. 끝없는 부와 성공은 그녀를 점점 더 편집증적으로 만들었고 누구도 믿지 못하는 의심의 괴물로 변모시켰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성공에 가장 크게 기여한 오른팔 아르투로마저 의심하기 시작했고 심지어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해주었던 세 번째 남편 다리오와의 관계에도 균열이 생깁니다. 경쟁 카르텔의 위협과 자신을 쫓는 마이애미 경찰의 수사망이 점점 좁혀오는 가운데 그녀의 불안은 극에 달합니다. 그녀는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더욱 폭력적이고 무자비한 방법을 동원하지만 이는 오히려 그녀의 제국을 내부에서부터 무너뜨리는 결과를 낳습니다. 그녀가 믿었던 사람들은 하나둘씩 그녀의 곁을 떠나가거나 적이 되어 돌아왔고 한때 마이애미를 호령했던 대모는 이제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인 외로운 섬이 되어버립니다.

소피아 베르가라 파격적인 연기 변신

넷플릭스 그리셀다의 성공을 이야기할 때 주연 배우 소피아 베르가라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시트콤 ‘모던 패밀리’의 글로리아 역할로 전 세계적인 사랑을 받은 그녀는 이번 작품에서 코믹한 이미지를 완전히 지우고 실존 인물 그리셀다 블랑코로 완벽하게 다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특수 분장을 통해 외모부터 그리셀다와 흡사하게 변신했을 뿐만 아니라 목소리 톤과 걸음걸이 눈빛 하나하나까지 캐릭터에 완전히 몰입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소피아 베르가라가 연기한 그리셀다는 단순히 잔인하고 악랄한 마약상이 아닙니다. 그녀는 아들들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이었던 어머니의 모습과 남성 중심의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쳤던 여성의 처절함 그리고 권력에 중독되어 파멸해가는 인간의 나약함을 동시에 표현해냅니다. 특히 의심과 불안에 휩싸여 히스테릭하게 변해가는 후반부의 연기는 보는 이를 소름 돋게 만들 정도입니다. 그녀는 이번 작품을 통해 자신이 가진 연기의 스펙트럼이 얼마나 넓은지를 증명해 보였으며 그녀의 파격적인 연기 변신은 드라마의 몰입감을 극대화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습니다.

비극적인 최후와 남겨진 아들들

스포일러를 원하지 않는 분들은 이 부분을 주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결국 그리셀다는 자신을 배신한 부하의 증언으로 인해 경찰에 체포됩니다. 하지만 교도소에 수감된 후에도 그녀는 밖의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리며 여전히 자신의 제국을 통치하려 합니다. 그녀의 가장 큰 목표는 자신에게 불리한 증언을 할 핵심 증인을 제거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가고 설상가상으로 그녀가 가장 사랑했던 아들 중 세 명이 경쟁 조직에 의해 살해당하는 끔찍한 비극을 맞이합니다. 모든 것을 잃은 그리셀다는 결국 수감 생활을 마치고 2004년 콜롬비아로 추방됩니다. 한때 마이애미를 피로 물들였던 마약 대모의 시대는 그렇게 막을 내립니다. 드라마의 마지막은 실제 그리셀다 블랑코의 최후를 자막으로 알립니다. 그녀는 2012년 콜롬비아 메데인의 한 정육점 앞에서 오토바이를 탄 괴한의 총에 맞아 69세의 나이로 사망했습니다. 이는 바로 그녀 자신이 마이애미에서 유행시킨 암살 방식이었습니다. 자신이 뿌린 피의 씨앗이 결국 자신에게 돌아온 비극적인 결말이었습니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막내아들 마이클 콜레오네 블랑코는 현재 마이애미에서 자신의 가족과 함께 평범하게 살고 있다는 소식과 함께 드라마는 끝을 맺습니다.

화려하지만 공허했던 대모의 삶

넷플릭스 그리셀다는 실존 인물의 드라마틱한 삶을 속도감 있는 전개와 감각적인 연출로 그려낸 잘 만들어진 범죄 전기 시리즈입니다.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은 단연 소피아 베르가라의 놀라운 연기 변신과 그녀가 창조해낸 입체적인 캐릭터입니다. 또한 1970~80년대 마이애미의 시대적 분위기를 완벽하게 재현한 미술과 의상 역시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합니다. 그리셀다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무시당하다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성공을 이뤄내는 과정은 기존의 남성 중심 갱스터물과는 다른 신선한 재미를 선사합니다. 하지만 단점도 분명 존재합니다. 6부작이라는 짧은 호흡 안에 한 인물의 긴 일대기를 담아내다 보니 일부 사건들이 다소 축약되거나 급하게 전개된다는 인상을 줍니다. 특히 그녀가 권력을 잡은 후 내면이 무너져 내리는 과정이 조금 더 섬세하게 묘사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또한 실존 인물인 그리셀다 블랑코는 드라마에서 묘사된 것보다 훨씬 더 잔혹하고 많은 사람을 죽인 인물로 알려져 있는데 드라마가 그녀의 인간적인 고뇌나 모성애를 부각하면서 일부 범죄 행위를 미화한 것처럼 보일 수 있다는 비판의 소지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셀다는 한 여성의 뜨거웠던 야망과 비극적인 몰락을 통해 인간의 욕망이 가진 공허함을 생각하게 만드는 충분히 매력적이고 흥미로운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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