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에이리언 시리즈의 화면을 가득 채우는 칠흑 같은 우주와 그보다 더 어두운 존재 제노모프의 형상은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극강의 공포를 선사합니다. 하지만 이 시리즈를 관통하는 진정한 공포의 근원을 파고들다 보면 우리는 피와 살점으로 이루어진 괴물이 아닌 차가운 로고와 서류로 둘러싸인 한 거대 기업과 마주하게 됩니다. 바로 ‘웨이랜드-유타니(Weyland-Yutani)’입니다. ‘더 나은 세상을 건설한다(Building Better Worlds)’는 인류애 넘치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우주 개척 시대를 이끄는 이 첨단 기술 기업은 사실 에이리언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끈질기고 무자비한 진짜 빌런입니다. 제노모프가 생존이라는 순수한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자연재해에 가깝다면 웨이랜드-유타니는 이익이라는 단 하나의 목표를 위해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을 기꺼이 소모품으로 여기는 계산된 악 그 자체입니다. 이 글은 빛나는 신화 뒤에 숨겨진 웨이랜드-유타니의 추악한 민낯과 그들의 탐욕이 어떻게 우주 전체를 비극으로 몰아넣었는지 그 연대기를 심층적으로 분석합니다.
인류의 구원자인가 탐욕의 화신인가
표면적으로 웨이랜드-유타니는 인류의 희망 그 자체입니다. 그들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기술적 진보들을 이룩해낸 초거대 복합 기업입니다. 광속을 뛰어넘는 FTL 항행 기술을 상용화하여 인류의 활동 무대를 태양계 너머로 확장시켰고 척박한 외계 행성을 인간이 살 수 있는 환경으로 바꾸는 테라포밍 기술을 독점하고 있습니다. 또한 인간과 거의 구별이 불가능할 정도로 정교한 인공지능 안드로이드를 개발하여 위험하고 고된 노동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켰습니다. 작중 등장하는 거의 모든 우주선과 식민지 그리고 기술 인프라는 웨이랜드-유타니의 소유입니다. 그들의 슬로건처럼 그들은 말 그대로 인류를 위해 ‘더 나은 세상’을 건설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 화려한 이면에는 생명 윤리를 무시한 불법적인 생체 실험과 경쟁사 탄압 그리고 무엇보다 자사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희생도 감수하는 냉혹한 기업 철학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인류의 미래는 숭고한 목표가 아닌 독점적 이윤 창출을 위한 가장 효과적인 수단일 뿐입니다.
특수 명령 937, 드러난 기업의 민낯
웨이랜드-유타니의 본질이 처음으로 명확하게 드러난 것은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 ‘에이리언(1979)’에서였습니다. 화물선 노스트로모호의 승무원들은 정체불명의 구조 신호를 수신하고 회사 규정에 따라 행성 LV-426을 탐사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사전에 계획된 함정이었습니다. 웨이랜드-유타니는 이미 외계 생명체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었고 구조 신호는 승무원들을 유인하기 위한 미끼였습니다. 노스트로모호의 진짜 임무는 화물 운송이 아닌 외계 생명체 샘플을 확보하여 지구로 귀환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사실은 과학 장교 애쉬의 정체가 인간이 아닌 회사의 비밀 임무를 수행하도록 프로그래밍된 안드로이드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드러납니다. 그리고 그의 입을 통해 웨이랜드-유타니의 가장 악명 높은 내부 규정 ‘특수 명령 937’의 내용이 공개됩니다. “생명체 확보 최우선 임무. 분석을 위해 귀환시킬 것. 다른 모든 사항은 부차적임. 승무원은 소모품으로 간주함(Crew expendable).” 이 짧은 문장은 웨이랜드-유타니라는 기업의 정체성을 가장 완벽하게 정의합니다. 그들에게 소속 직원들의 목숨은 회사의 이익 즉 제노모프라는 강력한 생물학 무기를 손에 넣는 것보다 가치 없는 것이었습니다.
창조주를 향한 광기, 비극의 시작점 피터 웨이랜드
이러한 비인간적인 기업 철학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을까요. 그 해답을 찾기 위해서는 프리퀄인 ‘프로메테우스’와 ‘커버넌트’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웨이랜드 코퍼레이션(훗날 유타니와 합병)의 창립자이자 천재 과학자인 피터 웨이랜드는 인류가 직면한 모든 문제를 기술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오만한 인물입니다. 그는 자신을 거의 신과 동일시하며 노화로 죽어가는 자신의 운명을 거부하고 영생을 얻기 위해 인류의 창조주 ‘엔지니어’를 찾아 나서는 무모한 탐사를 계획합니다. 그의 개인적인 욕망과 광기는 결국 프로메테우스호의 비극을 낳고 인류를 파멸로 이끌 수 있는 검은 액체와 조우하게 만듭니다. 중요한 것은 회사의 목표 자체가 창립자의 비뚤어진 야망과 맞닿아 있다는 점입니다. 그는 단순히 돈을 버는 것을 넘어 신의 영역에 도달하고 싶어 했고 이러한 오만함은 회사 전체의 문화로 자리 잡습니다. 그리고 그의 오만함을 가장 완벽하게 물려받은 존재가 바로 그가 창조한 안드로이드 데이빗입니다. 데이빗은 피터 웨이랜드의 아들이자 그의 철학이 집약된 결정체로서 훗날 자신의 창조주를 뛰어넘어 새로운 창조주가 되려는 끔찍한 계획을 실행에 옮기게 됩니다.
카터 버크, 시스템에 순응한 평범한 악의 얼굴
웨이랜드-유타니의 악은 피터 웨이랜드 같은 광적인 천재나 데이빗 같은 특별한 존재에 의해서만 실행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악을 더욱 공고히 하는 것은 시스템에 순응하며 자신의 이익을 좇는 평범한 구성원들입니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인물이 바로 ‘에이리언 2(Aliens)’에 등장하는 회사원 카터 버크입니다. 그는 LV-426 행성에 건설된 식민지 ‘해들리스 호프’에 제노모프의 정보가 담긴 좌표를 의도적으로 유출하여 수백 명의 식민지 주민들을 희생시킵니다. 그의 목적은 제노모프 샘플을 확보하여 회사 내에서 자신의 입지를 다지고 막대한 부를 얻는 것이었습니다. 심지어 그는 리플리와 뉴트를 몰래 감염시켜 지구로 귀환하려는 극악무도한 계획까지 세웁니다. 버크는 거대 악의 하수인이자 동시에 그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주체입니다. 그의 모습은 ‘나는 그저 회사에서 시키는 일을 했을 뿐이다’ 혹은 ‘나 하나쯤 괜찮겠지’라는 생각으로 더 큰 악에 동조하는 우리 주변의 수많은 사람을 상징합니다. 웨이랜드-유타니의 진정한 무서움은 바로 이러한 ‘평범한 악’을 양산하고 시스템적으로 조장한다는 데 있습니다.
에이리언보다 더 무서운 진짜 괴물
결론적으로 웨이랜드-유타니는 에이리언 시리즈의 단순한 배경 설정을 넘어 그 자체로 가장 핵심적인 공포의 근원입니다. 제노모프는 오직 생존과 번식이라는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예측 가능한 위협입니다. 그들에게는 선악의 개념이 없습니다. 하지만 웨이랜드-유타니는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들이 이성과 합리라는 이름 아래 내리는 의도적이고 계산된 선택을 통해 악을 행합니다. 그들은 더 많은 이윤을 위해 동료의 죽음을 방관하고 인류 전체를 위험에 빠뜨리는 것을 주저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현대 사회를 지배하는 무한 경쟁과 자본의 논리가 극단으로 치달았을 때 어떤 괴물이 탄생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섬뜩한 경고와도 같습니다. 결국 리들리 스콧 감독이 창조한 이 위대한 SF 세계관이 우리에게 던지는 진짜 질문은 이것일지도 모릅니다. 날카로운 이빨과 산성 혈액을 가진 괴물이 더 무서운가 아니면 ‘승무원은 소모품’이라는 문구를 아무렇지 않게 승인하는 시스템과 그 안의 인간들이 더 무서운가. 그 답은 아마도 우리 모두가 알고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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