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에 새로 도착한 스페인 영화 한 편이 조용하지만 묵직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제목은 믿는 자들 원제는 Los Creyentes 영어 제목은 The Truthers입니다. 이 영화는 자극적인 반전이나 잔인한 살인 장면 대신 훨씬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심리 스릴러입니다. 오랫동안 가족과 거리를 두고 살던 딸이 어머니의 석연치 않은 죽음을 계기로 고향집에 돌아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그런데 그녀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은퇴 후 완전히 다른 세계관에 빠져버린 아버지입니다. 스페인 드라마 엘리트를 만든 작가진이 다시 뭉쳐 완성한 이 작품은 화려한 장치 없이 두 사람만의 대화와 침묵으로 긴장감을 쌓아 올립니다. 믿는 자들이라는 제목이 주는 무게감만큼이나 보고 나면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 질문을 안겨주는 영화라 오늘은 이 작품을 자세히 살펴보려 합니다.
어머니의 죽음으로 돌아온 딸이 마주한 낯선 집
믿는 자들의 주인공 루트는 오랫동안 집을 떠나 가족과 연을 끊고 살아온 여성입니다. 그녀가 다시 돌아오게 된 계기는 어머니의 죽음이며 그 죽음을 둘러싼 정황은 좀처럼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아스투리아스의 축축하고 어두운 집으로 돌아온 루트를 기다리는 것은 오랜만에 마주하는 아버지 마르틴입니다. 은퇴한 그는 고립된 채 살아가며 쉽게 분노하고 오직 자신에게만 보이는 방식으로 세상을 다시 짜맞춘 음모론에 완전히 빠져 있는 인물입니다. 루트는 서서히 두려운 질문과 마주하게 됩니다. 아버지가 정말 어머니의 죽음과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입니다. 하지만 영화가 진짜 다루고 싶어하는 것은 단순한 범죄의 진실이 아닙니다. 이 사람이 그저 무너진 남자인지 아니면 위험한 남자인지 그리고 그를 아버지라 불렀던 딸이 아직 그 둘을 구별할 수 있는지를 조용히 캐묻습니다.
집이라는 감옥 안에서 벌어지는 두 사람의 실내극
이 영화의 연출 방식이 특히 인상적입니다. 감독 로제르 구알은 이야기를 철저히 집 안에 가둔 두 사람의 실내극으로 짜냈습니다. 외부에서 상황을 설명해주는 화자도 없고 이미 진실을 알고 있는 어떤 권위자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 결과 관객은 루트와 똑같은 자리에 갇힌 채 마르틴의 말을 사실과 대조할 어떤 중립적인 발판도 없이 이야기를 따라가게 됩니다. 이는 마치 음모론에 빠진 사람 곁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심정을 그대로 체험하게 만드는 방식입니다. 논쟁 밖으로 걸어 나가 진위를 확인할 수 없다는 답답함이 영화 내내 지속됩니다. 중반부 베를린으로 향하는 여정이 잠시 이야기의 지도를 넓혀주긴 하지만 그렇다고 폐쇄적인 답답함이 완전히 풀리지는 않습니다. 축축한 북녘의 빛과 한 단계 지나치게 어두운 실내를 담아낸 촬영 역시 이 봉인된 세계관을 시각적으로 완성하는 데 큰 역할을 합니다.
호세 코로나도와 스테파니 마냉이 그려낸 팽팽한 대립
이 영화를 지탱하는 것은 두 배우의 연기입니다. 아버지 마르틴을 연기한 호세 코로나도는 이십 년 넘게 스페인 영화에서 권위 있고 침착한 인물을 연기해온 배우입니다. 이번 작품은 그 이미지를 정면으로 거스릅니다. 확신을 위해 만들어진 듯한 그 얼굴이 아무도 검증할 수 없는 확신을 고집하기 시작하면서 관객은 그의 눈빛 속에서 또렷한 이성을 찾다가도 그것이 아직 남아있는지 이미 사라졌는지 판단하지 못하게 됩니다. 이 모호함을 유지하는 연기력이 상당히 인상적입니다. 딸 루트를 연기한 스테파니 마냉은 그 반대편에서 균형을 잡습니다. 그녀는 아버지의 주장 하나하나를 조심스럽게 빛에 비춰보며 그중 하나가 이론으로 위장한 자백은 아닌지 살피는 인물을 섬세하게 표현합니다. 두 사람의 대화 장면은 액션이나 큰 사건 없이도 팽팽한 긴장감을 만들어내며 영화 전체를 끌고 가는 힘이 됩니다.
장단점을 냉정하게 짚어보기
믿는 자들의 가장 큰 장점은 소재를 다루는 방식입니다. 음모론이라는 소재를 인터넷 속 익명의 군중 문제가 아니라 가족이라는 가장 사적인 공간으로 옮겨온 시도는 상당히 영리합니다. 잠긴 문이나 숨겨진 흉기 같은 장르적 장치에 기대지 않고도 긴장감을 만들어낸다는 점 역시 신선합니다. 다만 단점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두 사람만의 실내극이라는 형식이 몰입감을 주는 동시에 다소 단조롭게 느껴질 수 있는 구간도 있습니다. 사건의 진실을 명확하게 알고 싶어하는 관객이라면 영화가 끝까지 답을 주지 않는 방식에 답답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스릴러라는 장르적 기대치를 놓고 보면 긴박한 사건 전개보다는 인물 간의 심리전에 무게가 실려 있어 호불호가 갈릴 만한 작품입니다. 그럼에도 두 배우의 연기와 진지한 태도만으로도 충분히 볼 가치가 있는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영화의 결말과 관련된 내용을 다루니 스포일러를 원하지 않는다면 이 부분은 건너뛰시기 바랍니다.
결말이 남기는 것은 해답이 아니라 질문입니다
영화는 관객이 기대할 법한 명쾌한 반전으로 마무리되지 않습니다. 루트가 어머니에게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게 되더라도 그 죽음이 풀어주지 못하는 더 무거운 무언가가 마지막까지 남습니다. 바로 아버지와의 소원함입니다. 마르틴은 어떤 조직이나 운동에 가담했다기보다 딸이 여전히 발 딛고 있는 현실 자체에서 스스로 떠나버린 사람입니다. 루트의 진짜 두려움은 아버지가 어머니를 죽였을지도 모른다는 사실보다 그가 이미 다시는 함께 갈 수 없는 곳으로 넘어가버렸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영화는 사적인 우주론으로 진실을 바꿔버린 사람에게 진실이 여전히 의미가 있는지 그리고 더 이상 나의 현실에 닿지 않는 사람을 계속 사랑할 수 있는지를 마지막까지 묻습니다. 명확한 결론 대신 이 질문을 안은 채 막을 내리는 결말은 자극적인 완결감을 기대한 관객에게는 아쉬울 수 있지만 오래도록 곱씹게 되는 여운을 남깁니다.
가족이 저마다 다른 것을 믿으며 서서히 멀어지는 시대에 믿는 자들은 딱 맞는 질문을 던지는 영화입니다. 화려한 사건보다 인물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고 싶은 분이라면 이번 주 넷플릭스에서 이 영화를 한 번 확인해보시길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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