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미러 밴더스내치 (Black Mirror: Bandersnatch), 당신의 선택이 곧 주인공의 운명이 되는 게임

 


당신의 선택이 드라마의 결말이 된다면

만약 당신이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어 다음 행동을 직접 결정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아침에 어떤 시리얼을 먹을지 어떤 음악을 들을지 사소한 선택부터 누군가의 생사를 가르는 중대한 결정까지 모두 당신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블랙미러 시리즈가 2018년 내놓은 '밴더스내치 (Bandersnatch)'는 바로 이 상상을 현실로 만든 충격적인 인터랙티브 영화입니다. 이 작품은 단순한 시청을 넘어선 '체험'을 요구합니다. 우리는 1984년을 배경으로 한 천재 게임 프로그래머의 혼란스러운 정신 속으로 들어가 그의 운명을 좌우하는 선택을 강요받습니다. '블랙미러 밴더스내치'는 자유 의지라는 개념이 과연 존재하는지 그리고 우리가 믿는 선택이라는 것이 사실은 거대한 통제 시스템의 일부가 아닌지 묻는 거대하고도 씁쓸한 질문입니다. 이 독특한 경험은 우리를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이는 동시에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만듭니다.

광기의 책 밴더스내치를 게임으로 만들다

이야기는 정확히 1984년 7월 영국을 배경으로 시작합니다. 주인공은 19살의 젊은 프로그래머 스테판 버틀러입니다. 그는 겉보기엔 평범한 청년이지만 내면에는 깊은 상처가 있습니다. 바로 어린 시절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끔찍한 트라우마입니다. 그는 아버지 피터와 단둘이 살아가며 심리 상담을 받고 있습니다. 스테판의 유일한 탈출구는 컴퓨터 프로그래밍입니다. 그는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직접 선택하는' 어드벤처 북 '밴더스내치'에 완전히 매료되어 있습니다. 이 책은 여러 갈래의 길과 결말을 제시하지만 그 끝은 언제나 비극입니다. 책의 저자인 제롬 F. 데이비스는 자유 의지가 환상이라는 망상에 사로잡혀 결국 자신의 아내를 잔인하게 살해하고 미쳐버린 비운의 천재였습니다. 스테판은 이 복잡하고 어두운 책을 당시 최신 기기였던 스펙트럼 컴퓨터용 비디오 게임으로 만들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세웁니다. 그는 자신의 데모 테이프를 들고 런던의 유망한 게임 회사 '터커소프트'를 찾아갑니다. 사장인 모한 터커와 회사의 간판 스타 프로그래머인 콜린 리트먼은 스테판의 재능과 게임의 혁신성에 감탄합니다. 터커는 그에게 당장 게임 개발을 정식으로 제안합니다. 바로 여기서부터 '블랙미러 밴더스내치'는 우리에게 첫 번째 중대한 선택을 강요합니다. 터커의 제안을 받아들여 회사에서 팀과 함께 게임을 만들 것인가 아니면 거절하고 집에서 혼자 만들 것인가. 어떤 선택을 하든 스테판은 점차 '밴더스내치'의 광기에 빠져들기 시작합니다.

누가 나를 조종하는가

스테판은 게임 개발 마감일에 쫓기며 자신의 방에 틀어박혀 점점 더 고립됩니다. 그는 극심한 편집증과 불안 증세에 시달립니다. 그는 정기적으로 헤인즈 박사에게 심리 상담을 받지만 증상은 전혀 나아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이 모든 것이 자신을 무너뜨리려는 거대한 음모라고 믿기 시작합니다. 특히 그가 동경하던 동료 프로그래머 콜린 리트먼은 그의 혼란을 더욱 가중시킵니다. 콜린은 스테판에게 "시간은 환상이고 평행 우주는 실재한다" "우리는 모두 거대한 프로그램 속에서 누군가의 선택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는 심지어 스테판을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 강력한 환각제를 권하며 이 세계의 진실을 직접 보라고 말합니다. 콜린은 정부가 '팍스(PAX)'라는 괴물을 통해 사람들을 감시하고 약물로 통제하는 비밀 프로그램(PACS)을 실행 중이라고 주장합니다. 스테판의 혼란은 극에 달합니다. 그는 자신의 방에서 작업을 하다가도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음을 분명히 느낍니다. 그는 모니터를 향해 절규합니다. "당신 누구야. 내가 뭘 해야 할지 제발 신호를 줘." 바로 이 순간 '블랙미러 밴더스내치'는 시리즈 역사상 가장 소름 돋는 방식으로 제4의 벽을 무너뜨립니다. 우리는 스테판에게 우리가 누구인지 알려줘야 합니다. 넷플릭스 로고를 모니터에 보여주거나 혹은 '밴더스내치' 책에 등장했던 고대의 상징을 보여줘야 합니다. 스테판은 자신이 21세기 미래의 시청자에 의해 조종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경악하거나 혹은 자신이 거대한 음모의 희생자라고 확신하며 완전히 미쳐갑니다.

선택이 만든 수많은 비극적 결말들

스테판의 운명은 이제 우리의 선택에 따라 수십 갈래의 평행 우주로 나뉩니다. 그는 게임 개발 마감일에 쫓기며 점점 더 폭력적으로 변해갑니다. 그의 가장 깊은 트라우마 역시 수면 위로 드러납니다. 그는 어릴 적 아버지가 자신의 토끼 인형 '벅시'를 숨겨 어머니가 타기로 한 8시 45분 기차를 놓치게 만들었다고 굳게 믿습니다. 그리고 어머니는 다음 기차를 탔다가 사고를 당해 돌아가셨습니다. 이 모든 죄책감이 스테판을 짓누르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선택에 따라 스테판은 상담사 헤인즈 박사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고 아이처럼 울음을 터뜨리기도 하고 아버지를 의심하며 그의 비밀 금고를 열려고 시도하기도 합니다. 금고 안에는 스테판의 어린 시절 일기장과 함께 그가 사실 정부의 비밀 실험(PACS) 대상자였다는 충격적인 진실이 숨겨져 있기도 합니다. 만약 우리가 가장 극단적인 선택 즉 스테판을 조종해 아버지를 살해하고 시체를 유기하게 만든다면 그는 이상하게도 마음의 평화를 얻고(?) 마침내 '밴더스내치' 게임을 완성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가장 끔찍한 선택이 게임의 5점 만점 걸작 리뷰라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혹은 모든 것을 깨달은 스테판이 과거로 돌아가 금고의 비밀번호(TOY)를 입력하고 어린 시절의 자신과 마주해 어머니와 함께 기차에 탑승하며 죽음을 맞이하는 가장 비극적이면서도 슬픈 결말을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블랙미러 밴더스내치'에는 명확한 하나의 정답이 없습니다. 모든 선택은 그저 또 다른 현실 또 다른 비극으로 이어질 뿐입니다.

혼란의 중심에 선 배우들

이 복잡한 다중 서사를 설득력 있게 이끈 것은 단연 배우들의 힘입니다. 주인공 스테판 버틀러 역을 맡은 핀 화이트헤드는 이 작품의 가장 큰 성과입니다. 그는 천재 프로그래머의 예민함과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에 갇힌 나약함 그리고 점차 미쳐가는 광기를 완벽하게 넘나들었습니다. 시청자의 선택에 따라 감정선이 수시로 바뀌어야 하는 어려운 연기였음에도 그는 모든 경로에서 스테판의 절망을 설득력 있게 전달했습니다. 콜린 리트먼 역의 윌 폴터 역시 압도적인 존재감을 보여줍니다. 그는 이 미스터리한 세계의 진실을 알고 있는 듯한 초월적인 태도와 약에 취한 듯한 몽롱한 말투로 스테판(그리고 시청자)을 더욱 깊은 혼란 속으로 밀어 넣는 안내자 역할을 탁월하게 수행했습니다. 두 배우의 불안정한 에너지가 이 기묘한 작품의 중심을 단단히 붙잡았습니다.

(스포일러 주의) 정해진 결말은 없습니다

'블랙미러 밴더스내치'의 결말을 하나로 요약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 작품의 핵심은 '결말'이 아니라 '과정'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로는 스테판의 비극으로 끝납니다. 앞서 언급했듯 아버지를 살해하고 만든 게임이 5점 만점을 받는 결말이 있습니다. 이 경우 게임은 출시되지만 스테판은 곧 체포되고 게임은 전량 회수됩니다. 혹은 헤인즈 박사와의 상담 중 격분하여 그녀를 살해하는 결말도 있습니다. 가장 충격적인 넷플릭스 선택지에서는 스테판이 자신이 촬영장의 배우임을 깨닫고 혼란에 빠지거나 제작진과 싸움을 벌이다 끌려 나가기도 합니다. 하지만 가장 슬픈 결말은 역시 어린 스테판이 어머니와 함께 기차에서 죽음을 맞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결말은 시청자가 어떤 선택을 했는지에 따라 달라지며 완벽한 해피엔딩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선택이라는 거대한 실험이 남긴 것

'블랙미러 밴더스내치'는 의심할 여지 없이 혁신적인 시도입니다. 시청자를 단순한 관찰자에서 이야기의 참여자로 끌어올린 형식은 그 자체로 놀라운 경험을 선사합니다. 내가 선택한 결과가 즉각적으로 반영되는 것을 보며 우리는 스테판과 함께 희열과 죄책감을 동시에 느낍니다. 하지만 이 혁신적인 형식은 동시에 명확한 한계를 가집니다. 장점은 역시 압도적인 몰입감입니다. 하지만 단점은 이야기가 너무 많은 갈래로 나뉘다 보니 각 서사의 깊이가 얕아진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스테판의 고통에 공감하기보다 다음 선택지가 무엇일지 궁금해하는 '게이머'의 입장이 되기 쉽습니다. 결국 '블랙미러 밴더스내치'는 자유 의지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동시에 우리 스스로가 누군가의 운명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노는 통제자가 되는 아이러니를 체험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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