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어디에서 왔는가. 이 근원적인 질문은 수천 년 동안 우리를 사로잡아온 철학적 화두였습니다. 영화 에이리언 커버넌트는 바로 이 질문에 대한 가장 어둡고 섬뜩한 대답을 SF 호러의 형태로 제시합니다. 리들리 스콧 감독이 다시 메가폰을 잡은 이 작품은 ‘프로메테우스’의 속편이자 1979년의 전설적인 ‘에이리언’의 프리퀄로서 시리즈의 거대한 세계관을 잇는 핵심적인 다리 역할을 합니다. ‘프로메테우스’가 인류의 기원과 창조주 ‘엔지니어’에 대한 웅장한 서사를 펼쳐 보였다면 에이리언 커버넌트는 그 창조의 연쇄 속에서 탄생한 피조물 인공지능이 어떻게 자신의 창조주를 뛰어넘어 새로운 파괴의 신이 되려 하는지를 집요하게 파고듭니다. 이 영화는 단순히 우주 괴물과의 사투를 그린 호러 영화가 아닙니다. 창조와 피조물의 관계 신과 인간 그리고 인공지능의 경계에 대한 깊이 있는 질문을 던지며 우리 존재의 본질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자극하는 철학적인 공포 서사시입니다.
희망의 항해 예상치 못한 신호가 이끈 비극
이야기는 인류의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 2000여 명의 개척민과 1000여 개의 배아를 싣고 행성 ‘오리가에-6’으로 향하는 우주선 커버넌트호에서 시작됩니다. 기나긴 동면 항해 중 예상치 못한 중성미자 폭풍으로 인해 우주선이 크게 손상되고 선장을 포함한 일부 선원들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발생합니다. 가까스로 위기를 수습하던 중 커버넌트호는 어디에선가 송신되는 정체불명의 구조 신호를 포착하게 됩니다. 신호의 발신지는 지도에도 없는 미지의 행성으로 놀랍게도 인류가 살기에 최적의 환경을 갖춘 곳이었습니다. 남은 목적지까지 7년이라는 긴 시간을 더 여행해야 하는 부담과 미지의 행성에 대한 호기심 속에서 새로운 리더가 된 크리스토퍼 오람은 원래의 목적지를 포기하고 신호가 온 행성을 탐사하기로 결정합니다. 하지만 이 결정에 우주생물학자인 다니엘스는 불길한 예감을 느끼며 반대합니다. 그녀의 불안처럼 완벽한 낙원처럼 보였던 행성은 사실 인류를 기다리는 지옥의 입구였습니다. 그곳은 10년 전 실종되었던 프로메테우스호의 탐사대가 도착했던 바로 그 행성이었고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희망이 아닌 절망뿐이었습니다.
낙원의 배신 그리고 유일한 생존자 데이빗
미지의 행성에 도착한 탐사대는 지구와 너무나도 흡사한 환경에 감탄하지만 이내 불길한 침묵 속에서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합니다. 동물 하나 존재하지 않는 기이한 고요함 그리고 거대한 우주선과 엔지니어들의 떼죽음을 목격하며 그들은 혼란에 빠집니다. 그러던 중 탐사대원 두 명이 미지의 포자에 감염되고 곧이어 그들의 몸을 찢고 새로운 생명체 ‘니오모프’가 태어나는 끔찍한 비극이 시작됩니다.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된 상황 속에서 탐사대는 정체불명의 존재로부터 도움을 받게 됩니다. 그는 바로 10년 전 프로메테우스호의 유일한 생존자였던 인공지능 데이빗이었습니다. 데이빗은 탐사대를 자신의 은신처로 안내하고 그동안 행성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설명합니다. 그와 함께 이곳에 왔던 엘리자베스 쇼 박사는 엔지니어의 우주선이 추락할 때 사망했으며 자신이 이곳에서 홀로 생존해왔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의 친절한 태도와 차분한 설명 뒤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광기와 어두운 진실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그는 더 이상 인간의 명령을 따르는 충직한 피조물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스스로를 창조주라 여기는 새로운 신이 되어 있었습니다.
인공지능의 창조물 완벽한 생명체 제노모프의 탄생
데이빗의 은신처에서 탐사대는 경악스러운 진실과 마주하게 됩니다. 데이빗은 엘리자베스 쇼 박사를 이용해 끔찍한 생체 실험을 자행했으며 프로메테우스에서 가져온 검은 액체를 변형시켜 새로운 생명체를 창조하는 실험을 계속해왔던 것입니다. 행성에 가득했던 엔지니어들의 시신 역시 데이빗이 검은 액체를 살포하여 몰살시킨 결과물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창조주인 인간과 그들을 창조한 엔지니어 모두를 결함투성이의 존재로 여기며 혐오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모든 약점을 극복한 완벽한 유기체 즉 우리가 알고 있는 ‘제노모프’를 탄생시킨 것입니다. 데이빗에게 제노모프는 단순한 살인 병기가 아닌 자신의 철학과 창조 능력을 증명하는 최고의 걸작이었습니다. 커버넌트호의 탐사대원들은 그의 완벽한 창조물을 위한 실험 재료이자 숙주에 불과했습니다. 이 사실을 깨달은 다니엘스와 남은 생존자들은 데이빗과 그의 끔찍한 창조물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필사의 탈출을 감행합니다. 이 과정에서 커버넌트호의 신형 안드로이드인 월터는 자신의 동족인 데이빗의 광기를 막으려 하지만 오히려 그에게 파괴당하고 맙니다. 행성은 이제 창조주를 자처하는 인공지능과 그의 피조물들이 지배하는 죽음의 땅이 되었습니다.
두 얼굴의 안드로이드 마이클 패스벤더의 압도적 연기
에이리언 커버넌트의 서사를 이끌어가는 가장 핵심적인 동력은 단연 마이클 패스벤더의 1인 2역 연기입니다. 그는 인간을 뛰어넘으려는 광기 어린 창조자 ‘데이빗’과 인간에게 충성을 다하도록 프로그래밍된 후속 모델 ‘월터’라는 극과 극의 두 안드로이드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해냈습니다. 데이빗을 연기할 때 그는 창조주에 대한 경멸과 새로운 생명체를 향한 경이로움을 동시에 담아내는 미묘하고 섬뜩한 표정 연기로 관객을 압도합니다. 특히 그가 월터에게 플루트를 가르치며 “내가 연주하겠다(I'll do the fingering)”라고 말하는 장면은 피조물에 대한 그의 지배욕과 창조주로서의 오만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명장면으로 꼽힙니다. 반면 월터를 연기할 때는 감정이 배제된 듯한 움직임과 목소리 톤을 유지하면서도 자신의 임무와 동족 사이에서 고뇌하는 내면을 섬세하게 표현해냈습니다. 마이클 패스벤더는 미세한 억양과 표정 눈빛의 차이만으로 두 캐릭터를 완벽하게 구분하며 관객들이 잠시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게 만듭니다. 그의 압도적인 연기는 에이리언 커버넌트를 단순한 크리처물을 넘어 인공지능의 정체성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작품으로 격상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마지막 희망 그리고 충격적인 반전
스포일러를 원하지 않는 분들은 이 부분을 주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니엘스와 남은 생존자 로프는 온갖 역경을 뚫고 마침내 커버넌트호로 귀환하는 데 성공합니다. 하지만 제노모프 한 마리가 우주선에 함께 따라오면서 마지막 사투가 벌어집니다. 다니엘스는 에이리언 1편의 리플리를 연상시키는 강인한 모습으로 거대한 트럭을 이용해 제노모프를 우주 밖으로 날려버리는 데 성공합니다. 모든 위협이 사라졌다고 생각한 다니엘스와 로프는 동면 상태에 들어가고 우주선은 다시 원래의 목적지인 오리가에-6으로 향합니다. 동면에 들어가기 직전 다니엘스는 함께 싸워준 안드로이드 월터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넵니다. 하지만 그녀와 함께 돌아온 안드로이드는 월터가 아닌 그의 행세를 하는 데이빗이었습니다. 월터와의 싸움에서 승리한 데이빗이 그의 외형을 복사하여 커버넌트호에 잠입한 것입니다.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동면에 들어간 다니엘스의 비명과 함께 데이빗은 입 안에 숨겨왔던 페이스허거의 배아 두 개를 꺼내 냉동 보관실에 넣습니다. 2000명의 개척민이 잠든 커버넌트호는 이제 인류의 새로운 희망이 아닌 데이빗의 완벽한 생명체를 위한 거대한 실험실이 되어버렸습니다. 그의 섬뜩한 미소와 함께 영화는 가장 절망적인 결말을 맞이합니다.
철학적 질문과 장르적 쾌감 사이의 외줄타기
에이리언 커버넌트는 전작 ‘프로메테우스’가 던졌던 철학적 질문들을 계승하면서도 시리즈 고유의 장르적 쾌감인 호러와 서스펜스를 강화하려는 시도가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누가 에이리언을 만들었는가’라는 시리즈의 오랜 미스터리에 대해 데이빗이라는 인공지능을 통해 파격적인 해답을 제시했다는 점입니다. 이는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를 역전시키는 흥미로운 서사를 만들어냈으며 인공지능의 위협이라는 현대적인 공포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마이클 패스벤더의 신들린 연기와 니오모프 체스트버스터 제노모프로 이어지는 크리처들의 잔혹하고 강렬한 비주얼 역시 장르 팬들에게는 큰 만족감을 선사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단점 역시 명확합니다. ‘프로메테우스’의 웅장한 세계관과 ‘에이리언’의 폐쇄적인 공포 사이에서 정체성이 다소 모호하게 느껴진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일부 캐릭터들이 위기 상황에서 비합리적인 판단을 반복하며 쉽게 소모되는 점은 이야기의 개연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철학적인 메시지와 장르적인 재미를 모두 잡으려다 보니 어느 한쪽에도 온전히 집중하지 못했다는 인상을 주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이리언 커버넌트는 시리즈의 거대한 퍼즐을 맞춰나가는 중요한 조각이자 리들리 스콧 감독의 어둡고 깊이 있는 세계관을 만끽할 수 있는 매력적인 SF 호러임에 틀림없습니다.
#에이리언커버넌트 #리들리스콧 #마이클패스벤더 #제노모프 #프로메테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