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사형투표(The Killing Vote) 정의는 무엇인가, 괴물이 던진 위험한 질문

법의 심판을 교묘히 빠져나간 악인들을 당신의 손으로 직접 처단할 수 있다면 과연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SBS 드라마 ‘국민사형투표’는 바로 이처럼 섬뜩하고도 도발적인 질문을 우리 사회 한복판에 던지는 작품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전 국민의 스마트폰으로 전송된 하나의 문자. 법망을 피해간 악질범의 죄상이 낱낱이 공개되고 이 자의 사형에 대한 찬반을 묻는 투표가 시작됩니다. 과반수의 찬성을 얻으면 ‘개탈’이라 불리는 정체불명의 집행자가 그를 무자비하게 살해합니다. 법치주의 국가의 근간을 뒤흔드는 이 전대미문의 사건 앞에 경찰은 속수무책이고 여론은 극심한 혼란과 열광으로 들끓습니다. 동명의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 이 드라마는 단순히 자극적인 범죄 스릴러를 넘어 우리 사회에 만연한 사법 불신과 정의에 대한 대중의 갈증을 정면으로 다룹니다. 과연 개탈은 새로운 시대의 영웅일까요 아니면 또 다른 괴물일 뿐일까요. 드라마는 이 위험한 질문에 대한 답을 시청자 스스로 찾게 만들며 끝까지 손에 땀을 쥐게 합니다.

개탈의 등장, 법치를 조롱하는 그림자 집행인

이야기는 아동 성착취물을 제작하고 유포했음에도 불구하고 솜방망이 처벌을 받고 풀려난 한 남자의 영상이 전국에 생중계되면서 시작됩니다. 개 모양의 탈을 쓴 정체불명의 인물 ‘개탈’은 18세 이상 모든 국민에게 이 남자의 사형 찬반을 묻는 문자 메시지를 발송합니다. 투표 참여율이 50%를 넘고 찬성률이 50%를 넘으면 자신이 직접 사형을 집행하겠다는 충격적인 공약과 함께였습니다. 경찰은 이를 무시하지만 국민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습니다. 순식간에 투표는 과반을 넘기고 개탈은 예고한 대로 목표물을 잔혹하게 살해한 후 유유히 사라집니다. 경찰 특별수사본부가 꾸려지고 다혈질의 저돌적인 형사 김무찬(박해진 분)과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의 에이스 주현(임지연 분)이 개탈 추적에 나섭니다. 하지만 개탈은 경찰의 수사망을 비웃기라도 하듯 뛰어난 해킹 실력과 치밀한 계획으로 두 번째 세 번째 사형투표를 강행하며 법 위에 군림하는 자신만의 정의를 실현해 나갑니다. 그의 심판대에 오르는 이들은 모두 법의 허점을 이용해 풀려난 악질범들이었고 국민들은 점차 그의 사적 복수에 열광하기 시작합니다.

두 명의 용의자, 경찰과 죄수의 기묘한 공조

수사가 난항에 빠진 가운데 김무찬과 주현은 유력한 용의자로 한 인물을 주목합니다. 그는 바로 8년 전 자신의 어린 딸을 성폭행하고 살해한 범인을 직접 살해하고 교도소에 장기 복역 중인 전직 법학자 권석주(박성웅 분)였습니다. 법에 누구보다 해박했던 그가 법에 대한 불신으로 스스로 심판자가 된 과거는 개탈의 행보와 너무나도 닮아 있었습니다. 김무찬은 개탈을 잡기 위해 교도소에 있는 권석주에게 자문을 구하는 위험한 공조를 시작합니다. 하지만 권석주는 속내를 알 수 없는 태도로 수사에 협조하는 듯하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무찬을 혼란에 빠뜨립니다. 그는 개탈의 다음 범행을 예측하고 그의 심리를 꿰뚫어 보면서도 어딘가 그를 옹호하는 듯한 이중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한편 경찰 내부에서는 또 다른 용의자가 떠오릅니다. 바로 고등학교 교사이자 권석주의 사상을 맹신하는 제자 이민수입니다. 그는 평범한 교사의 얼굴 뒤에 서늘한 분노와 광기를 숨기고 있으며 개탈의 배후에서 모든 것을 조종하는 듯한 의심을 자아냅니다. 경찰과 죄수 그리고 숨겨진 추종자들 사이의 팽팽한 심리전 속에서 개탈의 진짜 정체는 더욱 미궁 속으로 빠져듭니다.

신념의 대리인, 박해진 박성웅 임지연의 연기

‘국민사형투표’의 무거운 주제 의식과 팽팽한 긴장감은 세 주연 배우의 호연을 통해 완성되었습니다. 김무찬 팀장 역의 박해진은 과거의 실수로 인한 죄책감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의 테두리 안에서 정의를 실현하려는 경찰로서의 신념 사이에서 고뇌하는 입체적인 인물을 설득력 있게 그려냈습니다. 그는 거칠고 저돌적이지만 그 이면에는 인간적인 고뇌를 숨긴 캐릭터를 통해 시청자들이 경찰의 입장에 감정 이입하게 만들었습니다. 권석주 역의 박성웅은 드라마의 무게 중심을 잡는 압도적인 연기를 선보였습니다. 그는 선과 악의 경계에 선 법학자의 냉철한 모습과 딸을 잃은 아버지의 처절한 슬픔을 오가며 단 몇 마디의 대사와 눈빛만으로도 화면을 장악했습니다. 그의 존재는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드라마의 핵심 질문에 깊이를 더했습니다. 서울청 사이버수사대 주현 경위 역의 임지연은 ‘더 글로리’의 악역 이미지를 벗고 정의감 넘치고 영리한 경찰 캐릭터로 성공적인 연기 변신을 보여주었습니다. 세 배우가 각자의 신념을 대변하며 벌이는 연기 대결은 드라마의 가장 중요한 관전 포인트였습니다.

모두의 비극으로 끝난 정의의 폭주

스포일러를 원하지 않는 분들은 이 부분을 주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드라마의 후반부 개탈의 정체는 권석주의 복수를 돕기 위해 뭉친 그의 추종자들이라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권석주의 아들이나 다름없었던 고등학생 김지훈과 교사 이민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순수하게 권석주의 사상을 따랐던 김지훈과 달리 이민수는 자신의 사이코패스적인 살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국민사형투표를 이용했던 진짜 흑막이었습니다. 결국 권석주는 교도소를 탈출하여 자신의 딸을 죽인 진범 이민수를 향한 마지막 복수를 감행하고 그를 처단하는 데 성공합니다. 모든 복수를 마친 그는 자신을 마지막 국민사형투표의 대상자로 올리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하지만 김무찬에 의해 저지당합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김지훈이 죽음을 맞이하고 또 다른 추종자는 권석주를 데리고 바다에 투신하며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합니다. 1년 후 주현은 경찰을 계속하고 김무찬은 권력을 이용해 아들의 죄를 덮으려 했던 국회의원을 체포하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정의를 이어갑니다. 바다에 던져졌던 국민사형투표 프로그램 USB가 누군가에 의해 다시 실행되는 듯한 열린 결말로 드라마는 끝을 맺으며 사적 복수에 대한 대중의 욕망이 존재하는 한 제2 제3의 개탈은 언제든 나타날 수 있다는 섬뜩한 메시지를 남깁니다.

자극적 설정 속 묵직한 질문, 그 성취와 한계

‘국민사형투표’는 ‘사형’이라는 민감한 소재를 대중의 투표와 결합시킨 파격적인 설정으로 방영 내내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이 드라마의 가장 큰 장점은 시청자들에게 끊임없이 ‘나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사법 정의의 역할과 의미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만든다는 점입니다. 또한 박진감 넘치는 사건 전개와 세 주연 배우의 흠잡을 데 없는 연기력은 장르적 쾌감을 선사하기에 충분했습니다. 하지만 단점도 분명합니다. 웹툰 원작의 방대한 이야기를 12부작으로 압축하는 과정에서 일부 캐릭터의 서사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거나 개연성이 부족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특히 개탈의 정체가 밝혀진 이후의 전개가 다소 급작스럽고 허술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또한 주 1회라는 편성 방식과 잦은 결방은 시청자들의 몰입을 방해하는 아쉬운 요소로 작용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사형투표’는 우리 사회의 불편한 진실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고 묵직한 화두를 던지는 데 성공한 의미 있는 작품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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