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라랜드 (La La Land), 데이미언 셔젤이 재즈와 로맨스를 결합해 만든 두 가지 결말의 의미

꿈의 도시 로스앤젤레스에서 시작된 두 사람의 이야기

라라랜드는 2016년에 공개된 데이미언 셔젤 감독의 뮤지컬 영화입니다. 재즈 피아니스트 세바스찬과 배우 지망생 미아가 로스앤젤레스에서 만나 사랑에 빠지고 각자의 꿈을 쫓는 이야기입니다. 제목 라라랜드는 로스앤젤레스의 별명이면서 현실과 동떨어진 상태를 뜻하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제목 하나에 꿈의 도시와 꿈에 취한 사람들이라는 두 가지 뜻이 함께 담겨 있습니다.

셔젤 감독은 재즈 드러머의 집착을 그린 전작 위플래쉬로 주목받았고 그 성공이 이 프로젝트를 제작으로 이끌었습니다. 라라랜드는 그런 감독이 재즈를 이번에는 사랑 이야기와 엮은 작품입니다.

이 영화는 사랑 이야기이면서 꿈 이야기입니다. 두 사람은 서로의 꿈을 응원하며 가까워지지만 그 꿈을 이루려는 과정에서 서로에게 균열이 생깁니다. 그리고 영화는 마지막에 결말을 두 번 보여 줍니다.

이 글에서는 셔젤 감독이 재즈와 로맨스를 어떻게 하나로 엮었는지 그리고 두 가지 결말이 각각 무엇을 말하는지를 따라가 보겠습니다. 결말 이야기는 뒤쪽 소제목에서 다루니 아직 영화를 보지 않으셨다면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재즈는 죽어 가고 있다고 말한 남자와 재즈를 싫어한다고 말한 여자

세바스찬은 진짜 재즈를 지키겠다는 꿈을 가진 인물입니다. 그는 레스토랑에서 손님들이 원하는 캐럴만 연주해야 하는 처지였고 마음대로 곡을 연주하다가 해고당합니다. 그때 그의 피아노 소리에 이끌려 레스토랑에 들어온 사람이 미아였습니다. 하지만 기분이 상한 세바스찬은 미아의 칭찬을 무시하고 어깨를 툭 치며 지나갑니다.

두 사람은 이후 한 파티에서 다시 만나 서로를 놀리며 티격태격합니다. 그러다 세바스찬이 미아를 재즈바 라이트하우스 카페로 데려가는 장면이 이 영화의 재즈 철학이 가장 잘 드러나는 순간입니다. 미아가 사실 재즈를 싫어한다고 고백하자 세바스찬은 재즈가 편하게 듣는 음악이 아니라고 열변을 토합니다. 재즈는 그냥 듣는 음악이 아니라 서로 충돌했다가 타협하며 대화하는 음악이고 매일 밤이 초연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런 재즈가 죽어 가고 있어서 자신이 지키겠다고 말합니다.

이 대사가 중요한 이유는 재즈가 이 영화의 구조와 맞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제 해석으로는 재즈가 서로 대화하고 즉흥적으로 주고받는 음악이라면 미아와 세바스찬의 사랑도 서로의 꿈과 삶을 주고받는 즉흥 연주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영화 속에서 사랑의 시작은 대화이고 사랑의 균열도 대화의 어긋남으로 나타납니다. 세바스찬은 이 대화를 지키려던 사람이었지만 정작 자신의 꿈과 미아의 꿈 사이에서 대화가 엇갈리는 지점을 만나게 됩니다.

함께 있어서 멀어진 여름과 가을 그리고 타협의 대가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은 여름을 열정적으로 보냅니다. 하지만 현실은 사랑만큼 예쁘지만은 않았습니다. 세바스찬은 재즈바를 열려면 돈이 필요하다는 현실 앞에서 학교 동창 키이스의 밴드 메신저스에 합류합니다. 밴드는 성공하지만 세바스찬이 사랑하던 정통 재즈와는 거리가 먼 음악이었습니다. 공연장에서 그를 바라보는 미아의 표정이 어두워지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조용한 균열의 순간입니다.

가을이 되자 균열은 커집니다. 투어로 바쁜 세바스찬과 일인극 준비로 불안한 미아는 저녁 식사 자리에서 크게 다툽니다. 미아는 그건 당신의 꿈이 아니라고 말하고 세바스찬은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하지 않느냐고 맞섭니다. 서로를 위해 한 선택이 오히려 서로에게 상처가 되는 순간입니다. 이어서 세바스찬은 사진 촬영 일정을 착각해 미아의 일인극 공연에 가지 못하고 미아는 얼마 되지 않는 관객 앞에서 큰 좌절을 겪습니다. 그녀는 고향으로 내려가 버립니다.

그럼에도 세바스찬은 미아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미아를 찾는 캐스팅 감독의 전화를 받은 그는 곧장 차를 몰아 미아의 집 앞까지 가서 경적을 울립니다. 이 경적은 영화 첫 장면에서 두 사람이 처음 마주쳤던 순간을 떠올리게 합니다. 미아는 다시 오디션장으로 가서 이모의 이야기를 노래하고 이 오디션 장면이 그녀의 부활을 상징합니다. 하지만 오디션이 끝난 뒤 그리피스 공원에서 미아가 우리는 어디에 있느냐고 묻자 세바스찬은 선뜻 답하지 못합니다.

스포일러 주의 5년 뒤 재즈바에서 열린 두 가지 결말

여기서부터는 영화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직 영화를 보지 않으셨다면 이 부분은 건너뛰시기 바랍니다.

그날 두 사람은 잠시 떨어져 서로의 꿈을 쫓기로 했고 영화는 5년 뒤 겨울로 넘어갑니다. 미아는 할리우드 스타가 되어 남편과 딸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세바스찬은 그토록 원하던 재즈바를 열었습니다. 미아가 남편과 우연히 들어간 지하 바의 입구에는 오래전 자신이 디자인해 선물한 셉스라는 로고가 붙어 있었습니다. 눈이 마주친 세바스찬은 셉스에 오신 것을 환영한다고 말한 뒤 두 사람의 테마곡을 연주하기 시작합니다.

그 순간 영화는 현실의 재회에서 벗어나 상상 속 장면으로 넘어갑니다. 연주가 이어지는 동안 영화는 두 사람이 처음 마주쳤던 레스토랑으로 돌아가 세바스찬이 미아를 외면하는 대신 키스로 맞이하는 장면을 보여 줍니다. 이어서 만약 세바스찬이 밴드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그리고 미아의 공연이 성공했다면 그리고 두 사람이 함께 파리로 갔다면 어땠을지가 아름다운 춤과 음악으로 펼쳐집니다. 함께 아이를 키우고 재즈바에 들러 연주를 듣는 모습까지 나옵니다. 어쩌면 가능했을지도 모를 삶입니다.

곡이 끝나면 미아는 현실로 돌아옵니다. 남편이 한 곡 더 듣겠느냐고 묻지만 미아는 괜찮다고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바를 나서다 돌아본 미아와 세바스찬은 서로를 바라보고 세바스찬은 미소를 보냅니다. 미아도 짧은 목례로 답하고 두 사람은 작별합니다. 그리고 세바스찬이 새 곡을 준비하며 영화는 끝납니다.

왜 두 번의 결말이 필요했을까요

이 이중 결말의 의미를 이해하려면 감독의 설명을 들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셔젤은 CNN 인터뷰에서 이 결말이 처음부터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연인이 끝내 함께하지 못하는 사랑 이야기가 매우 낭만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두 사람의 사랑을 영화 속 세 번째 등장인물처럼 계속 살아가는 무엇으로 본다고 했고 관계는 현실적으로 끝났어도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다른 인터뷰에서 그는 이 결말이 비극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도 말했습니다. 프랑스 뮤지컬 셰르부르의 우산에서 영감을 받았지만 그 영화가 조금 더 비극적인 어조라면 자신은 결말에 진짜 희망을 담고 싶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꿈은 이루어지고 어떤 꿈은 이루어지지 않으며 모든 꿈이 이루어진다면 정직한 영화가 아닐 것이라고 했습니다. 제작자 프레드 버거도 할리우드 리포터와의 인터뷰에서 제작진이 주인공 둘이 끝내 함께하지 않는다는 데 합의했다고 밝혔습니다. 셔젤은 다른 인터뷰에서 위플래쉬와 마찬가지로 이 영화도 결말이 꽤 일찍 정해졌고 결말에 이르는 과정을 여러 번 고쳐 썼다고 말했으며 편집에서도 결말 부분을 가장 먼저 다듬었다고 밝혔습니다.

이 설명을 종합해 제가 이해한 바로는 두 가지 결말은 서로 다른 역할을 합니다. 현실의 결말은 꿈과 사랑이 항상 함께 이루어지지는 않는다는 정직한 이야기를 하고 상상 속 결말은 그렇다고 해서 사랑이 헛된 것은 아니라는 위로를 건넵니다. 관객에게 아름다운 만약을 충분히 보여 준 뒤에야 현실의 작별이 견딜 만해지도록 설계된 구조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의 미소는 아쉬움이면서 동시에 감사의 인사입니다. 세바스찬은 자신의 꿈이었던 재즈바를 열었고 미아는 자신의 꿈이었던 배우가 되었으니 각자의 꿈을 이룬 것입니다. 이 해석이 감독의 공식 입장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인터뷰 발언과 장면 구성이 서로 잘 맞습니다.

라이언 고슬링 엠마 스톤의 연기는 어땠을까요

이 영화의 감정은 두 배우의 연기에서 나옵니다. 라이언 고슬링은 세바스찬을 고집스럽고 자존심 강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인물로 만들었습니다. 재즈 이야기를 할 때는 눈빛이 달라지고 미아 앞에서는 서툰 농담으로 마음을 숨깁니다. 특히 재즈바에서 미아의 이야기를 듣는 장면과 마지막 재즈바에서 말없이 피아노 앞에 앉는 장면에서 표정으로 감정을 전하는 연기가 좋았습니다.

엠마 스톤은 오디션에서 좌절을 반복하는 미아의 불안과 설렘을 자연스럽게 그렸습니다. 특히 오디션 장면의 독백 노래는 라이브로 불러야 한다고 그녀가 결심했다고 알려져 있고 실제로 현장에서 직접 부른 것이라고 합니다. 이 장면에서 그녀의 연기는 노래 실력보다 진심으로 흔들리는 목소리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연기로 그녀는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았습니다.

두 배우는 이 영화로 골든글로브 주연상을 받으며 연기력을 인정받았습니다. 다만 두 사람의 연기는 화려한 기교보다 서툴고 솔직한 감정이 매력인 쪽에 가까워서 고전 뮤지컬 특유의 완벽한 무대를 기대하신 분에게는 다르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저는 이 서툴러 보이는 결이 영화의 현실적인 낭만과 잘 어울렸다고 생각합니다.

눈부시게 아름답지만 모든 사람이 사랑할 수는 없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노래와 색감과 장면 구성이 모두 하나의 감정으로 모인다는 점입니다. 오프닝 고속도로 장면부터 그리피스 천문대의 춤과 마지막 상상 시퀀스까지 음악과 영상이 서로를 받쳐 줍니다. 이 영화는 아카데미 14개 부문에 후보로 올라 역대 최다 후보 기록과 타이를 이루었고 감독상과 여우주연상을 포함해 6개 부문을 수상했습니다. 셔젤은 32세에 아카데미 역대 최연소 감독상 수상자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분명합니다. 첫째로 결말을 두고 두 사람이 함께했어야 했다는 아쉬움이 컸고 그 때문에 영화가 공개된 뒤 결말을 둘러싼 논쟁이 이어졌습니다. 이 결말은 해피엔딩을 기대한 관객에게는 분명 서운한 선택입니다. 둘째로 미아가 남자친구 그레그를 두고 세바스찬에게 향하는 초반 전개를 불편하게 볼 여지가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셋째로 뮤지컬 영화에서는 인물이 갑자기 노래하기 시작하는 장면이 낯설 수 있습니다. 한 해외 매체 리뷰도 요즘 영화에서는 이런 장면이 드물어 관객이 익숙해질 시간이 필요하다고 짚었습니다. 그래서 뮤지컬을 좋아하지 않는 분에게는 현실과 동떨어진 영화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래도 저는 이 영화를 이야기 자체보다 마지막 5분의 감정으로 기억한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루지 못한 사랑도 인생을 채운다는 메시지를 이렇게 아름답게 전한 영화는 드뭅니다. 처음 보실 때는 이야기를 따라가고 두 번째 보실 때는 재즈와 색감을 살펴보시기를 권합니다. 그러면 마지막 미소가 다르게 보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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