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클라베(Conclave), 랄프 파인즈가 그린 교황 선출 비밀 회의의 실제와 허구 그리고 충격적인 결말

전 세계 14억 명이 넘는 가톨릭 신자를 이끌 새로운 교황은 어떻게 뽑힐까요. 추기경들은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채 시스티나 성당 문을 걸어 잠그고 투표를 이어 갑니다. 굴뚝에서 검은 연기가 오르면 아직 결정이 나지 않았다는 뜻이고 흰 연기가 오르면 새 교황이 탄생했다는 신호입니다. 수백 년 동안 이어져 온 이 비밀 의식이 바로 콘클라베입니다. 영화 콘클라베는 그 닫힌 문 안에서 벌어질 수 있는 욕망과 음모 그리고 신앙의 흔들림을 숨 막히게 그려 낸 작품입니다. 놀랍게도 영화가 개봉한 이듬해인 2025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종하면서 실제 콘클라베가 열렸고 영화는 다시 한번 전 세계의 관심을 받았습니다. 영화 속 이야기는 어디까지가 실제이고 어디부터가 허구일까요.

에드워드 베르거 감독과 로버트 해리스 원작이 만난 교황 선출 스릴러

콘클라베는 영국 작가 로버트 해리스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입니다. 연출은 서부 전선 이상 없다로 아카데미 국제장편영화상을 받은 에드워드 베르거 감독이 맡았습니다. 2024년 개봉한 이 영화는 아카데미 8개 부문 후보에 올랐고 피터 스트로헌이 각색상을 받았습니다. 미국 영화연구소와 전미비평가위원회가 뽑은 그해의 영화 10편에도 이름을 올렸습니다.

콘클라베는 총격전이나 추격 장면 하나 없이 오직 대화와 투표만으로 긴장감을 쌓아 올리는 독특한 스릴러입니다. 붉은 예복을 입은 추기경들이 복도를 오가는 모습과 하얀 우산을 쓴 추기경들이 안뜰을 가로지르는 장면처럼 한 장면 한 장면이 그림처럼 정교하게 연출되어 있습니다. 실제 시스티나 성당에서는 촬영할 수 없었기 때문에 제작진은 이탈리아 로마의 치네치타 스튜디오에 성당 내부를 그대로 재현했습니다.

교황의 죽음과 굳게 닫힌 시스티나 성당의 문

이야기는 교황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면서 시작됩니다. 추기경단 단장인 로런스 추기경은 새 교황을 뽑는 콘클라베를 책임지게 됩니다. 사실 로런스는 신앙에 대한 회의 때문에 교황에게 사임을 요청했던 사람이었지만 교황은 끝내 그의 사임을 받아 주지 않았습니다.

콘클라베에 모인 추기경들은 겉으로는 경건하지만 속으로는 치열한 선거전을 벌입니다. 진보 성향의 벨리니 추기경은 로런스의 오랜 친구로 고인이 된 교황의 개혁을 이어 갈 인물로 꼽힙니다. 보수 성향의 이탈리아인 테데스코 추기경은 교회를 과거로 되돌리겠다는 뜻을 숨기지 않습니다. 캐나다 출신 트랑블레 추기경은 중도를 내세우며 표를 모으고 나이지리아 출신 아데예미 추기경은 최초의 아프리카 출신 교황이 될 수 있는 유력 후보입니다.

그런데 콘클라베가 시작되기 직전 아무도 모르던 추기경 한 명이 나타납니다. 아프가니스탄 카불의 대주교 베니테스는 선종한 교황이 비밀리에 임명한 추기경이라며 서류를 내밉니다. 로런스는 고민 끝에 그의 참석을 허락하고 마침내 성당의 문이 굳게 닫힙니다.

투표가 거듭될수록 드러나는 추기경들의 비밀

첫 투표에서 어느 후보도 3분의 2를 얻지 못하자 로런스는 교황의 마지막 행적을 조사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교황이 세상을 떠나기 직전 트랑블레를 불러 해임하려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한편 선두로 치고 나가던 아데예미는 한 수녀와 관련된 과거의 부적절한 관계가 드러나면서 순식간에 몰락합니다. 로런스는 이 수녀가 로마로 오게 된 배후에 트랑블레가 있었다는 것을 알아냅니다. 트랑블레는 다른 추기경들의 표를 돈으로 사들인 성직매매 의혹까지 폭로되며 후보에서 밀려납니다.

로런스는 교황의 방에 남아 있던 기록을 찾아내기 위해 봉인까지 뜯는 대담한 행동을 합니다. 이 과정에서 수녀들을 이끄는 아녜스 수녀가 추기경들 앞에서 진실을 밝히며 조용하지만 강한 목소리를 냅니다. 벨리니의 표는 좀처럼 늘지 않고 결국 보수파 테데스코가 가장 유력한 후보로 떠오릅니다. 고민하던 로런스는 투표용지에 자신의 이름을 적어 넣습니다. 그 순간 성당 밖에서 폭탄 테러가 일어나 창문이 깨지고 추기경들은 혼란에 빠집니다. 테데스코가 종교 간 전쟁을 부추기는 말을 쏟아 내자 그동안 조용히 지켜보던 베니테스가 일어섭니다. 그는 전쟁터에서 직접 겪은 고통을 이야기하며 교회가 증오가 아닌 겸손으로 답해야 한다고 호소하고 이 연설이 추기경들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스포일러 주의 새 교황이 숨겨 온 마지막 비밀

이 부분부터는 영화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으니 스포일러를 원하지 않는 분들은 주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음 투표에서 베니테스가 새 교황으로 선출되고 그는 인노첸시오라는 이름을 선택합니다. 굴뚝에서 흰 연기가 피어오르지만 로런스는 아직 풀리지 않은 의문 하나를 붙들고 있었습니다. 선종한 교황이 베니테스의 스위스 병원 진료비를 대신 내 주었다는 기록이었습니다.

로런스가 조심스럽게 묻자 베니테스는 담담하게 진실을 털어놓습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남성으로 자랐지만 몸 안에 자궁과 난소를 지닌 간성이었고 이 사실을 성인이 된 뒤에야 알게 됐습니다. 교황은 수술을 권했지만 베니테스는 신이 만든 모습 그대로 살겠다며 수술을 취소했다고 말합니다. 전통을 절대적으로 지켜 온 교회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교황을 맞이하게 된 셈입니다. 로런스는 충격을 받지만 끝내 이 비밀을 세상에 밝히지 않기로 합니다. 영화는 로런스가 창문을 열고 안뜰에서 웃으며 걸어가는 젊은 수녀들을 바라보는 장면으로 끝납니다. 확신만을 좇던 교회에 불확실함과 새로운 가능성이 스며드는 순간을 조용히 보여 주는 결말입니다.

영화가 그려 낸 실제와 허구 사이

콘클라베는 실제 교황 선출 과정을 상당히 꼼꼼하게 재현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80세 미만 추기경만 투표권을 갖고 3분의 2 이상의 표를 얻어야 교황이 되며 투표용지를 태워 연기로 결과를 알리는 절차는 실제와 같습니다. 추기경들의 의상과 성당 안의 의식 역시 전문가들로부터 세밀하게 고증했다는 칭찬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영화의 핵심 장치는 허구입니다. 가장 큰 차이는 베니테스입니다. 실제 교회법에서는 교황이 비밀리에 임명한 추기경이라도 교황이 살아 있는 동안 이름을 공개하지 않으면 그 자격이 사라지기 때문에 콘클라베에 참석할 수 없습니다. 바티칸 전문가들도 이 부분을 영화의 가장 큰 오류로 꼽았습니다. 로런스가 콘클라베 도중 외부 사람에게 정보를 전해 듣는 장면 역시 외부와의 접촉을 엄격히 금지하는 실제 규칙에 어긋납니다. 추기경들이 대놓고 선거 운동을 벌이는 모습도 실제보다는 영화적으로 과장된 면이 있습니다. 선종한 교황의 어부의 반지를 처리하는 장면도 실제로는 정해진 의식에 따라 공식적으로 파기되는데 영화에서는 간단하게 처리됩니다.

2025년 4월 21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종하자 콘클라베의 스트리밍 시청량은 하루 만에 280퍼센트 넘게 치솟았습니다. 사람들이 실제 콘클라베를 이해하기 위해 이 영화를 교과서처럼 찾아본 것입니다. 5월 7일 시작된 실제 콘클라베는 이틀 만에 흰 연기를 올렸고 미국 출신 최초의 교황이 탄생했습니다. 흥미롭게도 2025년 5월 실제 콘클라베에서 선출된 레오 14세 교황은 콘클라베 직전 이 영화를 봤다고 그의 형이 인터뷰에서 밝히기도 했습니다.

랄프 파인즈와 스탠리 투치 존 리스고의 연기

로런스 역의 랄프 파인즈는 이 영화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습니다. 신앙에 대한 의심과 책임감 사이에서 흔들리는 인물을 과장 없이 절제된 표정과 목소리로 표현합니다. 거의 모든 장면에 등장하며 영화 전체를 이끄는 그의 존재감은 압도적입니다. 다만 인물의 감정이 대부분 안으로 눌려 있어 극적인 폭발을 기대하는 관객에게는 다소 밋밋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벨리니 역의 스탠리 투치는 이상을 말하지만 사실은 교황 자리를 두려워하는 인물의 이중적인 모습을 인간적으로 그려 냅니다. 트랑블레 역의 존 리스고는 부드러운 미소 뒤에 야심을 감춘 정치가의 얼굴을 능숙하게 보여 줍니다. 짧은 분량에도 강한 인상을 남긴 아녜스 수녀 역의 이자벨라 로셀리니 역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랐습니다. 베니테스 역의 카를로스 디에스는 신인에 가까운 배우지만 고요한 눈빛과 차분한 연설 장면으로 영화의 마지막 반전에 설득력을 더합니다.

긴장감은 최고지만 호불호가 갈리는 이유

콘클라베의 가장 큰 장점은 대화만으로 끝까지 긴장을 놓지 못하게 만드는 연출입니다. 화려한 미술과 촬영 그리고 묵직한 음악이 어우러져 닫힌 공간의 숨 막히는 분위기를 완벽하게 만들어 냅니다. 배우들의 앙상블 연기도 흠잡을 곳이 거의 없습니다.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추기경들의 권력 다툼이 다소 뻔한 정치 드라마의 공식을 따라가고 폭탄 테러 같은 사건은 이야기를 움직이기 위한 장치처럼 느껴집니다. 마지막 반전은 영화의 주제를 강렬하게 전달하지만 가톨릭 신자를 비롯한 일부 관객에게는 지나치게 도발적이고 급작스럽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느린 호흡도 취향을 탈 수 있습니다. 그래도 교회라는 거대한 제도 안에서 확신과 의심 사이를 오가는 인간을 이렇게 우아하게 그려 낸 영화는 흔하지 않습니다. 실제 콘클라베를 지켜본 뒤 다시 보면 더 많은 것이 보이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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