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리언 로물루스 (Alien Romulus) 케일리 스패니가 리플리 없이도 시리즈를 살린 방법, 시고니 위버를 흉내 내지 않고 만든 새로운 생존자

1979년 노스트로모호에서 시작된 에이리언 시리즈에는 늘 한 사람의 이름이 따라다녔습니다. 엘렌 리플리입니다. 시고니 위버가 만든 이 이름은 반세기 가까이 시리즈의 얼굴이었고 리플리 없는 에이리언은 상상하기 어려웠습니다.

에이리언 로물루스 (Alien Romulus)는 바로 그 리플리 없이 돌아온 영화였습니다. 그 빈자리를 채운 배우는 당시 20대 중반이던 케일리 스패니였습니다. 위버의 그림자는 너무 크고 관객의 기대는 너무 높았지만 이 영화는 뜻밖에도 시리즈를 다시 뛰게 만들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케일리 스패니가 리플리 없이 시리즈를 살린 방식을 그녀의 인터뷰와 영화 속 선택 그리고 솔직한 아쉬움까지 함께 풀어 보겠습니다.

커버넌트 이후 7년 만에 돌아온 시리즈에는 리플리 없는 주인공이라는 숙제가 있었습니다

에이리언 로물루스는 에이리언 커버넌트 이후 7년 만에 나온 시리즈의 일곱 번째 본편입니다. 앞서 나온 프로메테우스와 커버넌트는 인류와 생명의 기원 같은 철학적 이야기에 무게를 뒀고 그만큼 호불호가 크게 갈렸습니다. 로물루스는 그 부담을 안고 출발했습니다.

연출과 공동 각본은 페데 알바레즈 감독이 맡았고 리들리 스콧이 제작에 참여했습니다. 제작비는 촬영 4000만 달러에 후반 작업 4000만 달러를 더한 수준으로 커버넌트의 9700만 달러보다 적었습니다. 큰 돈을 쓰기보다 원점의 공포로 돌아가는 방향으로 읽히는 선택이었습니다.

가장 큰 숙제는 주인공이었습니다. 이 영화는 1편과 2편 사이를 배경으로 해서 리플리가 직접 등장하지 않습니다. 관객은 낯선 얼굴의 생존자를 새 주인공으로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케일리 스패니는 리플리를 몇 달 동안 보고도 리플리가 되려 하지 않았습니다

스패니는 토탈 필름 인터뷰에서 위버의 연기를 몇 달 동안 반복해서 봤다고 밝혔습니다. 뭔가 스며들기를 바랐다는 이유였습니다. 그러면서도 위압감은 느끼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리플리는 원래 여성을 염두에 두고 쓰인 역할이 아니어서 자유가 있었고 위버가 자신을 온전히 쏟아부은 덕에 이후 여성 주인공이 부담을 덜 느끼게 되었다는 설명입니다.

동시에 자신이 위버가 될 수는 없다는 사실도 인정했습니다. 대신 자기 인물을 최대한 매력적으로 만드는 데 집중했습니다. 또 다른 인터뷰에서는 리플리가 처음에는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사람이었다가 생존이 곧 삶이 되어 가는 점에 끌렸다고 말했습니다. 누구도 영웅이 될 것이라 기대하지 않았던 사람이라는 점이 핵심이었습니다.

스패니는 레인에게 1편 특유의 블루칼라 느낌을 입히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자신이 자란 미국 중서부 사람의 결을 우주에 옮기고 싶었다는 것입니다. 또 알바레즈 감독과 각본 단계부터 레인이 어떤 선택을 할지 함께 정했다고 합니다. 리플리를 흉내 내는 대신 레인이라는 사람의 이유를 만드는 방식으로 접근한 셈입니다.

노동 계약에 묶인 레인은 어떤 선택으로 버려진 우주 정거장에 오르게 되었을까요

배경은 2142년 웨이랜드 유타니가 운영하는 광산 식민지입니다. 고아로 자란 레인 카라딘은 노동 계약 시간을 다 채워 이주를 신청하자마자 계약이 늘어나는 상황과 마주합니다. 더 나은 삶을 향한 문이 눈앞에서 닫히는 순간입니다.

레인은 고장 난 안드로이드 양동생 앤디 그리고 전 남자친구 타일러와 임신한 그의 여동생 케이 사촌 비욘 나바로와 함께 탈출을 결심합니다. 목표는 버려진 우주 정거장 르네상스에서 극저온 장비를 훔쳐 웨이랜드 유타니와 무관한 행성 이바가 3으로 떠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앤디가 정거장에 접속해 보니 이바가 3은 안드로이드의 입국을 허용하지 않는 곳이었습니다. 여기에 타일러와 비욘이 극저온 연료를 구하다 실수로 봉쇄를 시작하면서 수십 마리의 페이스허거가 풀려납니다. 이제 이들은 떠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싸워야 합니다.

스포일러 주의 결말에서 레인은 앤디와 함께 마지막 생존자가 되었습니다

여기부터는 영화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직 영화를 보지 않으셨다면 관람 후에 읽으시길 권합니다.

정거장에서 레인은 1편의 애쉬와 같은 계열의 합성 인간 룩을 재부팅합니다. 이 룩은 배우 이안 홈의 얼굴과 목소리를 인공지능과 컴퓨터 그래픽으로 재현한 인물입니다. 룩은 에이리언을 완벽한 유기체라 부르며 회사의 지시를 따릅니다. 룩의 모듈이 연결된 앤디는 유감이지만 새 지시를 받았다며 회사를 위한 최선의 행동을 하겠다고 차갑게 돌변합니다.

일행은 연구실에서 얻은 검은 액체 물질을 케이에게 투여하고 케이는 급속히 회복됩니다. 그러는 동안 페이스허거와 에이리언 떼의 공격이 이어지면서 일행은 하나둘 목숨을 잃습니다. 레인과 앤디는 가까스로 코벨란호에 오르고 룩의 모듈이 빠진 앤디는 회사에 복종할 이유를 잃고 레인에게 조종석을 내줍니다. 레인은 자동항해를 끄고 목적지를 이바가로 바꿉니다.

하지만 진짜 위기는 그다음이었습니다. 검은 액체 물질은 케이의 뱃속 아기를 엔지니어를 닮은 거대한 존재로 바꿔 놓았고 케이의 몸에서 태어난 오프스프링이 마지막 장애물로 등장합니다. 엔진이 꺼진 코벨란호는 행성 고리를 향해 추락하기 시작합니다. 우주복을 입은 레인은 오프스프링과 맞서고 화물칸의 잠금장치가 모두 풀리면서 화물칸이 우주선에서 떨어져 나갑니다. 오프스프링은 화물칸과 함께 행성 고리에 떨어져 부서집니다.

간신히 살아남은 레인은 케이블을 붙잡고 코벨란호로 돌아와 자동항해로 추락 직전의 우주선을 구해 냅니다. 그리고 작동이 멈춘 앤디를 냉동수면 포드에 눕히며 꼭 고쳐 주겠다고 다짐한 뒤 자신도 포드에 들어가 긴 잠에 듭니다. 살아남은 사람은 레인과 앤디 둘뿐이었습니다.

리플리를 지우지 않고 빌려 쓰면서도 레인만의 결을 남긴 방식이 통했습니다

영화는 리플리를 지우려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곳곳에서 1편을 불러옵니다. 레인이 입는 우주복은 1편 마지막 장면에서 리플리가 입었던 것과 비슷한 형태이고 오프스프링의 최후는 4편의 결말 장면과 닮았습니다. 룩은 1편 애쉬가 했던 대사를 그대로 입에 올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레인은 리플리의 복제품이 아니었습니다. 콜라이더는 레인이 리플리와 비슷한 성장과 결말을 갖지만 경험과 동기가 다르고 더 연약하며 감정 표현이 풍부한 인물로 의도적으로 설계되었다고 분석했습니다. 단독 영화라 생존시킬 의무도 없었는데 살아남았다는 점도 짚었습니다.

무엇보다 레인의 생존은 혼자만의 승리가 아니었습니다. 1편의 리플리가 홀로 남은 생존자였다면 레인은 고장 난 앤디를 고쳐 주겠다는 약속으로 끝을 맺습니다. 회사의 시스템에서 벗어나 서로를 지키려는 두 사람의 관계가 이 영화의 정서적 중심이었고 저는 이것이 리플리와의 가장 큰 차이라고 봅니다.

케일리 스패니와 데이비드 존슨의 연기는 어땠을까요

케일리 스패니는 할리우드 리포터로부터 취약하고 감정에 크게 좌우되면서도 기술에 밝고 판단이 빠르며 생존 본능이 강한 매력적인 주연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시빌 워와 프리실라로 이미 존재감을 보였던 그가 공포와 액션을 모두 소화한 점이 돋보입니다. 한 평론은 스패니의 얼굴과 몸짓에서 위버의 리플리는 물론 프로메테우스 누미 라파스의 쇼까지 비친다고 했습니다.

데이비드 존슨은 앤디를 연기하며 영화의 감정선을 끌어올렸습니다. 순하고 다정하던 앤디가 새 지시를 받고 차갑게 돌아서는 장면과 다시 레인 곁으로 돌아오는 장면은 배우의 연기 폭을 보여 줬습니다. 20세기 스튜디오 임원 스티브 애스벨은 후속작을 언급하며 레인과 앤디가 영화의 진짜 하이라이트였다고 말했습니다. 로튼토마토의 한 평론도 두 배우가 승리하는 주연 조합이라고 평했습니다.

다만 아쉬움도 있습니다. 일부 관객은 레인의 등장이 또 다른 리플리를 보는 듯 새롭지 않다고 지적했고 실제로 앤디가 가장 흥미로운 인물이라는 반응도 나왔습니다. 스패니의 연기가 부족했다기보다 인물의 서사가 익숙한 틀 안에 머문 탓에 더 특별한 인상이 남지 못했다는 평가입니다.

리플리의 그림자를 완전히 지우진 못했어도 시리즈를 다시 뛰게 만든 데뷔전이었습니다

장점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영화는 철학적 서사를 덜어 내고 폐쇄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생존 공포로 돌아왔습니다. 알바레즈 감독은 2편의 특수효과 팀을 찾아 크리처를 만들었고 오프스프링도 CG 꼬리를 제외하면 대부분 키 큰 배우의 분장으로 구현했습니다. 실물 효과가 만든 질감은 이 영화의 가장 큰 무기였습니다.

단점도 분명합니다. 이안 홈을 재현한 룩은 가장 논란이 큰 요소로 꼽혔고 컴퓨터 그래픽이 어색하다는 반응도 있었습니다. 과거 작품을 불러오는 장면이 지나치게 많아 새로움보다 향수에 기댔다는 비판도 이어졌습니다. 마지막 오프스프링 대결이 프로메테우스와 4편의 장면을 연상시킨다는 시각도 있었습니다.

성적표는 좋았습니다. 로물루스는 전 세계에서 3억 5090만 달러를 벌어들였습니다. 북미 개봉 첫 주말 4200만 달러로 주말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고 국내에서도 개봉 3주 차에 163만 명을 넘겨 커버넌트의 130만 명을 뛰어넘는 시리즈 최고 흥행 기록을 세웠습니다. 일부 평론은 2편 이후 가장 좋은 에이리언이라고까지 평했습니다.

물론 시리즈를 살린 것은 스패니 혼자의 힘이 아니라 감독의 공포 회귀와 앤디 역의 데이비드 존슨 그리고 작은 예산의 전략이 함께 만든 결과였습니다. 그래도 그 중심에 서서 리플리를 흉내 내지 않고 자기 방식으로 살아남은 사람은 케일리 스패니였습니다. 새 생존자를 기다리게 만들었다는 점만으로도 이 데뷔전은 충분히 성공적이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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