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에서 각성까지, 스파이더맨과 아이언맨이 걸어온 두 갈래의 성장 서사


두 히어로, 같은 질문 다른 답

MCU를 관통하는 가장 오래된 질문은 아마 이것일 겁니다. 힘을 가진 사람은 그 힘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가. 토니 스타크와 피터 파커는 이 질문에 전혀 다른 방식으로 답해온 두 캐릭터입니다. 한 사람은 오만과 방종에서 출발해 희생으로 완성되었고, 다른 한 사람은 결핍과 고립에서 출발해 여전히 답을 찾아가는 중입니다. 브랜드 뉴 데이까지 이어진 피터의 여정을 보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토니의 궤적이 떠오릅니다. 두 사람의 성장 곡선을 나란히 놓고 보면 MCU가 영웅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다르게 다뤄왔는지가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토니 스타크, 넘치는 것을 비워내는 이야기

토니의 출발점은 결핍이 아니라 과잉이었습니다. 아이언맨 1편의 토니는 재능과 재력을 흥청망청 낭비하는 인물로 그려집니다. 무기를 팔아 돈을 벌면서도 그 무기가 누구를 향하는지는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나무위키의 평가에서도 지적하듯이 토니는 주인공 토니의 개인적인 여정과 히어로로서 정체성 확립이 시리즈 전체의 테마이며 각 작품마다 작품성에 대한 평가는 갈릴지언정 토니의 속죄와 영웅으로서의 각성 방황 수트가 아닌 토니 자신이 영웅이라는 정체성 확립으로 이어지는 성장 서사를 충실히 따라가는 캐릭터로 평가받습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겪은 납치와 부상은 그에게 처음으로 자신의 무기가 어떤 참혹한 결과를 낳는지 직시하게 만든 사건이었고 이는 그를 죄책감과 속죄라는 감정으로 밀어 넣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토니의 성장이 능력의 획득이 아니라 오히려 자아의 축소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초기의 그는 슈트라는 갑옷 뒤에 숨어 자신을 과시했다면 시빌 워와 인피니티 워를 거치며 점점 더 자신의 한계와 두려움을 인정하는 인물로 변해갑니다. 특히 아이언맨 3에서 그가 슈트 없이도 위기를 헤쳐나가는 장면은 그가 더 이상 갑옷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영웅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여정의 최종 지점은 엔드게임에서의 희생입니다. 한때 자신만을 위해 살던 사람이 결국 모두를 위해 스스로를 내어주는 것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했다는 점에서 토니의 성장은 명확한 방향성을 가진 완결된 서사였습니다.

피터 파커, 비어 있던 곳에 무언가 채워 넣는 이야기

반면 피터의 궤적은 정반대의 방향을 그립니다. 그는 애초부터 결핍에서 시작한 캐릭터입니다. 부모를 잃고 벤 삼촌마저 떠나보낸 소년에게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교훈은 축복이 아니라 짐에 가까웠습니다. 홈커밍에서의 피터가 순수한 동경과 서투름으로 그려졌다면 노 웨이 홈에 이르러서는 그 순수함의 대가를 뼈저리게 치르게 됩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자신이 완전히 지워지는 결말은 토니가 마지막에 얻은 것과 정반대로 피터에게서 모든 것을 앗아가는 방식이었습니다.

브랜드 뉴 데이의 피터는 바로 그 상실 위에 서 있는 인물입니다. 사년간 인간관계를 완전히 끊고 오직 스파이더맨으로서만 존재하려 했던 그의 모습은 토니가 갑옷 뒤에 숨었던 것과는 다른 종류의 고립입니다. 토니는 세상에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 슈트를 입었지만 피터는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지우기 위해 마스크를 썼습니다. 이 차이는 결정적입니다. 토니의 문제가 넘치는 자아를 다스리는 것이었다면 피터의 문제는 텅 빈 자리를 무엇으로도 채우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결핍은 브랜드 뉴 데이에서 물리적인 폭주로까지 이어집니다. 고독과 억압된 감정이 쌓여 거미 유전자가 통제 불능 상태로 폭주하는 설정은 상징적입니다. 감정을 억누른 채 살아가던 피터의 내면이 결국 몸을 통해 터져 나온 것이니까요. 브루스 배너가 그에게 좋고 나쁜 것을 대체 무엇으로 정할 것이냐고 되묻는 장면은 이 영화가 던지는 핵심 질문이기도 합니다. 힘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그 힘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 이것이 피터가 마주한 새로운 과제였습니다.

완결과 진행형이라는 결정적 차이

두 캐릭터를 비교할 때 가장 크게 갈리는 지점은 여기입니다. 토니의 서사는 죽음으로 완결되었지만 피터의 서사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라는 점입니다. 완결된 이야기는 명확한 메시지를 남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만큼 더 이상의 변주가 불가능하다는 한계도 갖습니다. 토니의 희생은 감동적이지만 그 이후 그가 어떤 인물로 더 성장할 수 있었을지는 영원히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반면 피터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인물이기에 계속해서 실패하고 무너지고 다시 일어서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브랜드 뉴 데이의 결말에서 피터는 억제기를 스스로 떼어내며 자신의 힘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선택을 합니다. 이는 토니처럼 극적인 죽음을 통한 완결이 아니라 계속 살아가기 위한 결단이라는 점에서 다른 종류의 성숙입니다. 진에게 감싸 안겨 총상을 입고도 살아남아 네드와의 우정을 회복하려는 결말은 피터가 이제야 겨우 사람들 곁으로 돌아갈 준비가 되었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토니가 세상을 구하고 떠났다면 피터는 이제서야 자신을 구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한 셈입니다.

두 성장 서사가 우리에게 남기는 것

토니 스타크와 피터 파커의 이야기를 나란히 놓고 보면 결국 MCU가 그리고자 했던 영웅상은 하나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토니는 넘치는 자아를 비워 타인을 위한 희생으로 완성되는 영웅이었고 피터는 텅 빈 자리를 서서히 채워가며 곁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영웅입니다. 두 사람 모두 큰 힘과 큰 책임이라는 같은 명제 앞에 섰지만 그 답을 찾아가는 방식은 이토록 달랐습니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이 두 캐릭터가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이유일지도 모릅니다. 완벽한 영웅의 모습이 하나로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 그리고 각자의 결핍과 상처를 안은 채로도 계속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이 두 사람의 서로 다른 궤적이 보여주고 있으니까요. 토니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희생의 의미를 가르쳐주었다면 피터의 이야기는 아직도 우리에게 회복이란 무엇인가를 계속해서 묻고 있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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