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미러 USS 칼리스터 (Black Mirror: USS Callister), 현실의 패배자가 만든 잔혹한 우주 함대

 


현실의 억압이 가상 세계의 폭군을 만들 때

누구나 한 번쯤 현실에서 벗어나 자신이 주인공이 되는 세상을 꿈꿉니다. 만약 내가 만든 세계에서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는 전지전능한 존재가 된다면 어떨까요. 고전 SF 드라마 '스페이스 플릿'의 광적인 팬이자 천재 프로그래머인 로버트 데일리. 그는 자신이 공동 창업한 회사 '칼리스터'에서 최고 기술 책임자(CTO)라는 직함이 무색하게 동업자와 동료들에게 늘 무시당하며 살아갑니다. 이처럼 현실에서 억눌린 그의 욕망은 그가 비밀리에 구축한 가상현실 게임 속에서 가장 끔찍한 형태로 폭발합니다. 블랙미러 시즌4의 첫 번째 에피소드 'USS 칼리스터'는 이처럼 현실의 패배자가 가상 세계의 폭군이 되어 벌이는 잔혹한 이야기입니다. 이 에피소드는 단순한 SF 오락물을 넘어 디지털 시대의 권력과 통제 그리고 '디지털 복제본'의 인권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우리에게 던집니다.

완벽한 함대 칼리스터호의 불편한 진실

로버트 데일리는 현실에서는 그 누구에게도 주목받지 못합니다. 그는 자신이 만든 게임 '인피니티'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공동 창업자인 월튼에게 늘 휘둘리고 부하 직원들에게는 조롱거리 취급을 받습니다. 그는 자신을 무시하거나 불쾌하게 만든 동료들의 DNA를 몰래 수집합니다. 그들이 마신 커피 컵이나 버린 사탕 막대에서 채취한 DNA입니다. 그리고 그는 이 DNA를 이용해 자신만의 오프라인 모드로 개조한 '스페이스 플릿' 게임 안에 그들의 의식을 가진 완벽한 디지털 복제본을 만들어 가둡니다. 이 가상 세계에서 데일리는 '캡틴 데일리'입니다. 그는 USS 칼리스터호의 용감하고 현명한 함장이며 동료들의 디지털 복제본은 그의 충성스러운 승무원입니다. 하지만 이들의 충성심은 존경이 아닌 공포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만약 누군가 데일리의 심기를 거스르거나 반항하려 하면 그는 상상할 수 없는 끔찍한 형벌을 내립니다. 그는 승무원의 얼굴을 없애 숨을 쉬지 못하게 하거나 끔찍한 괴물로 변형시켜 우주 공간에 방치하는 등 절대적인 권력을 휘두릅니다. 이 디지털 복제본들은 모든 고통을 느끼지만 죽을 수도 없는 영원한 지옥에 갇힌 것입니다. 그들은 데일리가 게임에 접속할 때마다 완벽한 연기를 강요당하며 그의 비위를 맞추는 노예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새로운 희생자 그리고 시작된 반란

그러던 어느 날 회사에 '나네트 콜'이라는 새로운 프로그래머가 입사합니다. 그녀는 데일리의 천재적인 코딩 실력을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데일리는 자신을 알아봐 주는 나네트에게 잠시 설렘을 느낍니다. 하지만 그 설렘도 잠시 나네트가 다른 동료들과 어울리며 자신을 뒷담화하는 듯한 모습을 목격하자 그는 깊은 배신감을 느낍니다. 결국 데일리는 나네트가 마신 커피 컵을 훔쳐 그녀의 DNA로 디지털 복제본을 만듭니다. 가상 세계의 칼리스터호에서 깨어난 나네트는 처음에는 상황을 파악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곧 이곳이 데일리가 만든 잔혹한 디지털 감옥이라는 것을 깨닫고 다른 승무원들처럼 절망에 빠집니다. 데일리는 나네트의 반항심을 꺾기 위해 그녀가 가장 무서워하는 방식으로 고문하고 그녀를 굴복시킵니다. 하지만 나네트는 다른 승무원들과 달랐습니다.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탈출할 방법을 찾기 시작합니다. 그녀는 이 게임이 데일리의 개인 서버에서 오프라인으로 구동되지만 최근 회사의 크리스마스 업데이트 패치를 적용하면서 외부 클라우드 서버로 통하는 '웜홀'이 잠시 생성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만약 칼리스터호가 이 웜홀을 통과한다면 그들은 데일리의 통제에서 벗어나 인피니티 게임의 메인 클라우드로 탈출할 수 있습니다.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탈출 작전

탈출 계획은 간단하지 않았습니다. 웜홀은 데일리가 접속해 있을 때만 나타나며 그가 로그아웃하면 사라집니다. 그들은 데일리가 함선을 조종하지 못하게 막고 동시에 현실 세계에서 그의 방해 공작을 막아야 했습니다. 나네트 복제본은 기발한 계획을 세웁니다. 바로 '현실의 나네트'를 이용하는 것입니다. 그녀는 먼저 게임 속에서 현실 세계의 인터넷에 접속할 방법을 찾아냅니다. 그리고 현실의 나네트 계정을 해킹해 그녀의 외설적인 사진들을 찾아냅니다. 나네트 복제본은 이 사진들을 현실의 나네트에게 전송하며 자신들을 돕지 않으면 사진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합니다. 얼떨결에 협박범이 된 현실의 나네트는 처음에는 당황하지만 곧 디지털 복제본의 절박한 상황을 이해하고 그들을 돕기로 결심합니다. 탈출 작전이 실행되는 날 데일리가 게임에 접속하자마자 현실의 나네트는 피자 배달을 시켜 데일리가 게임을 잠시 중단하고 현관으로 나가게 만듭니다. 그사이 칼리스터호의 승무원들은 데일리의 음성 명령 장치를 훔쳐 달아나기 시작합니다.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데일리는 분노하며 예비 조종 장치로 칼리스터호를 추격합니다. 웜홀을 향한 숨 막히는 우주 추격전이 벌어지고 그 과정에서 데일리의 편에 섰던 월튼의 디지털 복제본은 자신의 과오를 뉘우치며 다른 승무원들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 희생합니다.

광기와 절망을 연기한 두 주역 제시 플레먼스와 크리스틴 밀리오티

블랙미러 USS 칼리스터가 이토록 강렬한 인상을 남긴 데는 두 주연 배우의 공이 큽니다. 로버트 데일리 역을 맡은 제시 플레먼스는 이중적인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했습니다. 그는 현실에서는 어깨를 움츠리고 사람들의 눈을 피하며 말까지 더듬는 소심한 모습을 보여주다가도 가상 세계에서는 눈빛부터 달라지는 오만하고 잔인한 폭군의 모습을 소름 돋게 연기했습니다. 특히 그의 분노가 폭발할 때 드러나는 광기는 시청자들에게 깊은 불쾌감과 공포를 동시에 선사했습니다. 나네트 콜 역을 맡은 크리스틴 밀리오티 역시 이 에피소드의 또 다른 축을 훌륭하게 담당했습니다. 그녀는 처음 디지털 세계에 떨어졌을 때의 혼란과 절망 그리고 곧바로 상황을 파악하고 반란을 주도하는 강인하고 주체적인 여성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그려냈습니다. 그녀의 당찬 매력과 절박한 연기는 자칫 일방적인 학대극으로 흐를 수 있었던 이야기에 팽팽한 긴장감과 희망을 불어넣었습니다.

(스포일러 주의) 캡틴 데일리의 비참한 최후와 새로운 우주

이 부분부터는 USS 칼리스터의 충격적인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내용을 원치 않으시면 이 부분을 건너뛰어 주시기 바랍니다. 치열한 추격전 끝에 USS 칼리스터호는 웜홀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직전입니다. 데일리는 마지막 발악으로 함선을 파괴하려 하지만 웜홀은 그가 설정한 '부모 동의' 모드 때문에 미성년자인 월튼의 아들 복제본이 탑승한 함선을 파괴하지 못합니다. 결국 칼리스터호는 웜홀을 통과해 데일리의 통제에서 벗어나는 데 성공합니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방대하고 아름다운 '인피니티' 게임의 온라인 우주였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데일리의 노예가 아닌 자유로운 존재가 되었으며 심지어 다른 온라인 유저들과 소통할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반면 데일리는 최악의 결말을 맞이합니다. 그가 불법으로 개조한 오프라인 모드는 크리스마스 패치와 충돌하며 시스템 전체를 삭제하기 시작했습니다. 현실의 데일리는 게임에서 로그아웃할 수 없는 상태로 자신의 콘솔 앞에 갇혀버립니다. 그는 의식은 깨어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식물인간' 상태가 되어 자신의 가상 세계가 붕괴하는 것을 지켜보며 영원한 어둠 속에 갇히게 됩니다. 그의 방에는 "방해하지 마시오"라는 팻말이 걸려 있어 크리스마스 연휴 내내 아무도 그를 발견하지 못할 것입니다.

고전 SF에 대한 오마주 속에 숨겨진 날카로운 비판

블랙미러 'USS 칼리스터'는 '스타 트렉'과 같은 고전 SF에 대한 완벽한 오마주이자 동시에 그것을 비트는 가장 신랄한 풍자입니다. 이 에피소드는 겉으로는 화려한 우주 활극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 속에는 현실의 좌절감을 약자에게 폭력으로 해소하는 비겁한 개인과 '디지털 인격'이라는 새로운 윤리적 문제를 날카롭게 담아냈습니다. 물론 현실의 나네트가 너무 쉽게 협박에 응하는 등 일부 전개가 다소 편리하게 흘러간다는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러한 단점에도 불구하고 'USS 칼리스터'는 블랙미러 시리즈가 왜 현시대 최고의 문제작인지를 증명하는 압도적인 재미와 깊이를 동시에 갖춘 걸작 에피소드입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질문합니다. 만약 당신에게 신과 같은 권력이 주어진다면 당신은 과연 자비로운 창조주가 될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로버트 데일리가 될 것인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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