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킬러스 (The Killers), 장항준 감독의 세그먼트3 '모두가 그를 기다린다' 리뷰

 


1979년 10월 26일 밤: 수선화 문신을 쫓는 사내들의 밀실

옴니버스 영화 더 킬러스 (The Killers)의 세 번째 세그먼트인 장항준 감독의 '모두가 그를 기다린다'는 앞선 두 세그먼트와는 또 다른 독특한 시공간적 배경을 제시합니다. 장항준 감독은 예능과 영화를 오가며 보여준 유쾌한 입담과는 달리, 이 작품에서 서늘하고 긴장감 넘치는 정통 느와르 스릴러를 선보입니다. 특히 이 단편은 한국 현대사의 격변기인 1979년 10월 26일 밤이라는 구체적인 시점을 배경으로 설정하여, 시대적 불안감과 밀실의 서스펜스를 결합시키는 영리한 연출을 보여줍니다. 이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킬러들의 이야기는 단순히 살인마를 쫓는 것을 넘어, 시대적 혼란 속에서 각자의 욕망과 두려움에 휩싸인 인간 군상을 포착합니다.

'모두가 그를 기다린다'는 왼쪽 어깨에 수선화 문신이 있다는 단 하나의 정보만을 가지고 전설적인 살인마 '염상구'를 기다리는 사내들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이들은 군산의 한적한 어촌 마을에 위치한 선술집에 모여듭니다. 선술집의 매혹적인 주인 '유화'(오연아)가 운영하는 이 공간은 외부의 혼란스러운 시대 상황과는 단절된 듯한 묘한 긴장감과 관능적인 분위기를 풍깁니다. 이 작은 선술집은 곧 킬러들과 그를 쫓는 자들, 그리고 알 수 없는 목적으로 모인 이들이 숨 막히게 대치하는 밀실이 됩니다. 모두가 염상구를 기다리지만, 정작 염상구가 누구인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아이러니는 이 세그먼트의 서스펜스를 최고조로 끌어올립니다.

염상구라는 유령과 선술집의 사내들

이 선술집에 모인 사내들은 각자의 이유로 염상구라는 전설의 킬러를 기다립니다. 그들은 염상구를 잡으려는 자이거나 혹은 염상구에게 제거될지도 모르는 자들입니다. 왼쪽 어깨의 수선화 문신이라는 단 하나의 단서만이 그들의 공통된 목표를 향한 유일한 지표입니다. 장항준 감독은 이 제한된 단서와 한정된 공간을 활용하여 극도의 심리적 서스펜스를 조성합니다. 모여든 사내들은 서로를 의심하고 경계합니다. 누가 염상구인지 누가 그를 잡으려는 사람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선술집 안의 모든 움직임과 시선 하나하나가 긴장감을 폭발시킵니다.

시대적 배경 또한 이 단편의 서스펜스를 더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라디오에서는 삽교천 방조제 준공 소식이 흘러나오지만, 그 이면에는 1979년 10월 26일이라는 역사적인 사건이 임박해 있다는 것을 관객은 알고 있습니다. 이 시대적 불안감은 선술집 안의 팽팽한 긴장감과 절묘하게 맞물립니다. 곧 터질 듯한 외부의 혼란과 밀실 속에서 벌어질 살인극에 대한 예측은 관객을 옴짝달싹할 수 없게 만듭니다. 사내들은 염상구라는 정체불명의 유령을 쫓으면서도, 사실은 자신들의 두려움과 욕망이 만들어낸 허상을 기다리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장항준 감독은 유머 대신 묵직한 느와르의 정서와 예측 불가능한 반전을 통해 관객에게 강렬한 장르적 쾌감을 선사하려 합니다.

오연아 장현성 등 베테랑 배우들의 앙상블

'모두가 그를 기다린다'는 베테랑 배우들의 관록 있는 연기가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매혹적인 선술집 주인 '유화' 역을 맡은 오연아(Oh Yeon-a)는 등장만으로도 시선을 압도합니다. 그녀는 모여든 사내들을 관찰하고 때로는 능숙하게 조종하는 듯한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풍기며, 이 밀실의 서스펜스를 한층 끌어올립니다. 유화는 이 살인극의 관찰자인 동시에 가장 핵심적인 열쇠를 쥐고 있는 인물처럼 느껴집니다.

이 좁은 공간에서 염상구를 기다리는 사내들 역의 배우들 역시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합니다. 장현성(Jang Hyun-sung)을 비롯한 배우들은 각기 다른 개성과 목적을 가진 킬러 혹은 추격자들의 모습을 관록 있게 연기하며, 서로를 속이고 의심하는 인간의 본능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이 단편은 심은경이 다른 세그먼트처럼 주요 역할을 맡지는 않지만, 잡지 모델 등의 역할로 간접적으로 등장하며 옴니버스 영화 전체의 연결고리 역할을 수행합니다. 베테랑 배우들이 펼치는 심리전과 후반부에 예상되는 수위 높은 액션 시퀀스는 이 세그먼트의 몰입도를 높이는 핵심 요소입니다. 장항준 감독은 배우들의 연기를 통해 1979년이라는 시대의 쇠락하고 불안한 정서까지 담아내려 노력했습니다.

시대적 느와르의 실험 묵직함과 반전의 미학

더 킬러스 '모두가 그를 기다린다'는 장항준 감독이 시도한 영리하고도 묵직한 느와르의 실험입니다. 이 영화는 세그먼트 1의 정적임과 세그먼트 2의 코미디 요소를 배제하고, 오직 서스펜스와 긴장감 그리고 액션이라는 장르적 쾌감에 집중합니다. 1979년이라는 구체적인 시대 배경과 밀실이라는 한정된 공간, 그리고 수선화 문신이라는 하나의 단서만이 주어졌다는 설정은 관객에게 퍼즐을 푸는 듯한 재미와 함께 묵직한 서스펜스를 제공합니다.

이 단편의 가장 큰 장점은 장항준 감독 특유의 예측 불가능한 스토리텔링입니다. 모두가 염상구라는 유령을 기다리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해와 의심, 그리고 후반부에 터져 나오는 액션 시퀀스는 관객의 눈을 뗄 수 없게 만듭니다. 또한 장항준 감독은 극적인 순간에 유머나 코미디 요소를 자제하고, 시대적 서늘함을 배경으로 한 정통 느와르의 분위기를 끝까지 유지합니다. 하지만 짧은 러닝타임 안에 염상구라는 전설의 킬러에 대한 서사와 모여든 사내들의 복잡한 관계를 모두 설명하기에는 다소 불친절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또한 시대적 배경이 주는 서스펜스가 일부 관객에게는 접근 장벽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그를 기다린다'는 장항준 감독의 새로운 장르적 도전과 베테랑 배우들의 뛰어난 앙상블이 돋보이는 수작입니다. 한정된 공간에서 폭발하는 인간의 욕망과 공포를 그린 이 단편은 옴니버스 영화 '더 킬러스'의 다채로운 장르 스펙트럼을 완성하는 중요한 축을 담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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