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억 원짜리 의뢰가 3백만 원으로 둔갑한 사연: 킬러 세계의 하청 구조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킬러의 세계는 어둡고 잔혹하며, 거액의 돈과 피의 계약으로 이루어진 밀실의 영역일 것입니다. 하지만 2024년 개봉한 옴니버스 영화 더 킬러스 (The Killers)의 두 번째 세그먼트인 노덕 감독의 '업자들'은 이 모든 환상을 단번에 부수고 지극히 현실적인 '비즈니스'의 영역으로 끌어내립니다. 노덕 감독은 영화 '연애의 온도', 넷플릭스 시리즈 '글리치' 등에서 보여준 통찰력 있는 시선과 세련된 연출 감각을 청부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소재에 결합시킵니다.
'업자들'은 거액의 살인 청부 의뢰가 어떻게 하청에 하청을 거듭하여 본질적인 가치를 잃고 말단에게는 단돈 3백만 원짜리 '잡일'로 전락하는지를 블랙 코미디의 형태로 풀어냅니다. 원청에서 3억 원이라는 막대한 금액이 책정되었던 의뢰가 중간 브로커들을 거치면서 최종적으로 현장 실행을 맡은 '업자'들에게는 쥐꼬리만 한 금액으로 줄어드는 이 과정은, 한국 사회의 불평등한 노동 시장과 하청 구조의 모순을 킬러 세계라는 거울에 비추어 날카롭게 풍자합니다. 이 아이러니한 상황 자체가 이 단편이 선사하는 가장 큰 웃음이자 동시에 가장 씁쓸한 현실 인식입니다. 세 명의 어설픈 청부업자가 엉뚱한 타깃을 납치하면서 벌어지는 일련의 소동은 킬러 영화의 긴장감을 유지하면서도 현실의 부조리함을 풍자하는 코미디적 요소를 가미하여 세그먼트 1의 정적인 심리극과는 완전히 대비되는 유쾌하고 속도감 있는 전개를 선보입니다.
어설픈 3인조 그리고 엉뚱한 타깃: 계획의 붕괴와 인간적인 실수
이야기는 청부 살인업계의 가장 밑바닥에서 생계를 유지하는 세 명의 '업자'들에게 초점을 맞춥니다. 그들은 전문적인 킬러라기보다는, 불안정한 청춘의 초상을 대변하는 듯한 어설프고 인간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들은 푼돈이라도 벌기 위해 꼼꼼한 확인 절차 없이 주어진 정보만을 믿고 타깃 납치에 나섭니다.
권수(홍사빈)를 중심으로 선영(지우) 등 젊은 배우들이 연기하는 이 3인조는 그들의 어설픔 때문에 명백한 실수를 저지릅니다. 그들이 납치한 타깃은 본래 의뢰된 인물이 아닌 심은경이 연기하는 '소민'이라는 엉뚱한 여성이었습니다. 소민은 평범한 기혼자이자 엄마로 소개되지만, 킬러들에게 납치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보이는 태도는 심상치 않습니다. 그녀는 납치된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상황을 관찰하고 킬러들에게 질문을 던지며 오히려 상황을 주도하는 듯한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풍깁니다.
납치에 성공했다고 기뻐했던 3인조는 이내 자신들의 실수를 깨닫고 패닉에 빠집니다. 조직에게 보고해야 하는 압박감, 엉뚱한 인질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르는 당혹감, 그리고 3백만 원마저도 날릴 위기에 처했다는 현실적인 불안감이 이들을 짓누릅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엉뚱하고 코믹한 상황들이 '업자들'의 긴장감을 유발하는 주된 요소입니다. 이들은 살인을 저지르는 냉혹한 킬러가 아니라, 생존을 위해 위험한 노동에 뛰어든 '업자'들일 뿐이며, 그들의 어설픔은 관객에게 씁쓸한 공감과 동시에 폭소까지 안겨줍니다. 킬러들의 실수와 인간적인 면모를 극대화한 이 설정은 노덕 감독이 이 단편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핵심적인 풍자입니다.
청부업계의 현실 풍자: 하청의 굴레와 돈의 가치
노덕 감독의 '업자들'이 기존의 킬러 영화와 차별화되는 지점은 바로 '현실 풍자'입니다. 킬러라는 극단적인 직업마저도 자본주의의 효율성과 하청 구조의 비정함을 피해가지 못한다는 설정은 매우 영리합니다. 3억 원이라는 거액의 의뢰는 '갑'들의 주머니로 들어가고, 가장 위험하고 비인간적인 노동을 수행하는 말단 킬러들에게는 형편없는 금액만이 돌아오는 이 피라미드 구조는 사회의 불공정한 분배 시스템을 날카롭게 비판합니다.
킬러 3인조는 '킬러'로서의 윤리나 목표 대신, 오직 '돈'이라는 현실적인 문제에 매달립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실수를 조직에게 보고하고 처리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손익 계산을 합니다. 엉뚱한 타깃을 납치하는 바람에 발생한 계획의 붕괴는 곧 돈과 생존의 위협으로 직결됩니다. 이들의 우왕좌왕하는 모습은 관객에게 '킬러'라는 무서운 존재가 아니라, 고용 불안에 시달리는 계약직 노동자처럼 느껴지게 만듭니다. 노덕 감독은 이러한 현실적인 설정을 통해 극의 긴장감을 조성하는 동시에, 우리가 사는 세상의 어두운 이면을 유머러스하게 드러냅니다. 킬러 세계의 잔혹함이 아닌, 그 속의 비루한 생계가 강조되는 이 단편은 '업자들'이라는 제목처럼, 그들이 가진 직업의 본질을 새롭게 정의합니다.
홍사빈 지우 심은경, 세대별 배우들의 날카로운 앙상블
'업자들'은 젊은 배우들의 활력 넘치는 연기와 베테랑 배우의 노련함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앙상블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킬러 3인조의 중심인 권수 역의 홍사빈은 불안정하면서도 어떻게든 일을 수습하려는 청년의 복잡한 내면을 설득력 있게 연기합니다. 그는 리더로서의 압박감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에 시달리는 모습을 통해 청춘의 불안을 투영합니다. 지우는 상황 속에서 나름의 역할을 수행하려는 선영 역을 맡아 킬러 세계에 발을 들인 젊은 여성의 생존 방식을 보여줍니다.
이들 어설픈 킬러들에게 납치된 소민 역의 심은경은 이 단편의 미스터리한 구심점 역할을 합니다. 그녀는 김종관 감독의 '변신'에서의 차갑고 초월적인 바텐더와는 달리, 극한의 상황에서 냉철함과 생존 본능을 발휘하는 복합적인 인물입니다. 심은경은 납치된 상황에서도 킬러 3인조를 당황하게 만들거나, 그들의 허술함을 꿰뚫어 보는 듯한 날카로운 시선을 보여줍니다. 그녀의 존재감은 킬러들에게 납치된 단순한 피해자가 아니라, 이 사건 자체를 뒤흔들 수 있는 가장 위험한 변수임을 암시합니다. 세 배우의 팽팽한 신경전과 예측 불가능한 화학작용은 '업자들'이 단순한 코미디를 넘어선 심리적 긴장감을 확보하도록 만들었습니다.
킬러 장르에 던지는 유쾌한 냉소: 통쾌함과 아쉬움 사이
더 킬러스 '업자들'은 옴니버스 영화의 두 번째 세그먼트로서 장르적 쾌감을 극대화한 작품입니다. 노덕 감독은 능수능란한 연출로 빠른 전개와 유머러스한 상황들을 능숙하게 배치하며 관객의 몰입도를 높입니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은 킬러라는 소재가 가진 폭력성을 현실의 부조리함으로 대체하여 새로운 종류의 유쾌함을 만들어낸다는 점입니다. 킬러들의 실수는 곧 관객의 웃음 포인트가 되며, 이들의 어설픈 행동은 잔혹한 킬러 세계에 대한 냉소적인 시선을 강화합니다.
다만, 이 단편은 킬러 장르의 본연의 맛인 액션과 스릴을 기대한 관객에게는 아쉬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이 영화는 총격전이나 격투보다는 인물들 간의 대화와 상황의 아이러니에 집중합니다. 또한 짧은 러닝타임 안에 청부 구조와 3인조의 사연, 그리고 인질의 미스터리까지 모두 담아내려다 보니 몇몇 캐릭터의 감정선이나 서사의 깊이가 충분히 다뤄지지 못했다는 인상도 지울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업자들'은 한국 독립영화계에서 주목받는 노덕 감독이 보여준 영리하고 실험적인 시도였습니다. 킬러 세계를 향한 현실적이고 냉소적인 시선, 그리고 유머와 풍자가 결합된 독특한 스타일은 '더 킬러스' 옴니버스 영화의 다채로운 매력을 완성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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