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미러 보이지 않는 사람들 (Black Mirror: Men Against Fire), 우리가 적이라고 부르는 존재의 진짜 모습

 


괴물 사냥꾼이 된 군인들 그들의 눈을 가린 것

전쟁은 인간의 가장 잔인한 면을 드러냅니다. 우리는 국가나 이념을 위해 기꺼이 타인의 생명을 빼앗습니다. 하지만 건강한 정신을 가진 사람이 어떻게 망설임 없이 동료 인간을 살해할 수 있을까요. 역사는 그 답을 '비인간화'에서 찾았습니다. 적을 우리와 같은 사람이 아닌 괴물 벌레 혹은 악마로 규정할 때 죄책감은 사라지고 잔인함은 용기가 됩니다. 블랙미러 시즌3의 다섯 번째 에피소드 '보이지 않는 사람들 (Men Against Fire)'은 이 끔찍한 전쟁 심리를 첨단 기술과 결합하여 우리에게 가장 불편한 질문을 던집니다. 만약 국가가 군인들의 눈을 속여 적을 '보이지 않는 사람들' 즉 인간이 아닌 괴물로 보이게 만든다면 그것은 효율적인 전쟁 수행일까요 아니면 최악의 기만일까요. 이 이야기는 우리가 믿는 현실과 우리가 외면하는 진실 사이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시청자의 양심을 정면으로 겨냥합니다.

첫 번째 임무와 정체불명의 불빛

이야기는 가까운 미래의 한 군부대에서 시작합니다. 주인공은 신병 '스트라이프'입니다. 그를 비롯한 모든 군인은 '매스(MASS)'라는 최첨단 군용 임플란트를 이식받았습니다. 이 임플란트는 증강현실을 통해 전술 정보를 제공하고 신체 능력을 향상시키며 달콤한 꿈까지 꾸게 해주는 장치입니다. 그들의 임무는 '바퀴(Roaches)'라고 불리는 돌연변이 괴물들을 소탕하는 것입니다. 바퀴는 유전병에 오염되어 인류를 위협하는 존재로 알려져 있습니다. 스트라이프는 동료 레이먼과 함께 첫 번째 임무에 투입됩니다. 폐가에서 마주친 바퀴들은 인간의 모습이 아닙니다. 창백한 피부에 날카로운 이빨을 가졌고 짐승처럼 기괴한 소리를 지르며 달려듭니다. 군인들은 망설임 없이 그들을 사살합니다. 전투 중 스트라이프는 바퀴가 가지고 있던 이상한 장치에서 나온 녹색 불빛에 순간적으로 노출됩니다. 그는 잠시 두통을 느끼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임무를 마친 스트라이프는 그날 밤 매스 시스템이 제공하는 완벽한 미녀와의 에로틱한 꿈이라는 보상을 받습니다.

시스템의 균열 보이기 시작한 진실

하지만 그날 이후 스트라이프의 매스 임플란트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사격 훈련에서 표적이 흐릿하게 보이고 시스템 진단 테스트에서도 계속 오류가 발생합니다. 그는 후각을 되찾고 피 냄새를 맡기 시작하며 밤마다 꾸던 보상 꿈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그의 완벽했던 세계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군부대의 심리학자 아퀘트는 그에게 간단한 상담을 진행하지만 스트라이프는 자신의 문제를 털어놓지 못합니다. 며칠 뒤 스트라이프는 다시 바퀴 소탕 작전에 투입됩니다. 이번 임무는 바퀴들에게 식량을 제공하는 것으로 의심되는 한 마을을 수색하는 것입니다. 그곳에서 스트라이프는 한 여성을 돕게 되는데 그녀의 집에서 바퀴들을 숨겨준 흔적을 발견합니다. 스트라이프는 동료 레이먼과 함께 근처의 버려진 건물로 향하고 그곳에서 바퀴들의 본거지를 찾아냅니다. 레이먼은 망설임 없이 총을 난사하지만 스트라이프의 눈에는 이제 바퀴가 괴물로 보이지 않습니다.

충격적인 진실 매스가 가리고 있던 것

스트라이프의 매스 임플란트는 이제 완전히 고장 났습니다. 그의 눈앞에 있는 것은 짐승 같은 괴물이 아니라 겁에 질려 비명을 지르는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아이를 끌어안고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어머니 공포에 질린 남자와 노인들. 동료 레이먼의 눈에는 여전히 그들이 끔찍한 바퀴로 보이기 때문에 무자비한 학살을 이어갑니다. 스트라이프는 충격에 빠져 아무것도 하지 못합니다. 그는 그곳에서 한 어머니와 아이를 도망치게 도와주려 하지만 결국 레이먼에게 모든 것이 발각되고 그는 그 자리에서 기절합니다. 스트라이프가 눈을 뜬 곳은 군부대의 감옥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앞에 심리학자 아퀘트가 나타납니다. 아퀘트는 더 이상 친절한 상담사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차가운 표정으로 모든 진실을 털어놓습니다. '바퀴'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단지 정부가 '열등한 유전자'를 가졌다고 판단한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빈곤 질병 범죄 성향 등 바람직하지 않은 형질을 가진 사람들을 사회에서 '청소'하기 위한 유전적 학살이었습니다. 하지만 군인들도 사람이기에 동료 인간을 아무렇지 않게 죽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개발된 것이 바로 '매스' 임플란트였습니다. 매스는 군인들의 시각과 청각을 조작하여 제거 대상이 끔찍한 괴물처럼 보이도록 만들고 그들의 비명 소리를 기괴한 소음으로 바꿨습니다. 또한 피 냄새를 지우고 죄책감을 억제하며 공감 능력을 차단했습니다.

혼란과 냉철함을 연기한 두 배우

블랙미러 보이지 않는 사람들은 두 배우의 강렬한 연기 덕분에 더욱 빛을 발했습니다. 주인공 스트라이프 이병 역을 맡은 말라카이 커비는 이 극단적인 상황에 놓인 군인의 심리 변화를 훌륭하게 소화했습니다. 그는 처음에는 충성스럽고 유능한 군인의 모습을 보여주다가 매스 시스템에 오류가 생긴 후 혼란스러워하는 모습 그리고 마침내 진실을 마주하고 절망하는 모습까지 복잡한 감정의 스펙트럼을 설득력 있게 연기했습니다. 특히 진실을 알고 난 뒤의 공허한 눈빛은 시청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심리학자 아퀘트 역을 맡은 마이클 켈리는 이 에피소드의 차가운 이성을 상징합니다. 그는 '하우스 오브 카드'에서 보여준 냉철한 이미지를 이곳에서도 유감없이 발휘합니다. 처음에는 따뜻한 상담가처럼 접근하지만 후반부에 진실을 폭로할 때는 일말의 죄책감도 없이 시스템의 효율성과 유전적 청소의 당위성을 설명합니다. 그의 차분하지만 단호한 어조는 이 시스템이 얼마나 비인간적이고 무서운지 극명하게 드러내며 말라카이 커비의 감정적인 연기와 극적인 대비를 이루며 극의 긴장감을 최고로 끌어올렸습니다.

(스포일러 주의) 고통스러운 진실과 행복한 환영

이 부분부터는 블랙미러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결정적인 결말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내용을 원치 않으시면 이 부분을 건너뛰어 주시기 바랍니다. 아퀘트는 스트라이프에게 선택권을 줍니다. 하나는 이 모든 끔찍한 진실의 기억을 안고 군사 재판을 받아 감옥에서 평생을 보내는 것입니다. 아퀘트는 그가 감옥에서 매일 밤 자신이 죽인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고통받을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다른 하나는 매스 임플란트를 초기화하고 모든 기억을 삭제한 뒤 다시 충성스러운 군인으로 복귀하는 것입니다. 그는 스트라이프에게 그가 첫 임무에서 죽였던 '바퀴'의 진짜 영상을 보여줍니다. 영상 속에는 괴물이 아니라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한 남자가 스트라이프의 총에 맞아 쓰러지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스트라이프는 영상을 보며 오열합니다. 화면이 바뀌고 스트라이프는 군복을 말끔하게 차려입고 어느 집을 향해 걸어갑니다. 그가 군대에 입대한 이유이자 매스가 그에게 보상으로 보여주던 바로 그 '꿈의 집'입니다. 집 문이 열리고 꿈에 그리던 아름다운 여인이 그를 맞이하며 미소 짓습니다. 스트라이프도 그녀를 보며 희미하게 웃습니다. 하지만 카메라는 서서히 뒤로 물러납니다. 그가 서 있는 집은 사실 폐허가 된 낡은 건물이며 그를 맞이하는 여인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는 텅 빈 폐가 앞에서 홀로 서서 환영을 보고 있을 뿐입니다. 그는 결국 고통스러운 진실 대신 시스템이 제공하는 달콤한 거짓말을 선택했습니다.

가장 직설적으로 비판한 비인간화의 공포

고통스러운 진실과 행복한 거짓 중 무엇을 택할 것인가. '보이지 않는 사람들'은 블랙미러 시리즈 중에서도 가장 직설적이고 불편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입니다. 이 에피소드의 가장 큰 장점은 '비인간화'라는 전쟁 심리를 첨단 기술이라는 소재로 매우 설득력 있게 시각화했다는 점입니다. 군인들이 효율적인 살인 도구가 되기 위해 어떻게 감정이 통제되는지 그리고 그 통제에서 벗어났을 때 어떤 대가를 치르는지 냉정하게 보여줍니다. 특히 마지막 스트라이프의 선택은 우리에게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하지만 이런 직설적인 주제 전달 방식이 때로는 단점으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다른 블랙미러 에피소드들이 은유와 반전을 통해 서서히 공포를 쌓아 올리는 것과 달리 이 에피소드는 처음부터 선과 악 적과 아군을 명확히 구분하고 다소 교훈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퀘트의 설명 장면이 너무 길고 직접적이라는 비판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블랙미러 보이지 않는 사람들'은 미디어가 어떻게 적을 규정하고 우리가 얼마나 쉽게 선동당할 수 있는지 되돌아보게 만드는 강력한 힘을 가진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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