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미러 악어, 기억을 엿보는 기술이 부른 파멸의 연쇄 (Black Mirror Crocodile)

 


덮을수록 짙어지는 핏빛 과거

우리는 누구나 감추고 싶은 비밀 하나쯤 안고 살아갑니다. 만약 그 비밀이 한순간의 끔찍한 실수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어떨까요. 작은 눈덩이가 굴러가며 거대한 산사태를 만들 듯이 하나의 거짓말을 덮기 위해 또 다른 거짓말을 하고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는 삶을 상상해 보십시오. 넷플릭스 블랙미러 시리즈의 '악어' (Crocodile) 에피소드는 바로 이 지점을 파고듭니다. 이 작품은 기억을 시각화하는 기술이 보편화된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합니다. 하지만 기술 그 자체의 위험성보다 그 기술 앞에서 자신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발버둥 치는 인간의 나약함과 잔인성이 얼마나 끔찍한 파멸을 불러올 수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오늘 이야기는 차가운 아이슬란드의 설원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한 여성의 멈출 수 없는 붕괴의 기록입니다.

15년 전 묻어버린 그날의 사고

이야기는 15년 전 어두운 밤길에서 시작합니다. 젊은 날의 미아와 롭은 파티에서 술과 마약에 취한 채 차를 몰고 있었습니다. 얼어붙은 산길을 달리던 중 롭은 실수로 자전거를 탄 남자를 치어 즉사시키는 끔찍한 사고를 냅니다. 롭은 패닉에 빠져 자수하려 하지만 미아는 이성적으로 그를 말립니다. 그녀는 자신의 밝은 미래가 이 사고로 인해 망가지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결국 미아의 주도하에 두 사람은 남자의 시신과 자전거를 차에 싣고 인적 드문 호수로 향합니다. 그들은 차가운 호수 밑바닥에 시신을 유기하며 이 끔찍한 비밀을 영원히 묻어버리기로 약속합니다. 이 사건은 두 사람의 인생을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이끕니다. 미아는 이 기억을 철저히 봉인한 채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갔습니다. 그녀에게 그날의 사고는 잊어야만 하는 과거의 오점이었습니다.

성공한 건축가 미아와 불청객의 방문

1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미아는 과거의 어두운 그림자를 완벽하게 지워낸 듯 보였습니다. 그녀는 유능한 건축가로 성공했으며 사랑하는 남편과 귀여운 아들을 둔 완벽한 가정을 이뤘습니다. 화려한 호텔에서 성공적인 강연을 마친 그녀의 앞에 뜻밖의 인물이 나타납니다. 바로 15년 전의 공범 롭이었습니다. 롭은 미아와 달리 15년 내내 죄책감에 시달리며 살았습니다. 그는 금주에 성공하고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노력했지만 과거의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롭은 미아를 찾아와 15년 전 그날 사망한 남자의 아내에게 익명으로라도 편지를 보내 사죄하고 싶다고 말합니다. 미아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습니다. 그녀가 15년간 공들여 쌓아 올린 완벽한 삶이 롭의 이 고백 하나로 무너질 위기에 처한 것입니다. 미아는 호텔 방에서 롭을 필사적으로 설득하지만 롭의 의지는 확고합니다. 두 사람의 대화는 격렬한 몸싸움으로 번지고 미아는 결국 우발적으로 롭을 살해하고 맙니다. 15년 전 사고를 덮으려 했던 그녀는 이제 자신의 손으로 직접 살인을 저지른 것입니다.

기억을 시각화하는 기술 '리콜러'의 등장

미아는 호텔 방에서 롭의 시신을 처리할 방법을 고민하며 극도의 혼란에 빠집니다. 바로 그때 그녀의 호텔 창밖에서 작은 사고가 발생합니다. 자율주행 피자 배달 트럭이 보행자를 가볍게 친 것입니다. 이 사고는 미아의 비극과 전혀 관련 없어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 작은 사고가 미아의 목을 조여오는 결정적인 방아쇠가 됩니다. 보험 조사원 샤지아가 이 사고를 조사하기 위해 파견됩니다. 샤지아가 사용하는 기술은 '리콜러'라는 기계입니다. 이 기계는 사람의 뇌에 접속하여 그 사람이 최근 겪거나 본 장면을 모니터로 시각화하는 장치입니다. 즉 목격자의 기억을 강제로 재생하는 기술입니다. 샤지아는 사고 피해자와 목격자들의 기억을 차례로 수집합니다. 그리고 사고 당시 호텔 창가에 서 있던 미아 역시 중요한 목격자 중 한 명임을 알게 됩니다. 미아는 자신의 행적을 쫓는 샤지아의 존재를 알게 되고 극도의 공포에 휩싸입니다. 만약 샤지아가 자신의 기억을 리콜러로 들여다본다면 15년 전 사고는 물론이고 방금 전 호텔 방에서 롭을 살해한 장면까지 모두 들통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Spoiler Warning) 멈출 수 없는 살인과 기니피그의 증언

여기서부터는 블랙미러 악어의 충격적인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포일러를 원치 않으신다면 이 부분은 건너뛰어 주시길 바랍니다. 미아는 자신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샤지아보다 먼저 다른 목격자들을 찾아가기로 결심합니다. 그녀는 샤지아가 자신의 기억을 보기 전에 이 연결고리를 끊어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시도는 끔찍한 연쇄 살인으로 이어집니다. 미아는 리콜러의 존재를 알고 있던 첫 번째 목격자를 찾아가 그를 살해하고 증거를 인멸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보험 조사원 샤지아가 미아의 집을 방문합니다. 미아는 태연하게 사고 목격자로 협조하는 척하며 샤지아를 안심시킵니다. 샤지아는 미아의 기억을 스캔하기 전 기계 테스트를 위해 자신의 기억을 먼저 보여줍니다. 그 기억 속에는 샤지아의 사랑스러운 아들 모습이 담겨 있었습니다. 잠시 후 미아의 기억을 스캔하는 순간 샤지아는 경악합니다. 미아의 기억 속에서 롭의 살인 현장과 조금 전 다른 목격자를 살해하는 장면까지 모두 보게 된 것입니다. 모든 진실을 알게 된 샤지아를 미아는 망설임 없이 살해합니다. 미아는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그녀는 샤지아의 집까지 찾아가 유일한 목격자가 될 수 있는 샤지아의 남편마저 살해합니다. 그리고 그 집에는 샤지아의 어린 아들이 있었습니다. 미아는 자신이 본 샤지아의 기억을 떠올리며 그 아들을 찾아냅니다. 그리고는 눈이 보이지 않는 아이마저 무참히 살해합니다. 모든 증인을 제거했다고 생각한 미아는 아들의 학교 연극을 보며 안도의 눈물을 흘립니다. 하지만 경찰은 샤지아의 집에서 또 다른 목격자를 찾아냅니다. 그것은 바로 그 집에 있던 애완동물 기니피그였습니다. 경찰은 기니피그의 기억을 리콜러로 스캔하여 미아의 모습을 확인하고 그녀를 체포합니다.

앤드리아 라이즈버러와 키란 소니아 사워의 처절한 연기

블랙미러 악어의 숨 막히는 긴장감은 전적으로 두 주연 배우 앤드리아 라이즈버러와 키란 소니아 사워의 공입니다. 주인공 '미아'를 연기한 앤드리아 라이즈버러는 이 작품에서 압도적인 연기를 선보입니다. 그녀는 성공한 건축가의 냉철하고 지적인 모습 이면에 15년간 끔찍한 비밀을 숨겨온 불안한 내면을 완벽하게 표현했습니다. 특히 롭을 살해한 직후의 공황 상태와 자신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연쇄 살인마로 변해가는 과정은 그야말로 소름이 돋습니다. 그녀의 차가운 눈빛은 아이슬란드의 설원보다 더 냉혹하게 느껴집니다. 보험 조사원 '샤지아' 역의 키란 소니아 사워 역시 강렬한 인상을 남깁니다. 그녀는 자신의 일에 대한 확신과 따뜻한 인간미를 동시에 가진 인물입니다. 리콜러라는 비인간적인 기술을 사용하면서도 목격자를 배려하는 그녀의 모습은 미아의 잔인성과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그렇기에 샤지아가 미아의 기억을 보고 공포에 질리는 순간과 그녀의 비극적인 최후는 시청자에게 더욱 큰 충격과 안타까움을 안겨줍니다. 두 배우의 팽팽한 연기 대결은 이 에피소드의 완성도를 극한으로 끌어올렸습니다.

아이슬란드의 설원이 감추지 못한 인간 본성의 추악함

블랙미러 악어는 '기억을 보는 기술'이라는 소재를 통해 인간이 자기 방어를 위해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는지를 극한까지 밀어붙인 작품입니다. 이 에피소드의 가장 큰 장점은 압도적인 분위기입니다. 아이슬란드의 광활하고 차가운 설경은 미아의 황량하고 얼어붙은 내면을 시각적으로 완벽하게 구현했습니다. 또한 하나의 거짓말이 어떻게 연쇄적인 비극을 낳는지 보여주는 촘촘한 서사 구조는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긴장감을 선사합니다. 하지만 일부 시청자에게는 이 이야기가 불편하게 다가올 수도 있습니다. 특히 주인공 미아가 자신의 성공을 지키기 위해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연쇄 살인을 저지르고 심지어 눈먼 아이까지 살해하는 장면은 개연성이 부족하고 지나치게 자극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또한 마지막 '기니피그'의 증언이라는 결말은 블랙미러 특유의 냉소적인 유머로 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이토록 무겁게 쌓아 올린 비극을 너무 쉽게 마무리한 것이 아니냐는 아쉬움을 남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블랙미러 악어는 인간의 이기심과 비밀이 기술과 만났을 때 얼마나 끔찍한 괴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보여주는 가장 강력하고 섬뜩한 경고장임이 틀림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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