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바다처럼 깊고 순한 사랑,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시대와 감정을 담은 제주 이야기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는 2025년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8부작 작품으로, 제주도 방언 특유의 정서를 살리며 긴 시간에 걸친 한 남녀의 인생과 사랑을 담담하게 풀어냅니다. 제목은 “정말 크게 속았다”는 뜻을 가진 제주 말로, 드라마의 주제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나의 아저씨, 나의 해방일지로 깊은 울림을 전했던 김원석 감독과 박해영 작가가 다시 손을 잡은 작품입니다. 제주도를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배경으로, 특별하지 않지만 그만큼 현실적이고 깊은 감정의 흐름을 그려냅니다.

줄거리 중심, 시간이 만든 사랑

이야기는 1950년대 제주를 배경으로, 말수 적고 묵직한 청년 ‘관식’과 씩씩하고 자기감정에 솔직한 여성 ‘애순’의 인생을 따라갑니다. 두 사람은 어린 시절부터 서로를 알고 지내며 다투고 웃는 관계로 자라납니다.

제주 4·3 사건과 경제적 어려움, 도시로의 이주와 가족의 변화 같은 시대적 격랑 속에서도 관식과 애순은 서로의 곁을 지키려 합니다. 애순은 삶을 개척하고자 도시로 떠났다가 상처와 함께 돌아오고, 관식은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며 그녀를 기다립니다.

사랑은 격렬하지 않고, 드러내지 않아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드라마는 그들의 감정을 한순간이 아닌 오랜 시간 동안 익어가는 것처럼 보여줍니다. 고백도, 약속도 없는 사이지만 두 사람은 서로에게 가장 깊은 감정을 품은 존재로 살아갑니다.

인물 중심, 제주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관식은 말이 적고 무뚝뚝하지만 마음은 깊고 다정한 인물입니다. 시대적 불안과 가족을 책임져야 한다는 현실 속에서도 결코 감정을 쉽게 말하지 않지만, 애순을 향한 마음만은 한결같습니다.

애순은 자기 뜻을 분명히 밝히고, 때로는 과감한 결정을 내리기도 합니다. 여성으로서 독립적인 삶을 살아가려 애쓰는 그녀의 모습은 당시 사회적 시선과 충돌하면서도 진정성 있게 그려집니다.

이외에도 마을 사람들, 관식의 가족, 애순의 주변 인물들은 모두 제주의 삶을 상징하는 존재들로 등장합니다. 물질을 나가는 어머니들, 바닷가에서 장난치는 아이들, 이웃 간 정을 나누는 풍경은 드라마의 배경이자 중심 정서를 만들어냅니다.

연출과 대사가 전하는 감정의 깊이

김원석 감독은 이 드라마에서도 장면 하나하나에 감정을 담아냅니다. 카메라의 시선은 인물에게 고정되기보다는 그들의 공간, 일상, 습관을 관찰하는 방식으로 이뤄집니다.

박해영 작가의 대사는 길지 않지만 묵직합니다. “말 안 해도 알잖아”라는 한 마디에 이들이 나눈 시간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습니다. 애순이 관식을 향해 건네는 말들은 사랑이라기보다는 삶 전체를 함께한 동반자에게 보내는 진심처럼 들립니다.

또한 제주 방언이 자연스럽게 쓰이면서 언어가 가진 지역성과 정서가 깊이 살아납니다. 시청자는 낯선 말투 속에서도 그 감정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느리고 조용하지만 확실한 감동

폭싹 속았수다는 빠른 전개나 극적인 사건 대신, 삶이라는 이름으로 덧칠된 감정들을 조용히 펼쳐 보입니다. 매 장면은 누군가의 기억 같고, 모든 대사는 익숙한 누군가의 말처럼 다가옵니다.

사랑은 표현보다 시간이 만든다는 것, 기다림은 때로 가장 깊은 감정이라는 것을 이 드라마는 조용히 알려줍니다. 시청 후에도 관식의 눈빛, 애순의 뒷모습이 오래 기억에 남는 이유는 이들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우리 곁에도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드라마를 진심으로 추천합니다. 마음이 복잡하고 삶이 지치게 느껴질 때, 이 작품은 당신의 마음을 묵묵히 안아줄 것입니다.


댓글 쓰기

다음 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