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영화 조커에서 계단을 내려오며 춤추던 아서 플렉을 기억하시나요? 그 장면은 한 사람이 처음으로 자기 자신을 해방하는 순간처럼 보였고 많은 관객의 머릿속에 오래 남았습니다. 그런데 5년 만에 돌아온 속편에서 그 춤은 노래가 되어 돌아왔습니다. 조커가 레이디 가가와 함께 옛 명곡을 부른다는 소식에 극장가는 술렁였습니다.
조커 폴리 아 되 (Joker Folie à Deux)는 개봉 전부터 호아킨 피닉스가 왜 하필 뮤지컬 장르를 택했는지가 화제였습니다. 흥행과 평가에서 고전하면서 이 질문은 더욱 뜨거워졌습니다. 하지만 감독과 배우의 인터뷰를 따라가 보면 이 선택은 갑작스러운 변덕이 아니라 꽤 오래 품어 온 구상의 결과였습니다. 이 글에서는 공개된 발언과 작품 속 장면을 근거로 뮤지컬이라는 형식에 담긴 진짜 의도를 차근차근 풀어 보겠습니다.
뮤지컬이라는 발상은 호아킨 피닉스의 한밤의 구상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토드 필립스 감독은 버라이어티와의 인터뷰에서 속편의 원래 아이디어가 호아킨 피닉스에게서 나왔다고 밝혔습니다. 피닉스가 한밤중에 떠올린 구상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세상 속에서 늘 어색하게 움직이는 아서가 음악을 통해서라면 마침내 자기 마음을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조커 폴리 아 되의 뮤지컬 형식은 이 한 줄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했습니다.
처음에는 영화가 아니라 무대를 떠올렸다고 합니다. 두 사람은 조커를 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리는 방안까지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공연을 준비하려면 4년이 걸리고 피닉스가 몇 달 동안 매일 밤 무대에 서야 한다는 현실이 걸림돌이었습니다. 규모를 줄여 작은 카바레 공연으로 하는 방안도 나왔지만 팬데믹이 닥치면서 계획은 멈췄습니다. 이후 필립스는 NPR 인터뷰에서 브로드웨이나 카바레 대신 속편 자체를 영화 뮤지컬로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이르렀다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눈여겨볼 대목은 출연 이유입니다. 피닉스는 위험하다는 느낌이 없고 처참하게 실패할 가능성이 없다면 그 영화를 할 의미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필립스 역시 그것이 이 영화를 만든 이유였다고 덧붙였습니다. 우리 자신을 어떻게 넘어설 수 있을까라는 질문 끝에 나온 답이 노래하는 조커였던 셈입니다. 결국 호아킨 피닉스의 뮤지컬 선택은 흥행 공식을 따른 것이 아니라 일부러 위험한 쪽으로 방향을 튼 결정이었습니다.
노래는 아서에게 말이 되지 못한 마음이었고 리에게는 힘의 무대였습니다
필립스 감독은 이 영화를 뮤지컬이라고 부르는 것을 망설였습니다. 영화 속 음악 대부분이 사실상 대사이기 때문입니다. 아서는 하고 싶은 말을 찾지 못해 말 대신 노래를 부른다는 설명입니다. 1편에서도 아서는 말보다 몸짓으로 감정을 터뜨리던 인물이었으니 노래는 그 연장선에 놓입니다.
두 사람이 부르는 노래의 성격도 다릅니다. 버라이어티에 따르면 아서는 로맨틱한 발라드에 끌리고 리는 힘에 관한 노래를 선호합니다. 겟 해피와 포 원스 인 마이 라이프 그리고 댓츠 라이프 같은 곡들이 두 사람의 달라지는 감정을 전합니다. 같은 노래를 부르면서도 아서는 사랑을 고백하고 리는 조커라는 신화를 부추긴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피닉스의 창법은 특히 의도된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프랭크 시나트라와 새미 데이비스 주니어를 참고해 그들처럼 부르려 했습니다. 그런데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아서가 저렇게 매끄럽게 부를 수는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그렇게 찾아낸 목소리는 부서지고 절박하고 갈라진 소리였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의 노래는 듣기 좋으라고 만든 넘버가 아니라 상처가 새어 나오는 소리에 가깝습니다.
한 가지 더 짚을 점이 있습니다. 두 사람은 연결된 정신 이상을 통해 삶을 뮤지컬처럼 경험합니다. 부제인 폴리 아 되가 가까운 두 사람에게 동시에 일어나는 공유 정신병적 장애를 뜻한다는 점을 떠올리면 뮤지컬 형식은 그 제목의 뜻을 눈에 보이게 만든 장치이기도 합니다.
재판이라는 무대 위에서 아서와 리는 어떤 이야기를 시작했을까요
이야기는 1편으로부터 2년 뒤인 1983년에 시작됩니다. 아서 플렉은 아캄 수용소에 갇혀 다섯 명을 죽인 죄로 재판을 앞두고 있습니다. 1편 마지막 장면을 두고 관객이 궁금해하던 질문은 영화 초반 간수의 지나가는 대사로 정리됩니다. 무기력하게 하루하루를 보내던 아서는 수용소 음악 시간에 리 퀸젤을 만나면서 삶이 다시 뒤바뀝니다.
리는 부모가 사는 아파트에 불을 질렀다고 고백하는 인물입니다. 그녀는 아서의 마음속에 잠들어 있던 조커를 깨우고 스스로를 할리 퀸이라 부르며 그에게 깊이 빠져듭니다.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지는 순간마다 화면은 화려한 뮤지컬 무대로 바뀌고 현실은 그 뒤로 물러납니다. 수용소 밖에서는 아서를 영웅으로 떠받드는 추종자들이 그를 빼내려는 움직임을 시작합니다.
결국 재판정은 조커의 무대가 됩니다. 아서는 최후의 심판대에서 할리 퀸과 함께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하려 합니다. 다만 이 재판은 단순한 법정 드라마가 아닙니다. 아서가 조커로 남을 것인가 아서로 돌아갈 것인가를 가르는 가장 큰 시험대가 됩니다.
스포일러 주의 결말에서 조커는 왜 스스로 조커를 부정했을까요
여기부터는 영화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직 영화를 보지 않으셨다면 관람 후에 읽으시길 권합니다.
재판이 이어지면서 아서는 결정적인 선택을 합니다. 조커는 없다고 스스로 부정한 것입니다. 그는 조커를 떨쳐내고 리와 함께 평범하고 선한 사람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 리의 마음이 드러납니다. 그녀가 사랑한 것은 인간 아서 플렉이 아니라 광기의 상징인 조커였습니다. 리는 아서 곁을 떠나고 그는 망연자실한 채 혼자 남습니다. 이 장면은 조커에게 환호하던 관객의 기대까지 함께 돌려세우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아서는 그를 쫓아온 경찰에게 다시 붙잡힙니다. 그가 마지막으로 서 있던 곳은 1편에서 조커가 되어 내려오던 바로 그 계단 중간이었습니다. 조커를 벗어나려 했던 시도가 헛된 일이었다는 것을 보여 주는 듯한 연출입니다.
수용소로 돌아온 아서는 이름도 사연도 없는 한 죄수의 칼에 찔립니다. 죄수는 아무런 죄책감 없이 웃으며 자기 입가를 찢어 웃는 표정을 만듭니다. 아서가 조커를 부정했지만 정작 조커는 아서라는 개인을 넘어 혼돈과 광기의 상징이 되어 그를 삼켜 버린 셈입니다. 아서는 또 다른 누군가가 조커가 되어 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숨을 거둡니다. 이어서 1편에서 아서가 흥얼거리던 댓츠 라이프가 레이디 가가의 목소리로 흘러나오며 영화는 끝납니다. 화려했던 뮤지컬의 환상이 걷히고 나면 남는 것은 쓸쓸한 현실이라는 것을 마지막 노래가 보여 줍니다.
감독이 뮤지컬로 관객에게 던진 진짜 질문은 반성이었을까요 배반이었을까요
개봉 직후 이 영화가 1편에 대한 감독의 반성이라는 해석이 여러 곳에서 나왔습니다. 전편의 내용과 정서가 사회에 끼친 부정적 영향을 돌아보는 것처럼 보인다는 질문에 필립스는 그런 이야기가 나온 것을 알고 있지만 대중의 반응이나 사회적 영향을 의식해서 만들지는 않았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그렇다고 영화가 이 문제를 비켜 가는 것은 아닙니다. 필립스는 NPR 인터뷰에서 이 영화 속 사법제도와 미디어가 부패해 있으며 엔터테인먼트의 부패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고 말했습니다. 이 발언을 받아들이면 뮤지컬은 그 부패한 엔터테인먼트를 상징하는 형식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범죄와 재판이 화려한 쇼처럼 소비되는 세상을 노래와 춤으로 보여 주는 것입니다. 리가 진솔한 대화가 나올 때마다 노래로 응답하며 아서의 입을 막는다는 해석도 같은 맥락입니다.
또 하나의 의도는 관객 기대를 정면으로 배반하는 것이었을 수 있습니다. 예고편은 슈퍼 빌런으로 폭주하는 조커를 기대하게 만들었지만 영화는 조커의 가면을 벗겨 내고 무너지는 아서를 보여 줍니다. 물론 이 두 해석은 평론가와 관객이 내놓은 읽기이지 감독이 직접 확인한 정답은 아닙니다. 감독이 분명히 말한 것은 더 위험하고 더 낯선 곳으로 가고 싶었다는 것뿐입니다.
호아킨 피닉스와 레이디 가가의 연기는 어땠을까요
호아킨 피닉스는 이번에도 몸으로 캐릭터를 만들었습니다. 2년의 수감 생활을 반영해 앙상하게 야윈 모습으로 등장했고 노래 연습까지 병행하느라 고된 과정을 거쳤다고 밝혔습니다. 무엇보다 이번 연기의 핵심은 조커 가면을 쓴 광기가 아니라 가면 뒤의 취약한 아서를 보여 주는 데 있었습니다. 갈라지고 흔들리는 노래는 그 자체로 캐릭터의 마음을 드러냈습니다. 다만 1편처럼 화면을 집어삼키는 폭발적 인상을 기대한 관객에게는 다소 조용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레이디 가가는 지금까지 봐 온 할리 퀸과는 다른 리 퀸젤을 만들어 냈습니다. 피아노를 치며 있는 힘껏 노래를 부르는 장면은 압도적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캐릭터를 두고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한 평론은 리의 캐릭터적 동기가 끝까지 부족하고 아서와의 케미가 미온적이거나 때로는 설득력을 잃는다고 지적했습니다. 진솔한 대화가 시작되려 할 때마다 노래로 넘어가는 설정이 답답했다는 관객 반응도 있었습니다. 뛰어난 가수를 데려다 놓고 그 능력을 절제시킨 연출이 오히려 배우의 장점을 다 살리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위험한 실험이 남긴 것은 실패의 낙인만이 아니라 불편한 질문이었습니다
장점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뮤지컬이라는 형식이 망상에 빠진 두 사람의 상황과 잘 맞아떨어진다는 평가가 있었습니다. 범죄를 일종의 연극적 활약으로 바라보는 주인공들의 상황과 조응하고 내내 음울한 영화에 활기를 주었다는 것입니다. 피닉스의 갈라진 노래와 가가의 가창력 그리고 1편의 계단으로 돌아가는 결말의 수미상관도 인상적입니다.
하지만 단점도 분명합니다. 뮤지컬 영화라는 점을 감안해도 노래가 불편할 만큼 많고 길다는 지적이 이어졌습니다. 현실과 망상을 오가는 전개는 호불호가 갈렸고 조커와 할리 퀸이 주고받을 광기의 교감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아쉽다는 반응도 많았습니다. 예고편이 만든 기대와 실제 영화의 온도차 때문에 배신당했다고 느낀 관객도 적지 않았습니다.
성적표는 냉정했습니다. 버라이어티에 따르면 제작비는 약 2억 달러로 1편의 6500만 달러보다 세 배가량 많았습니다. 북미 첫 주말 수익은 4000만 달러로 예상치였던 7000만 달러에 못 미쳤고 1편의 9620만 달러와는 큰 차이가 났습니다. 로튼토마토 신선도는 33퍼센트 팝콘 지수는 31퍼센트에 그쳤고 관객 평가 지표인 시네마스코어에서는 D 등급을 받았다고 알려졌습니다. 국내에서도 CGV 골든에그 지수가 62퍼센트였고 네이버 관람객 평점은 10점 만점에 5점대였습니다. 한 흥행 분석가는 뮤지컬 넘버를 넣은 슈퍼히어로 영화는 주류 관객에게 어려운 판매 전략이었다고 평했습니다.
그래도 저는 이 영화를 단순한 실패작으로 접고 싶지 않습니다. 호아킨 피닉스와 토드 필립스가 뮤지컬을 택한 진짜 의도는 성공 공식을 반복하는 대신 위험을 감수하고 조커라는 신화를 스스로 해체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1편 같은 카타르시스를 기대하면 실망하시겠지만 망상에 빠진 사람이 어떻게 사회로부터 지지받고 또 외면받는지를 보고 싶다면 한 번쯤 볼 만한 작품입니다. 노래하는 조커가 던진 불편한 질문은 극장을 나온 뒤에도 한동안 남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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