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방에 무너지는 악당들이 만들어내는 이상한 쾌감
극장 스크린에서 마동석이 주먹을 뻗는 순간 관객석에서는 늘 같은 소리가 터져 나옵니다. 웃음과 탄식이 반씩 섞인 그 소리는 한국 액션영화가 오랫동안 찾지 못했던 아주 단순한 감정입니다. 복잡한 이유 없이 나쁜 놈이 맞고 쓰러지는 장면을 볼 때 사람이 느끼는 후련함입니다. 범죄도시 시리즈가 천만 관객을 여러 번 넘긴 배경에는 정교한 서사가 아니라 이 한 방의 감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감각은 저절로 생기지 않습니다. 화면에서는 마석도가 주먹을 한 번 휘두르고 상대가 날아가지만 그 짧은 순간을 만들기 위해 카메라 밖에서는 여러 사람이 실제로 바닥에 몸을 던집니다. 범죄도시 마동석의 액션이 유독 아파 보이는 이유는 배우의 체격 때문만이 아니라 그 옆에서 맞아주는 사람들의 기술과 각오 때문입니다. 관객이 느끼는 타격감의 절반 이상은 때리는 쪽이 아니라 맞는 쪽이 만들어냅니다.
이 글에서는 범죄도시 시리즈의 액션이 어떤 원리로 설계되었고 무술팀이 무엇을 감당했는지를 정리해보려 합니다. 마석도라는 캐릭터가 왜 굳이 맨주먹을 고집하는지 그리고 그 선택이 어떻게 시리즈의 정체성이 되었는지도 함께 살펴봅니다.
마석도의 주먹을 설계한 사람 허명행 무술감독
범죄도시 액션의 뼈대를 만든 사람은 허명행 무술감독입니다. 그는 범죄도시 시리즈 1편부터 3편까지 무술감독을 맡았고 4편에서는 연출자로 나섰습니다. 마동석과 함께 무술감독과 스턴트 그리고 연출자로 작업한 영화만 열여덟 편에 이릅니다. 오랜 시간 한 배우의 몸을 관찰해온 사람이 그 배우에게 가장 잘 맞는 동작을 짜냈다는 뜻입니다.
허명행 감독이 밝힌 설계 원칙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마석도이기에 가능한 액션만 짠다는 것입니다. 시리즈가 이어지면서 제작진이 가장 신경 쓴 부분도 마석도 액션의 변화였습니다. 1편은 마석도의 순수한 피지컬이 중심이었고 2편에서는 유도 기술을 섞어 힘을 살렸으며 3편에서는 마동석 배우의 특기인 복싱 기술을 더 깊게 활용했습니다. 헤비급 복서 같던 마석도가 경량급 복서의 날렵한 기술까지 익히면서 다른 느낌을 냈다는 설명입니다.
이 원칙은 캐릭터의 직업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허명행 감독은 범죄도시에서 마석도가 형사이기 때문에 무기를 쓰거나 상해를 입히지 않고 빌런을 제압하는 정도의 관객이 허용하는 액션만 보여줄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경찰은 범인을 과도하게 진압할 수 없기 때문에 가능하면 맨몸으로 제압합니다. 마석도가 칼이나 총 대신 주먹을 드는 것은 단순한 취향이 아니라 인물 설정에서 나온 제약입니다. 그리고 이 제약이 오히려 시리즈의 개성을 만들었습니다. 무기를 못 쓰니 몸으로 승부해야 하고 몸으로 승부하니 한 방의 무게가 커집니다.
흥미로운 세부 설정도 있습니다. 마석도는 흉악범 제압이 조금 힘들다고 판단되면 벨트 같은 것을 손에 둘러 감는데 이것은 무기로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확히 자신의 주먹을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관객이 흘려보내기 쉬운 이 장면 하나에도 맨주먹 액션의 논리가 담겨 있습니다.
때리는 사람보다 맞는 사람이 만드는 타격감
액션 장면에서 실제로 상대를 가격하는 일은 없습니다. 카메라 각도와 편집 그리고 음향이 충돌을 만들어냅니다. 그러나 이 세 가지만으로는 관객이 아프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마지막 한 조각은 맞는 사람의 반응입니다. 주먹이 닿는 시점에 목이 꺾이는 각도와 몸이 밀려나는 속도 그리고 바닥에 떨어지는 자세가 어긋나면 아무리 좋은 효과음을 얹어도 가짜처럼 보입니다.
범죄도시의 악당들이 유독 시원하게 날아가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마석도에게 맞고 쓰러지는 조직원들은 대부분 무술팀 소속입니다. 이들은 정해진 타이밍에 스스로 몸을 던져 마동석의 주먹이 만들어낸 것처럼 보이는 궤적을 그립니다. 테이블을 부수며 넘어지고 벽에 등을 부딪히고 계단을 굴러 내려갑니다. 화면에서는 한 컷이지만 현장에서는 같은 동작을 열 번 스무 번 반복합니다. 몸이 성할 수 없는 구조입니다.
허명행 감독은 액션이 스텝과 스텝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춤과 비슷하다고 설명했습니다. 실제로 댄서 경력이 있는 사람들이 액션 동작을 빨리 익히는 편이라고 합니다. 무술팀에게 요구되는 것은 힘이 아니라 정확한 박자와 통제력입니다. 한 사람이 반 박자만 늦게 넘어져도 그 장면은 다시 찍어야 하고 반 박자 빨리 넘어지면 맞기도 전에 날아가는 어색한 그림이 나옵니다.
범죄도시의 대표적인 좁은 공간 액션도 사전 콘티를 거의 그대로 옮겨 찍은 장면이라고 합니다. 이틀 정도 만에 완성했고 숏 바이 숏으로 치밀하게 쌓아 올렸습니다. 즉흥적으로 몸을 부딪히는 것이 아니라 종이 위에서 이미 계산이 끝난 뒤 그 계산대로 몸이 움직인 결과입니다. 무술팀의 피땀은 무모함이 아니라 반복 훈련과 설계에서 나옵니다.
주연급 배우가 맞는 장면에도 대역이 들어갑니다. 마석도의 무술 대역 스턴트맨은 윤성민입니다. 범죄도시3의 빌런 리키가 마석도에게 얻어맞는 장면에서도 스턴트 대역이 사용되었습니다. 관객이 배우의 얼굴을 보고 있다고 믿는 순간에도 실제로 충격을 받아내는 사람은 따로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근육이 찢어진 채로 촬영을 이어간 첫 영화
무술팀만 다치는 것은 아닙니다. 마동석 본인도 1편 촬영에서 부상을 입었습니다. 그는 무릎에 힘이 없어서 종아리 근육이 찢어졌다고 밝혔고 붕대를 감고 액션 장면을 찍어서 걱정이 되었지만 무사히 촬영했다고 말했습니다. 강윤성 감독 역시 첫 촬영 때 마동석이 부상을 입었다고 언급했습니다.
100킬로그램에 가까운 몸으로 순간적인 방향 전환과 도약을 반복하면 무릎과 종아리에 실리는 부담은 일반적인 액션 배우보다 훨씬 큽니다. 범죄도시 마동석의 액션이 가벼워 보이지 않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실제로 무거운 몸이 실제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화면 속 묵직함은 연출로 만들어낸 착시가 아니라 물리적인 사실에 가깝습니다.
이 영화는 기획 단계부터 마동석이 깊이 관여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감독과 주연 배우가 친구 사이였고 처음 초안을 잡을 때부터 마동석이 기획에 깊이 참여했습니다. 배우가 자신의 몸으로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이 관객에게 통하는지를 알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액션이 배우에게 맞춰진 것이 아니라 배우가 액션을 함께 만들었습니다.
마동석과 윤계상이 보여준 대비의 연기
액션만으로는 이 시리즈를 설명할 수 없습니다. 1편이 특별했던 이유는 마동석과 윤계상이 만들어낸 온도 차이 때문입니다.
마동석의 마석도는 웃긴 형사입니다. 조직원들 사이를 어슬렁거리며 농담을 던지고 후배 형사들에게 잔소리를 합니다. 그러다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사람을 제압합니다. 이 전환이 자연스러운 것은 마동석이 힘을 과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는 화를 내며 때리지 않고 일하듯이 때립니다. 이 무심함이 오히려 압도적으로 보입니다. 다만 시리즈가 이어지면서 이 연기는 편안한 자리에 안착했고 새로운 얼굴을 보여주는 대신 익숙한 얼굴을 반복하는 쪽을 택했습니다.
윤계상의 장첸은 그 반대편에 있습니다. 부드러운 인상으로 알려져 있던 배우가 감정을 완전히 지운 얼굴로 등장했을 때 관객이 받은 충격은 컸습니다. 그는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대사도 많지 않습니다. 대신 상대를 바라보는 눈과 도끼를 쥐는 손의 무심함으로 공포를 만듭니다. 마석도의 폭력이 시끄럽고 유쾌하다면 장첸의 폭력은 조용하고 건조합니다. 이 대비가 있었기에 두 사람이 좁은 공간에서 마주치는 순간이 그토록 강렬했습니다. 이후 시리즈가 매번 새로운 빌런을 세우는 이유도 1편에서 확인된 이 공식 때문입니다.
여기서부터는 결말과 관련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직 영화를 보지 않으셨다면 이 부분은 건너뛰시기를 권합니다.
모든 것이 주먹 하나로 정리되는 결말
1편의 마무리는 화려하지 않습니다. 마석도는 대규모 검거 작전을 벌여 조직을 무너뜨리고 마지막에는 장첸과 좁은 공간에서 맞붙습니다. 총도 없고 극적인 반전도 없습니다.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해 몸을 던지고 결국 마석도의 주먹이 이깁니다. 장첸은 붙잡히고 마석도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이 단순한 결말이 오히려 이 영화의 성격을 정확히 보여줍니다. 범죄도시는 악의 뿌리를 캐거나 사회 구조를 고발하려 하지 않습니다. 눈앞의 나쁜 놈을 잡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마무리도 주먹 하나로 정리됩니다. 관객이 원했던 것도 정확히 그것이었고 시리즈는 이후 이 공식을 계속 반복하게 됩니다.
아쉬움을 알면서도 극장에 가게 되는 이유
장점부터 말하자면 범죄도시 마동석의 액션은 여전히 한국 상업영화에서 가장 잘 만들어진 타격 액션에 속합니다. 동작이 명확하고 카메라가 지나치게 흔들리지 않으며 관객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항상 알 수 있습니다. 유머와 폭력의 배합도 능숙합니다. 무술팀이 쌓아 올린 물리적 설득력 덕분에 시리즈가 반복되어도 액션 자체는 쉽게 지루해지지 않습니다.
단점도 분명합니다. 서사는 갈수록 얇아지고 빌런의 강도만 높이는 방식으로 긴장을 유지하려 합니다. 마석도는 처음부터 끝까지 위기에 빠지지 않기 때문에 결말이 예측 가능합니다. 폭력을 통쾌하게만 소비한다는 지적도 꾸준히 나옵니다. 형사가 절차 없이 사람을 때려눕히는 장면을 계속 유쾌하게 그리는 것이 과연 괜찮은가 하는 질문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그럼에도 이 시리즈가 계속 관객을 모으는 이유는 정직함에 있습니다. 범죄도시는 자신이 무엇을 파는 영화인지 숨기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상품의 품질을 위해 카메라 밖에서 수많은 사람이 몸을 던집니다. 다음에 마석도의 주먹이 악당을 날려버리는 장면을 볼 때 그 뒤로 날아가는 사람의 이름을 한 번쯤 떠올려보셔도 좋겠습니다. 그 한 방의 쾌감은 절반쯤 그들의 것입니다.
#범죄도시 #마동석 #마석도 #허명행무술감독 #한국액션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