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 (Spider-Man Brand New Day), 노 웨이 홈 그 이후 피터 파커가 마주한 고독과 각성

노 웨이 홈의 마지막 장면을 기억하시나요. 세상 모든 사람의 기억 속에서 자신의 존재가 지워진 채 홀로 크리스마스의 뉴욕을 걷던 피터 파커의 뒷모습이요. 그로부터 오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개봉한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는 제목과 달리 희망차게 시작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습니다. 극장에 앉아 스크린을 보는 내내 마음 한구석이 저릿했던 이유는 이 영화가 히어로의 활약보다 인간 피터 파커의 고립과 상처를 훨씬 더 집요하게 파고들기 때문입니다. 이번 리뷰에서는 브랜드 뉴 데이가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는지 그리고 왜 이 영화가 지금까지의 스파이더맨 시리즈와 결이 다른지 솔직하게 풀어보겠습니다.

혼자가 된 영웅의 사년

영화는 노 웨이 홈 사건 이후 사년이 흐른 시점에서 시작합니다. 피터는 자신을 기억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세상에서 오직 스파이더맨으로서만 살아갑니다. 배달 음식조차 얼굴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문 앞에 두고 가라고 요구할 정도로 사람과의 접촉을 극도로 피합니다. 유일한 연결고리는 경찰 간부 드울프 반장과의 사무적인 통화뿐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스콜피온과 툼스톤 같은 스트리트 레벨 빌런들을 차례로 소탕하며 뉴욕의 범죄율을 크게 낮추고 시로부터 감사패까지 받습니다. 겉으로는 완벽한 영웅이지만 집으로 돌아온 그가 홀로 세탁기 옆에 쭈그려 앉아 있는 장면은 이 영화가 어떤 톤으로 흘러갈지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화려한 영광과 철저한 고립이 만드는 대비가 초반부터 가슴을 무겁게 누릅니다.

우연히 옛 친구 네드의 파티에 숨어들어간 피터는 MJ가 다른 사람과 키스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크게 흔들립니다. 비가 쏟아지는 밤 슈트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웹슈터마저 차지 않고 도심을 스윙하며 도망치듯 집으로 돌아오는 장면은 이 시리즈에서 손꼽힐 만큼 처절합니다. 그리고 이 극심한 정신적 고통이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그의 몸에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합니다.

정신을 조종하는 새로운 위협과 폭주하는 힘

피터를 괴롭히는 것은 상실감만이 아닙니다. 대미지 컨트롤 본부가 정체불명의 존재에게 습격당하고 탈취된 탱크가 도심을 질주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이 빌런은 타인의 몸에 자유자재로 빙의해 종적을 감추는 특수한 능력을 지니고 있어 피터를 몇 번이고 혼란에 빠뜨립니다. 여기에 더해 지난 사년간 쌓인 고독과 스트레스로 인해 피터의 몸속 거미 유전자가 폭주하기 시작합니다. 손목에서 저절로 거미줄이 뿜어져 나오고 감각이 극단적으로 예민해지며 결국 눈동자가 검게 변하는 프레데터 모드로 이성을 잃는 지경에 이릅니다. 이 상태에서 무고한 경찰관을 다치게 하는 사고까지 벌어지면서 드울프 반장에게서 더는 도와줄 수 없다는 경고까지 받습니다.

힘을 제어하기 위해 피터는 브루스 배너를 찾아가 조언을 구합니다. 좋은 유전자만 남기고 나쁜 것만 억제할 수 있느냐는 피터의 질문에 배너가 던지는 좋고 나쁜 것을 대체 무엇으로 정할 것이냐는 대답은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결국 빌런의 정체가 뮤턴트 진 그레이라는 사실이 드러나고 그녀가 대미지 컨트롤을 습격한 진짜 이유가 실종된 친언니 세라를 찾기 위해서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야기는 단순한 선악 구도를 벗어나 훨씬 복잡한 감정선으로 확장됩니다.

톰 홀랜드 젠데이아 그리고 새로운 얼굴들의 열연

톰 홀랜드는 이번 작품에서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결의 연기를 보여줍니다. 활기차고 유쾌하던 기존의 피터 파커 대신 고립과 죄책감에 짓눌린 인물을 표현하는데 특히 신체적 고통과 정신적 붕괴를 오가는 장면에서의 디테일한 표정 연기가 인상적입니다. 단순히 힘든 티를 내는 것이 아니라 억지로 버티고 있는 사람 특유의 아슬아슬함이 느껴집니다. 젠데이아는 이번에는 피터를 기억하지 못하는 MJ로 등장하는데 낯선 사람에게 이유 모를 감정을 느끼는 미묘한 순간들을 섬세하게 그려냅니다. 짧은 순간이지만 서로를 알아보는 듯한 눈빛 연기가 관객의 마음을 흔듭니다. 그리고 이번 작에서 가장 화제가 된 배우는 단연 진 그레이 역의 배우입니다. 처음에는 냉철하고 위협적인 빌런으로 등장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언니를 잃은 슬픔과 분노가 뒤섞인 복합적인 감정을 설득력 있게 표현해 단순한 악역을 넘어선 입체적인 캐릭터로 완성해 냅니다. 세 배우의 합이 영화의 무거운 분위기를 지탱하는 가장 큰 힘이라고 느꼈습니다.

액션의 쾌감과 아쉬웠던 밸런스

브랜드 뉴 데이의 액션은 확실히 눈이 즐겁습니다. 탱크를 저지하는 초반 추격전부터 조종당한 헐크와의 사투까지 기존 시리즈에서 보지 못한 각도와 속도감의 웹스윙 연출이 계속됩니다. 특히 인피니티 워 이후 오랜만에 등장한 이성을 잃은 세비지 헐크의 모습은 반가움과 위압감을 동시에 안겨줍니다. 다만 아쉬운 점도 분명합니다. 그렇게 강력하게 예고되던 진 그레이의 초능력이 후반부로 갈수록 지나치게 강력해지면서 오히려 극의 긴장감을 떨어뜨린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반경 일 킬로미터 안의 모든 것을 염동력으로 멈춰버리는 설정은 스펙터클하긴 하지만 다른 캐릭터들의 존재감을 지나치게 약화시킵니다. 또한 각성한 스파이더맨과의 정면 대결이 기대만큼 오래 지속되지 않고 다소 급하게 마무리되는 느낌이 있어 클라이맥스의 여운이 조금 짧게 느껴졌습니다.

결말과 남는 여운에 대하여

여기서부터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니 아직 영화를 보지 않으셨다면 주의해 주세요.

피터는 결국 자신을 억누르던 억제기를 스스로 떼어내며 각성한 힘을 완벽하게 제어하게 됩니다. 진 그레이와의 대결에서 그는 복수로는 아무것도 되찾을 수 없다는 메이 숙모의 가르침을 다시 떠올리게 하고 두 사람 사이의 갈등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풀려나갑니다. 퍼니셔의 총에 맞을 위기에 처한 진을 감싸다 대신 총상을 입은 피터는 오히려 진의 초능력 덕분에 목숨을 건지게 되고 이 사건을 계기로 두 사람 사이에는 묘한 신뢰가 생겨납니다. 병원에서 회복한 피터는 이전과 달리 네드와의 관계를 회복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마지막 장면에서 네드가 무의식적으로 예전 습관대로 피터를 부르는 순간으로 영화는 막을 내립니다. 확실한 답을 주지 않는 열린 결말이지만 피터가 더 이상 스스로를 고립시키지 않겠다는 다짐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따뜻하게 다가옵니다.

전체적으로 브랜드 뉴 데이는 화려한 오락 영화라기보다 상실과 고독을 정면으로 다루는 성장 드라마에 가깝습니다. 배우들의 연기와 감정선은 확실히 만족스럽지만 후반부 힘의 밸런스 문제나 다소 아쉬운 액션 비중을 생각하면 모두에게 완벽한 만족을 주는 작품은 아닐 수 있습니다. 그래도 피터 파커라는 캐릭터를 더 깊이 이해하고 싶은 분이라면 충분히 볼 가치가 있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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