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One Battle After Another), 딸을 찾아 나선 한물간 혁명가의 끝없는 전투


한때 세상을 바꾸겠다며 목숨을 걸었던 혁명가가 십육 년이 지난 뒤 편집증에 시달리는 은둔자로 살아가고 있다면 어떨까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바로 그런 인물이 사라진 딸을 찾기 위해 다시 세상 밖으로 나서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입니다. 폴 토머스 앤더슨 감독이 연출을 맡았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숀 펜이라는 배우들이 다시 뭉치며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제9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포함해 여섯 개 부문을 수상하며 작품성까지 인정받은 이 영화가 왜 이토록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지 지금부터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혁명가에서 은둔자로 몰락한 밥 퍼거슨의 현재

밥 퍼거슨은 과거 반정부 이민자 보호 비밀 결사 프렌치 75에서 폭탄 전문가로 활동했던 인물입니다. 동료 혁명가였던 퍼피디아와 사랑에 빠져 딸 윌라를 낳았지만 퍼피디아는 혁명 활동을 이어가다 결국 체포되어 감옥에 갇히고 맙니다. 이후 밥은 혁명가로서의 삶을 완전히 청산하고 캘리포니아의 한 도시로 숨어들어 조용히 살아갑니다.

그로부터 십육 년이 흐른 지금 밥은 예전의 뜨거웠던 혁명가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채 늘 취한 듯한 편집증과 불안 속에서 세상과 거리를 두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의 곁에는 씩씩하고 자립심 강한 딸 윌라만이 유일한 위안으로 남아 있습니다. 몸도 마음도 엉망이 된 밥이지만 딸을 향한 애정만큼은 여전히 그를 지탱하는 유일한 힘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십육 년 만에 과거의 숙적이었던 스티븐 J. 록조가 다시 모습을 드러냅니다. 록조의 재등장과 함께 윌라의 행방이 갑자기 묘연해지면서 밥의 평온했던 일상은 한순간에 무너져버립니다. 딸을 찾기 위해 밥은 자신이 애써 외면해왔던 뒤엉킨 과거의 한가운데로 다시 뛰어들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입니다.

딸을 찾아 나선 아버지와 과거가 남긴 대가의 추격전

딸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밥은 필사적으로 그녀를 찾아 나섭니다. 하지만 이 여정은 단순한 실종자 수색이 아닙니다. 밥이 과거 혁명가로 활동하며 만들어낸 수많은 선택과 그로 인한 대가가 현재의 그를 집요하게 추격하기 시작합니다. 그가 오랫동안 묻어두었던 과거의 인연들과 원한들이 하나둘 되살아나며 상황은 점점 더 복잡하게 얽혀갑니다.

이 과정에서 밥은 예전 동료였던 세르지오라는 인물의 도움을 받으며 딸을 찾기 위한 단서를 쫓아갑니다. 미국 남서부의 고속도로와 황량한 풍경을 가로지르며 벌어지는 이 여정은 단순한 추격전을 넘어 미국 사회의 이면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치로 기능합니다. 밥은 자신이 한때 목숨을 걸고 맞섰던 세력들과 다시 마주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과거 선택들이 얼마나 무거운 결과를 남겼는지 절감하게 됩니다.

영화는 이 추격의 과정을 코믹하면서도 긴박하게 그려냅니다. 무능해 보이던 아버지가 딸을 위해 점점 더 위험한 선택을 감수하는 모습은 관객들에게 긴장감과 동시에 씁쓸한 웃음을 안겨줍니다. 진지한 상황 속에서도 예상치 못한 유머가 터지고 웃음 끝에 서늘한 현실이 드러나는 이 독특한 톤은 이 영화만의 개성으로 평가받습니다.

스티븐 J. 록조라는 뒤틀린 숙적이 만들어내는 긴장감

이 영화에서 가장 강렬한 존재감을 발휘하는 인물은 단연 스티븐 J. 록조입니다. 록조는 밥과 그의 동료들이 활동하던 시절부터 그들의 가장 큰 적이었던 인물로 십육 년 만에 다시 나타나 밥의 삶을 완전히 뒤흔들어놓습니다. 그가 윌라를 노리는 이유와 과거 밥과 얽혔던 악연은 극이 진행되면서 서서히 그 전모를 드러냅니다.

록조라는 인물은 단순한 악역을 넘어 미국 사회의 어두운 권력 구조와 편집증적인 반문화를 상징하는 존재로 그려집니다. 그의 존재는 밥이 딸을 지키기 위해 넘어야 할 물리적인 장애물이자 동시에 밥 자신이 외면해왔던 과거와의 대면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극이 진행될수록 록조와 밥 사이의 대결 구도는 단순한 선악 구도를 넘어 더 복잡하고 냉소적인 방향으로 확장됩니다.

이 영화는 이러한 대결 구도를 통해 냉전 시대 이후 미국의 반문화와 비밀스러운 권력 집단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를 담아냅니다. 록조라는 캐릭터가 상징하는 부조리한 권력과 밥이라는 몰락한 혁명가가 벌이는 대결은 이 영화가 단순한 액션 스릴러를 넘어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작품으로 평가받는 핵심적인 이유입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숀 펜 베니시오 델 토로의 압도적인 존재감

이 영화의 완성도를 논할 때 배우들의 연기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밥 퍼거슨 역을 맡아 한때 뜨거웠던 혁명가가 시간이 흐르며 무너지고 편집증에 시달리는 인물로 변해가는 과정을 설득력 있게 그려냅니다. 그는 과거 부기 나이트의 각본이 마음에 들었지만 참여하지 못했던 아쉬움을 이십팔 년 만에 폴 토머스 앤더슨 감독과의 작업으로 풀어냈는데 그만큼 이번 작품에 대한 애정과 몰입이 남달랐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무능해 보이면서도 딸을 향한 절박함만큼은 진심인 인물을 코믹하면서도 진지하게 오가며 표현해낸 그의 연기는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았습니다.

숀 펜은 스티븐 J. 록조 역을 맡아 기존에 보여주지 않았던 뒤틀리고 예측 불가능한 인물을 완성했습니다. 파격적인 분장과 캐릭터 해석으로 완전히 다른 얼굴을 선보이며 극에 서늘한 긴장감을 불어넣었고 디카프리오와 마찬가지로 비평가들로부터 극찬을 받았습니다. 두 배우가 다시 스크린에서 만나 벌이는 팽팽한 대결 구도는 이 영화의 가장 큰 볼거리로 꼽힙니다.

베니시오 델 토로는 밥의 예전 동료 세르지오 역을 맡아 극에 안정감을 더합니다.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신뢰감을 주는 연기로 밥의 여정에 힘을 실어주는 조력자 역할을 묵직하게 소화해냅니다. 이 외에도 레지나 홀과 테야나 테일러 그리고 신예 배우 체이스 인피니티까지 각자의 개성을 살린 연기로 극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기여했습니다.

스포일러 주의 문구입니다. 아래부터는 결말과 관련된 내용이 포함되어 있으니 부담스러운 분들은 여기서 마무리하셔도 좋습니다.

끝나지 않는 전투 속에서 다시 일어서는 다음 세대

영화의 결말부에서 밥은 딸 윌라를 둘러싼 위험천만한 상황을 헤쳐나가며 마침내 그녀와 다시 만나게 됩니다. 록조와의 오랜 악연은 격렬한 대결 끝에 마무리되지만 이 영화는 이 대결이 완전한 승리나 해피엔딩으로 끝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제목 그대로 하나의 전투가 끝나면 또 다른 전투가 기다리고 있다는 메시지를 마지막까지 관철시킵니다.

영화는 비가 오는 어느 날 혁명단원의 무전 방송을 들은 윌라가 오클랜드의 시위 현장으로 향하기 위해 집을 나서는 장면으로 마무리됩니다. 아버지 밥이 혁명가의 삶을 청산하고 숨어 지냈던 것과 달리 딸 윌라는 오히려 그 길을 스스로 선택해 나아가려 합니다. 이는 부모 세대의 전투가 끝났다고 해서 그 싸움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이 결말은 명확한 해답이나 완결된 승리를 제시하는 대신 열린 형태로 마무리되며 관객에게 여운을 남깁니다. 혁명과 저항이라는 것이 한 세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다음 전투로 이어진다는 이 메시지는 영화의 제목이 가진 의미를 마지막 장면까지 그대로 관통시키고 있습니다.

압도적인 연출력은 확실하지만 누구에게나 쉬운 영화는 아니다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분명 뛰어난 완성도를 자랑하는 작품입니다. 조니 그린우드의 신경을 자극하는 음악과 미로 같은 도시를 누비는 파쿠르 액션 그리고 숨 막히게 짜인 자동차 추격전 시퀀스는 이 백육십일 분의 러닝타임 내내 관객을 붙잡아둡니다. 로튼 토마토 구십육 퍼센트 메타크리틱 구십오 점이라는 경이로운 평점을 기록했고 아카데미 작품상을 포함해 여섯 개 부문을 수상하며 작품성 면에서도 확실한 인정을 받았습니다.

다만 이 영화가 모든 관객에게 쉽게 다가가는 작품은 아닙니다. 영화가 다루는 주제가 방대하고 암호 같은 대사와 복잡한 정치적 은유가 많아 일부 관객에게는 혼란스럽고 난해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서사적 흐름이 예측 불가능하고 갑작스러운 장면 전환이 많은 점도 호불호가 갈리는 주요 원인으로 꼽힙니다. 윌라의 어머니 퍼피디아라는 인물이 초반부에 가장 흥미로운 캐릭터였음에도 지나치게 빨리 퇴장하며 윌라 캐릭터 역시 자립심이라는 단일한 속성으로만 그려져 감정적 깊이가 다소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밥과 윌라가 극의 대부분에서 서로 떨어져 있다 보니 부녀 관계가 충분히 발전되지 못했다는 아쉬움도 존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대중적인 오락성과 예술적인 깊이를 동시에 추구하는 야심작으로 격렬한 액션 영화의 장르적 쾌감 속에 현대 미국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를 담아낸 수작이라는 평가를 받기에 충분합니다. 몰락한 혁명가와 그의 딸이 벌이는 끝나지 않는 전투를 통해 강렬한 오락과 깊은 여운을 동시에 얻고 싶다면 충분히 볼 가치가 있는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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