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삼관, 가족을 위해 피를 파는 한 남자의 눈물겨운 웃음과 감동의 대서사시

 

가족이라는 울타리는 때로 우리를 가장 아프게 만들기도 하지만 결국 세상의 모진 풍파를 견디게 하는 유일한 버팀목이 되어줍니다. 2015년 개봉한 영화 허삼관은 중국의 세계적인 작가 위화의 소설 허삼관 매혈기를 한국적인 정서로 재해석하여 관객들에게 뜨거운 부성애의 진수를 보여준 작품입니다. 1950년대와 60년대라는 격동의 시기를 배경으로 오로지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자신의 피를 팔아야만 했던 한 남자의 기구한 인생을 담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배꼽을 잡게 만드는 유쾌한 코미디로 시작하여 중반 이후부터는 손수건 없이는 볼 수 없는 진한 감동의 드라마로 변모하는 이 영화는 우리 시대 아버지들이 짊어지고 살았던 삶의 무게를 다시금 돌아보게 만듭니다. 핏줄이라는 본능적인 유대감과 세월이 쌓아 올린 정 사이에서 고뇌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진정한 가족의 의미가 무엇인지 우리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집니다. 이제 가진 것 하나 없지만 가족을 향한 마음만큼은 누구보다 부유했던 허삼관의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통해 잊고 지냈던 사랑의 온기를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마을의 절세미녀 허옥란을 아내로 맞이하기 위한 허삼관의 무모하고도 당당한 구애

충청남도 공주의 한 마을에서 성실하게 일하며 살아가는 청년 허삼관은 마을 모든 남자의 선망의 대상인 허옥란에게 첫눈에 반하게 됩니다. 하지만 허옥란은 이미 마을의 부유한 청년 하소용과 연인 사이였고 가난한 허삼관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습니다. 당시 마을에는 피를 팔 수 있을 정도로 건강한 남자만이 진짜 사내 대접을 받는다는 묘한 풍습이 있었고 허삼관은 허옥란과의 결혼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생애 처음으로 피를 팔기로 결심합니다. 그는 동료들과 함께 배가 터지도록 물을 마셔 혈액량을 늘리는 등 눈물겨운 노력 끝에 피를 팔아 거금을 손에 쥐게 됩니다. 이 돈을 들고 허옥란의 아버지를 찾아간 허삼관은 특유의 능청스러움과 끈질긴 설득으로 결국 허옥란과의 결혼 허락을 받아냅니다. 그렇게 꿈에 그리던 여인과 가정을 꾸린 허삼관은 이후 11년 동안 세 아들 일락과 이락 그리고 삼락을 낳고 남부러울 것 없는 행복한 나날을 보냅니다. 허삼관은 특히 장남 일락이를 지극히 아끼며 자신을 꼭 닮았다고 자랑하며 동네방네 떠들고 다닙니다. 이 시기의 허삼관은 비록 가난할지언정 아내와 자식들이 잘 먹는 모습만 봐도 배가 부른 전형적인 한국의 아버지상을 보여주며 관객들에게 훈훈한 미소를 선사합니다. 마을 사람들과의 유쾌한 에피소드와 아이들의 재롱이 더해진 초반부의 이야기는 뒤이어 닥쳐올 거대한 비극과 대비되며 더욱 소중하고 아름답게 그려집니다.

피를 팔아 마련한 행복한 가정이 예기치 못한 혈액형의 비밀로 흔들리는 위기

행복하기만 했던 허삼관의 가정에 어느 날부터인가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합니다. 장남 일락이가 자랄수록 허삼관이 아닌 허옥란의 과거 연인이었던 하소용을 쏙 빼닮았다는 동네 사람들의 수군거림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코방귀를 뀌며 부정하던 허삼관이었지만 일락이가 하소용과 닮았다는 증거들이 하나둘씩 나타나자 의구심을 지우지 못합니다. 결국 허삼관은 일락이의 혈액형을 확인하게 되고 일락이가 자신의 친자가 아님을 증명하는 충격적인 결과를 마주합니다. 자신이 11년 동안 정성을 다해 키운 아들이 사실은 아내의 옛 연인의 자식이었다는 사실에 허삼관은 말할 수 없는 배신감과 절망에 빠집니다. 마을 사람들의 비웃음 속에 허삼관의 자존심은 처참히 뭉개졌고 그는 하루아침에 일락이를 남 대하듯 차갑게 대하기 시작합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도 일락이만 제외하거나 일락이에게 너는 내 아들이 아니니 하소용을 아버지라 부르라며 모진 말을 내뱉습니다. 어린 일락이는 갑자기 변해버린 아버지의 태도에 상처를 입으면서도 여전히 허삼관을 진짜 아버지로 믿고 따르려 애씁니다. 이 과정에서 허삼관의 옹졸하면서도 인간적인 고뇌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며 관객들에게 안타까움을 자아냅니다. 핏줄을 중요시하는 전통적인 가치관과 11년이라는 세월이 만든 정이 정면으로 충돌하며 평화롭던 허삼관의 집안은 날카로운 긴장감에 휩싸이게 됩니다.

아들이 아니라는 배신감과 그럼에도 끊어낼 수 없는 부성애 사이의 처절한 갈등

일락이는 자신의 존재 자체가 아버지에게 짐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괴로워하며 하소용의 집을 찾아가기도 하지만 그곳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이방인이 됩니다. 그러던 중 하소용이 갑작스러운 병으로 쓰러져 사경을 헤매게 되고 무속인은 하소용의 아들이 지붕에 올라가 영혼을 불러야만 그가 살 수 있다는 처방을 내립니다. 하소용의 아내는 염치 불구하고 일락이를 데려가 지붕 위로 올리지만 일락이는 하소용이 아닌 허삼관의 이름을 울며 부릅니다. 이 장면을 지켜보던 허삼관은 비로소 일락이가 핏줄보다 더 깊은 마음으로 자신을 아버지라 여기고 있음을 깨닫고 일락이를 지붕에서 내려 집으로 데려옵니다. 허삼관은 자신의 이기심 때문에 상처 입은 어린 아들을 안아주며 비로소 진정한 화해를 하게 됩니다. 하지만 시련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마을에 흉년이 들고 극심한 가난이 닥치면서 아이들은 굶주림에 허덕이게 됩니다. 허삼관은 다시 한번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피를 팔아 가족들을 먹여 살립니다. 일락이가 남의 집 아이를 때려 거액의 치료비가 필요할 때도 허삼관은 투덜거리면서도 결국 피를 판 돈으로 문제를 해결합니다. 그는 입으로는 일락이를 밀어내면서도 행동으로는 그 누구보다 뜨거운 아버지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갈등과 화해의 과정은 허삼관이라는 인물이 단순한 가장을 넘어 한 아이의 진정한 보호자로 성장해가는 과정을 감동적으로 보여줍니다.

주의 결말 포함 스포일러 주의 목숨을 건 마지막 헌혈과 마침내 완성된 진정한 가족의 의미

이야기의 마지막에는 가슴 아픈 이별과 숭고한 희생이 기다리고 있으니 스포일러를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일락이가 갑자기 뇌염에 걸려 쓰러지게 되고 당장 큰 병원으로 옮겨 수술을 받지 않으면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에 부닥칩니다. 막대한 수술비를 마련할 길이 없던 허삼관은 일락이를 서울의 병원으로 먼저 보낸 뒤 자신은 수술비를 벌기 위해 전국의 병원을 돌며 피를 파는 무모한 여정을 시작합니다. 몸이 채 회복되기도 전에 계속해서 피를 뽑아내는 허삼관의 몸은 급격히 쇠약해지고 길거리에서 쓰러지는 위기를 겪으면서도 그는 오직 일락이를 살려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버텨냅니다. 자신의 생명을 깎아 아들의 생명을 구하려는 허삼관의 처절한 사투는 보는 이들의 가슴을 미어지게 만듭니다. 결국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병원에 도착한 허삼관은 극적으로 일락이를 살려내고 가족들과 재회합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건강을 회복한 일락이와 온 가족이 함께 모여 허삼관이 피를 판 돈으로 사고 싶어 했던 따끈한 찐빵을 실컷 먹는 모습을 비추며 끝이 납니다. 허삼관은 이제 일락이가 누구의 핏줄인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함께 울고 웃으며 고난을 이겨낸 시간이야말로 진짜 가족을 만드는 힘이라는 사실을 증명한 것입니다. 석양을 등지고 찐빵을 먹으며 웃음 짓는 허씨 일가의 모습은 핏줄보다 진한 사랑의 위대함을 보여주며 관객들에게 잊지 못할 깊은 여운과 눈물을 남깁니다.

하정우와 하지원이 빚어낸 부부의 호흡과 아역 배우들의 반짝이는 연기력 평가

이 영화에서 가장 주목할 부분은 주연 배우이자 감독인 하정우의 열연입니다. 하정우는 특유의 여유로운 코믹 연기와 진지한 감정 연기를 자유자재로 오가며 허삼관이라는 입체적인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해냈습니다. 그는 때로는 뻔뻔하고 옹졸해 보이지만 가족을 위해서라면 목숨까지 내놓는 우리 시대 아버지의 복잡한 내면을 아주 사실적으로 그려냈습니다. 하정우의 연기는 자칫 무거울 수 있는 소재를 유쾌하게 풀어내어 관객들이 끝까지 극에 몰입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다만 배우 하정우의 색깔이 워낙 강하다 보니 시대적 배경인 1950년대의 인물이라기보다 현대적인 느낌이 묻어나는 지점은 약간의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허옥란 역의 하지원은 마을 최고의 미녀에서 세 아이의 억척스러운 엄마로 변해가는 과정을 안정감 있게 보여주었습니다. 그녀는 남편의 변덕에 속앓이하면서도 묵묵히 집안을 지키는 강인한 여성상을 절제된 감정으로 표현하며 극의 균형을 잘 잡아주었습니다. 하지원의 단아하면서도 생활력 강한 연기는 영화의 리얼리티를 살려주는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특히 일락이 역을 맡은 아역 배우 남다름의 연기는 그야말로 압권입니다. 성인 배우 못지않은 깊은 눈빛과 섬세한 감정 표현으로 아버지의 사랑을 갈구하는 아이의 심리를 완벽하게 전달하여 관객들의 눈물을 쏙 빼놓았습니다. 이들 배우의 조화로운 연기는 허삼관이라는 영화가 가진 감동의 크기를 한층 더 키워주었습니다.

원작의 해학을 한국적으로 풀어낸 연출의 묘미와 다소 아쉬운 신파적 전개의 조화

허삼관은 중국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지만 한국의 근현대사적 배경과 정서에 맞게 각색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공을 들인 흔적이 보입니다. 춘천과 공주의 소박한 풍경을 담아낸 유려한 영상미와 시대상을 반영한 정겨운 소품들은 시각적인 즐거움을 선사합니다. 특히 초반부의 경쾌한 리듬감과 위트 넘치는 대사들은 하정우 감독 특유의 연출 감각이 돋보이는 대목입니다. 피를 파는 행위를 비극적으로만 그리지 않고 생존을 위한 하나의 의식처럼 해학적으로 풀어낸 방식도 신선합니다. 하지만 영화의 후반부로 갈수록 눈물을 강요하는 전형적인 한국형 신파 문법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어 원작의 날카로운 사회 비판적 시각을 기대했던 독자들에게는 다소 평범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아들이 아프고 아버지가 피를 팔며 전국을 도는 설정이 지나치게 감상적으로 그려지면서 극의 논리적인 개연성이 조금 흔들리는 지점들도 발견됩니다. 원작이 가진 냉소적인 유머와 풍자보다는 따뜻한 가족애에 더 집중하다 보니 이야기의 깊이가 다소 얕아진 측면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대중적인 재미와 감동을 동시에 잡으려는 상업 영화로서의 본분에 매우 충실한 작품입니다. 단점보다는 장점이 훨씬 많은 영화이며 가족과 함께 보기에 이보다 더 좋은 선택은 없을 것입니다. 현실적인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그 안에서 피어난 부성애의 숭고함을 진정성 있게 담아냈다는 점만으로도 이 영화는 충분히 박수받을 만합니다.

가장 소중한 것은 핏줄보다 깊은 정임을 깨닫게 하는 우리 시대 아버지의 초상

영화 허삼관이 우리에게 남긴 가장 큰 교훈은 가족은 단순히 피로만 연결된 집단이 아니라 함께 밥을 먹고 시간을 공유하며 서로의 아픔을 보듬는 정서적 공동체라는 사실입니다. 허삼관은 처음에는 일락이가 자신의 아들이 아니라는 사실에 분노하며 그를 부정했지만 결국 자신을 아버지로 믿고 따르는 아이의 마음이야말로 그 어떤 유전자 검사 결과보다 확실한 증거임을 깨닫습니다. 자존심 강하고 부족함 많던 한 남자가 진정한 아버지가 되어가는 과정은 우리가 우리 부모님을 이해하고 용서하게 만드는 마법 같은 힘을 발휘합니다. 누군가를 위해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내어줄 수 있는 마음이야말로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사랑임을 영화는 증명합니다. 비록 지금은 피를 팔아 가족을 부양하는 시대는 아니지만 자식을 위해 자신의 청춘과 건강을 기꺼이 바치는 아버지들의 희생은 오늘날에도 다른 형태로 계속되고 있습니다. 허삼관의 투박한 손과 주름진 얼굴에서 우리는 우리를 키워낸 수많은 아버지의 얼굴을 발견하게 됩니다. 찐빵 한 조각에 행복해하던 그들의 소박한 미소가 그토록 찬란했던 이유는 그 안에 담긴 사랑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허삼관에게 그리고 그들의 사랑을 먹고 자란 모든 일락이에게 이 영화는 따뜻한 위로와 격려를 건넵니다. 가족의 손을 꼭 잡고 다시 한번 보고 싶은 이 따뜻한 이야기는 여러분의 마음속에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진한 향기로 남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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