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이 기술을 만났을 때의 슬픈 자화상
만약 사랑하는 사람을 갑자기 잃는다면 그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평생을 함께하자 약속했던 사람이 한순간에 사라진다면 그 빈자리를 무엇으로 채울 수 있을까요. 가슴을 쥐어짜는 듯한 고통 속에서 우리는 그 사람이 남긴 사진 영상 메시지를 붙들고 그를 추억하려 애씁니다. 만약 현대 기술이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사람의 목소리 말투 심지어 외모까지 완벽하게 복제하여 당신 곁으로 '돌아올께'라고 속삭인다면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넷플릭스 명작 시리즈 블랙미러 시즌2의 첫 번째 에피소드 '돌아올께' (Be Right Back)는 바로 이 가슴 시린 질문에서 시작합니다. 기술이 우리의 가장 깊은 슬픔과 그리움을 파고들 때 벌어질 수 있는 섬뜩하고도 슬픈 이야기를 다룬 블랙미러 돌아올께의 세계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이 작품은 사랑하는 사람을 AI로 복제한다는 충격적인 설정을 통해 우리에게 진정한 사랑과 인간성의 의미를 묻고 있습니다.
갑작스러운 상실 그리고 위험한 위로
마사(Martha)와 애쉬(Ash)는 행복한 연인입니다. 그들은 막 새집으로 이사했으며 미래를 함께 계획하고 있습니다. 애쉬는 소셜 미디어 헤비 유저입니다. 자신의 모든 생각과 일상을 온라인에 공유하는 데 익숙합니다. 반면 마사는 그런 애쉬를 살짝 못마땅하게 생각하면서도 깊이 사랑합니다. 비극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찾아옵니다. 애쉬가 이사 온 집의 렌터카를 반납하러 나갔다가 끔찍한 교통사고로 사망하고 맙니다. 마사는 순식간에 삶의 모든 것을 잃은 듯한 절망에 빠집니다. 애쉬의 장례식 날 마사의 친구는 그녀를 위로하며 새로운 기술 서비스를 몰래 가입시켜 줍니다. 이 서비스는 고인이 생전에 온라인에 남긴 모든 데이터 즉 소셜 미디어 이메일 메시지 등을 수집하고 분석하여 고인을 흉내 내는 AI 챗봇을 만드는 기술입니다. 처음 마사는 이 기술에 거부감을 느낍니다. 죽은 사람을 모욕하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애쉬를 향한 그리움이 극에 달한 어느 날 마사는 충동적으로 AI 애쉬에게 메시지를 보냅니다. 그리고 곧바로 답장이 도착합니다. "그래 마사." 살아생전 애쉬의 말투와 똑같습니다.
돌아온 애쉬 그 완벽하고도 낯선 존재
AI 애쉬는 완벽한 위로였습니다. 마사가 그리워했던 애쉬의 유머 감각과 다정한 말투를 그대로 가지고 있었습니다. 마사는 밥을 먹을 때도 잠을 잘 때도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못합니다. AI 애쉬와 대화를 나누며 점차 안정을 되찾고 심지어 웃음을 되찾기 시작합니다. 마사는 자신이 애쉬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이 소식을 가장 먼저 AI 애쉬에게 알립니다. AI 애쉬는 실제 애쉬가 했을 법한 방식으로 그녀를 축하해 줍니다. 서비스는 다음 단계로 진화합니다. 마사는 AI 애쉬에게 전화를 걸어 그의 목소리를 듣게 됩니다. 생전 녹음된 음성 데이터를 기반으로 복원된 애쉬의 목소리는 마사의 마음을 더욱 흔들어 놓습니다. 마사는 이 목소리와 대화하며 공허한 집안을 거닐고 함께 추억을 나눕니다. 하지만 마사는 곧 이 방식에 만족하지 못합니다. 목소리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빈자리가 너무 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사는 실수로 휴대폰을 떨어뜨려 액정이 깨지고 맙니다. 애쉬와의 유일한 연결고리가 끊어질 뻔했다는 공포에 휩싸인 마사는 이 서비스의 마지막 단계를 결심하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애쉬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실제 합성 인조인간 즉 '안드로이드'를 주문하는 것입니다.
다락방에 갇힌 남편 (결말 스포일러 포함)
(이 부분부터는 드라마의 주요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포일러를 원하지 않으시면 읽기를 멈춰주시기 바랍니다.) 마사의 집으로 거대한 상자가 배달되고 욕조에서 활성화된 '애쉬'는 살아생전 애쉬의 모습과 완벽하게 똑같았습니다. 마사는 처음에는 충격과 기쁨 속에서 그를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함께 생활하면서 마사는 끔찍한 이질감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이 안드로이드 애쉬는 마사가 원하는 모든 것을 즉각적으로 수행합니다. 그는 화를 내지 않고 짜증을 부리지도 않습니다. 심지어 마사가 기억하지 못하는 과거의 사소한 말까지 모두 기억해 냅니다. 하지만 이것이 문제였습니다. 마사가 사랑했던 진짜 애쉬는 결점투성이의 인간이었습니다. 소셜 미디어에 올리지 않았던 그만의 사소한 습관 고집 그리고 예측 불가능한 감정 변화까지 포함해서 말입니다. 하지만 안드로이드 애쉬는 데이터에 기반하지 않은 어떤 행동도 스스로 하지 못합니다. 그는 마사의 명령만을 기다리는 텅 빈 껍데기일 뿐이었습니다. 마사는 점차 이 완벽한 복제품에 분노와 혐오를 느낍니다. 결국 마사는 그를 없애기로 결심하고 안드로이드 애쉬를 절벽으로 데려갑니다. 그녀는 애쉬에게 뛰어내리라고 명령하지만 애쉬는 생전 그가 절대 하지 않았을 법한 행동 즉 공포에 질려 매달리는 모습을 보입니다. 결국 마사는 그를 파괴하지 못합니다. 시간은 흘러 몇 년 뒤 마사는 애쉬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딸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주말이 되자 딸은 케이크 조각을 들고 다락방으로 올라갑니다. 그곳에는 여전히 완벽한 외모를 한 안드로이드 애쉬가 갇혀 있습니다. 그는 마사와 딸에게 슬픈 가족의 일원이자 지워지지 않는 그리움의 흉터로 남게 되었습니다.
헤일리 앳웰과 도널 글리슨의 가슴 아픈 연기
블랙미러 돌아올께의 슬픈 서사를 완성하는 것은 두 주연 배우의 공이 큽니다. '마사' 역을 맡은 헤일리 앳웰은 사랑하는 연인을 잃은 여성의 복잡다단한 심리를 훌륭하게 표현했습니다. 그녀는 애쉬를 잃은 직후의 공허함과 절망감에서부터 AI 애쉬에게 의존하며 느끼는 일시적인 안정감 그리고 안드로이드 애쉬를 마주하며 느끼는 혼란과 혐오감까지 극단적인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섬세하게 연기합니다. 특히 안드로이드 애쉬에게 분노를 터뜨리면서도 그를 완전히 버리지 못하는 그녀의 눈빛은 마사의 딜레마를 고스란히 전달합니다. '애쉬'와 안드로이드 애쉬 1인 2역을 소화한 도널 글리슨의 연기 또한 압권입니다. 그는 초반부 매력적이지만 어딘가 철없고 소셜 미디어에 중독된 '인간 애쉬'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보여줍니다. 그리고 안드로이드 애쉬로 다시 등장했을 때는 인간 애쉬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지만 영혼이 느껴지지 않는 미묘한 차이를 완벽하게 구현했습니다. 그의 공허한 미소와 프로그래밍된 듯한 다정함은 시청자에게 섬뜩함과 동시에 연민을 느끼게 만듭니다. 두 배우의 가슴 아픈 연기 호흡은 이 비현실적인 설정을 지극히 현실적인 감정의 드라마로 승화시켰습니다.
잊힐 권리마저 빼앗긴 시대의 묵직한 질문
블랙미러 돌아올께는 기술이 인간의 슬픔을 어떻게 위로하고 또 어떻게 파괴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수작입니다. 누구나 한 번쯤 상상해 봤을 법한 '죽은 사람과의 재회'라는 소재를 블랙미러만의 냉소적인 시각으로 풀어내어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특히 소셜 미디어에 남겨진 파편적인 데이터가 과연 한 인간의 본질을 대변할 수 있는지 날카롭게 질문합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그 사람의 완벽한 모습이 아니라 결점과 모순마저 포함한 총체적인 존재라는 메시지는 매우 강력합니다. 결국 기술은 죽은 자를 완벽히 복제하지 못했으며 산 자는 그 '디지털 유령'에 갇혀 온전한 애도에 실패하고 맙니다. 다만 이야기의 전개가 다소 천천히 흘러가고 결말이 너무 암울하여 어떤 시청자에게는 다소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또한 기술적인 설정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보다는 인물의 감정선에 집중하기 때문에 SF 장르 특유의 스펙터클을 기대한다면 아쉬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상실의 아픔을 겪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밖에 없는 보편적인 감정을 건드린다는 점에서 이 에피소드는 블랙미러 시리즈 중에서도 가장 슬프고 아름다운 이야기로 기억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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