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는 순간부터 모든 것이 정해진 세상이 있다면 어떨까요. 부모의 재력과 사회적 지위가 곧 자신의 계급이 되고 그 견고한 질서에 감히 누구도 도전할 수 없는 곳. 넷플릭스 시리즈 하이라키는 바로 그런 세상을 배경으로 시작합니다. 대한민국 상위 0.01%의 소수만이 다니는 주신고등학교는 완벽한 질서와 법 위에 군림하는 그들만의 왕국이었습니다. 하지만 의문의 전학생이 등장하면서부터 완벽해 보였던 그들의 세상에 균열이 가기 시작합니다. 비밀을 간직한 전학생이 던진 작은 돌멩이 하나가 견고한 성을 어떻게 무너뜨리는지 하이라키는 숨 막히는 긴장감과 예측 불가능한 전개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과연 이들의 세계에 감춰진 추악한 비밀은 무엇이며 소년은 무엇을 위해 이 위험한 싸움을 시작한 것일까요.
선택받은 자들의 세상 주신고등학교
주신그룹이 설립한 주신고등학교는 평범한 학교가 아닙니다. 태어날 때부터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재벌가 자제들과 정치인들의 자녀 등 대한민국 최상류층 아이들만이 모여 있는 곳입니다. 이곳의 학생들은 학교의 질서를 상징하는 넥타이 색으로 계급이 나뉩니다. 로열블루 넥타이를 매는 최상위 계층의 학생들은 다른 학생들 위에 군림하며 막강한 권력을 누립니다. 그 정점에는 주신그룹의 후계자이자 주신고의 퀸으로 불리는 정재이와 그녀의 연인이자 재율그룹의 후계자인 김리안이 있습니다. 이들은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그들만의 리그를 형성하고 학교를 지배합니다. 교사들조차 이들의 눈치를 보며 함부로 대하지 못할 정도입니다. 장학생 신분으로 이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철저히 무시당하고 괴롭힘의 대상이 되기 일쑤입니다. 하이라키는 이처럼 철저한 계급 사회로 이루어진 주신고의 모습을 통해 현대 사회의 축소판을 보여주며 우리에게 씁쓸한 현실을 상기시킵니다.
의문의 전학생 균열의 시작
완벽한 질서가 유지되던 주신고에 어느 날 장학생 강하가 전학을 옵니다. 해맑은 미소를 띠고 있지만 어딘가 모르게 비밀을 간직한 듯한 그의 등장은 모두의 이목을 집중시킵니다. 상위 계층 학생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그를 무시하고 자신들의 질서에 편입시키려 하지만 강하는 순순히 물러서지 않습니다. 그는 기존의 질서를 비웃기라도 하듯 당당하게 행동하며 최상위 포식자인 김리안과 사사건건 부딪힙니다. 강하의 도발적인 행동은 잔잔한 호수 같았던 주신고에 파장을 일으키기 시작합니다. 학생들은 처음에는 그를 비웃었지만 점차 그의 용기 있는 행동에 동요하기 시작하고 견고했던 계급의 벽에도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합니다. 강하는 단순한 반항아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주신고에서 벌어진 의문의 교통사고로 형을 잃었고 그 죽음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의도적으로 이 지옥 같은 곳에 발을 들인 것이었습니다. 형의 복수를 위해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주신고의 추악한 민낯을 벗겨내기 위한 위험한 싸움을 시작합니다.
주역 배우들의 빛나는 존재감
드라마 하이라키의 가장 큰 매력은 신선한 얼굴의 젊은 배우들이 뿜어내는 에너지입니다. 주신고의 퀸 정재이 역을 맡은 노정의 배우는 차가운 외면 속에 깊은 상처와 비밀을 간직한 복잡한 내면을 섬세하게 표현하며 극의 중심을 잡았습니다. 도도하고 위태로운 재벌 상속녀의 모습을 완벽하게 소화하며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비밀을 품고 주신고에 전학 온 강하 역의 이채민 배우는 선과 악이 공존하는 듯한 미스터리한 분위기와 강단 있는 눈빛 연기로 캐릭터에 입체감을 더했습니다. 순수한 소년의 얼굴 뒤에 숨겨진 복수심과 진실을 향한 집념을 설득력 있게 그려내며 극의 긴장감을 이끌었습니다. 주신고의 절대 권력자 김리안 역의 김재원 배우는 냉혈한의 모습과 사랑하는 여자 앞에서 흔들리는 순정적인 모습을 오가며 인상 깊은 연기를 선보였습니다. 세 배우는 각자의 자리에서 빛나는 존재감을 뽐냈을 뿐만 아니라 서로 부딪히고 얽히는 관계 속에서 팽팽한 시너지를 발휘하며 드라마의 몰입도를 한층 높였습니다.
숨겨진 진실과 거짓된 관계
강하는 형의 죽음이 단순한 사고가 아니며 그 중심에 주신고 최상위 계층 학생들이 있다는 사실을 직감합니다. 그는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 의도적으로 퀸 정재이에게 접근하고 둘 사이에는 미묘한 기류가 흐릅니다. 정재이는 모든 것을 다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아버지의 폭력과 숨 막히는 환경 속에서 고통받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자신과 다른 세상에 사는 듯한 강하에게서 묘한 위안과 끌림을 느낍니다. 이 모습을 지켜보는 김리안은 질투와 분노에 휩싸이고 강하를 향한 그의 적개심은 극에 달합니다. 하지만 리안 역시 재이가 숨기고 있는 비밀과 과거의 상처를 알고 있기에 그녀를 온전히 비난하지 못합니다. 이처럼 하이라키는 단순히 계급 갈등뿐만 아니라 인물들 사이에 얽히고설킨 복잡한 관계와 감정선을 섬세하게 따라갑니다. 사랑과 우정 질투와 연민 사이에서 흔들리는 이들의 모습은 누가 선이고 누가 악인지 쉽게 판단할 수 없게 만듭니다.
스포일러 주의
지금부터는 드라마의 결말과 핵심적인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직 하이라키를 시청하지 않으셨다면 이 부분을 지나쳐 주시길 바랍니다.
무너진 하이라키 그리고 새로운 시작
끈질긴 추적 끝에 강하는 형의 죽음에 얽힌 충격적인 진실과 마주합니다. 형은 주신고 학생들의 비밀을 휴대폰 영상으로 촬영했고 이를 알게 된 일부 학생들이 그를 쫓다가 사고가 벌어졌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김리안과 정재이를 비롯한 최상위 계층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모든 진실이 밝혀지자 주신고의 견고했던 질서는 송두리째 흔들립니다. 죄를 지은 학생들은 죗값을 치르게 되고 주신고의 계급 시스템 역시 붕괴됩니다. 정재이는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찾기 위해 유학을 떠나고 김리안은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죗값을 받습니다. 강하는 마침내 형의 복수를 끝내고 오랫동안 자신을 짓눌렀던 마음의 짐을 내려놓습니다. 드라마의 마지막은 모든 것이 무너진 주신고에서 학생들이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관계를 맺으며 시작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완벽한 해피엔딩은 아니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상처를 극복하고 성장하는 모습을 통해 희망의 메시지를 던지며 이야기는 막을 내립니다.
화려하지만 익숙한 그들만의 리그
하이라키는 화려한 상류층의 세계를 배경으로 한 자극적인 설정과 빠른 전개 그리고 매력적인 비주얼의 배우들을 앞세워 시청자들의 눈길을 끄는 데는 성공했습니다. 견고한 계급 사회에 던져진 돌멩이 하나가 어떤 파장을 일으키는지 보여주는 과정은 충분히 흥미롭습니다. 하지만 어디선가 본 듯한 익숙한 설정과 클리셰의 반복은 아쉬움을 남깁니다. 재벌가 자제들의 일탈 가난한 주인공의 복수극과 같은 소재는 기존의 여러 학원물에서 반복적으로 사용되어왔기 때문입니다. 일부 캐릭터의 행동이나 사건 전개 과정에서 개연성이 다소 부족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존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이라키는 계급 사회의 모순과 그 속에서 고뇌하는 청춘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 사회에 여전히 유효한 질문들을 던진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가볍게 즐길 수 있는 하이틴 드라마를 찾고 있다면 한 번쯤 시청해 볼 만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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